‘서울의 심장’이 한눈에 쏙~ 들어와요
‘서울의 심장’이 한눈에 쏙~ 들어와요
  • 글·김경선 기자ㅣ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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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푸마와 함께하는 KOREA TRAVEL 서울성곽 ② 북악산

▲ 북악산은 줄곧 성곽을 따라 산길이 이어졌다. 한쪽은 성벽이, 한쪽은 울창한 소나무숲이 호위하고 있는 성곽길은 여유롭게 산책할 수 있는 서울 최고의 산책로다.

와룡공원~말바위쉼터~숙정문~백악마루~자하문…2.8km 2시간 소요

북악산이 개방된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신분증 지참은 필수, 지정된 등산로 외 출입금지, 출입시간 지정 등 산행 제한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북악산은 늘 등산객들로 북적인다. 그것은 북악산이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책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호젓한 성곽길을 따라 북악산 능선을 걸어보자. 현대와 과거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성곽길이 당신의 가을을 완성시켜줄 것이다.


좌로는 인왕산(338m), 우로는 낙산(120m)과 어깨를 나란히 한 북악산(342m)은 서울의 보석과도 같은 산이다.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 북쪽에 모란 꽃송이처럼 피어난 산은 600년 도읍인 한양의 주산으로 굽이굽이 우리 역사의 흥망성쇠를 담고 있다.

▲ 와룡공원을 지나 5분 정도 오솔길을 걸으니 전망대가 나타났다. 북악산 자락에 자리한 성북동 일대가 한 눈에 조망됐다.

서울의 중심을 넉넉한 품으로 감싼 북악산에는 늘 사람들이 넘쳐난다. 능선 내내 시원하게 펼쳐지는 서울의 전경과 역사의 향기가 가득한 성곽길 등 매력적인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가을의 정취가 완연한 10월의 중순, 북악산 등산로 초입인 와룡공원에는 산을 찾은 시민들로 북적거렸다. 등산복을 제대로 갖춰 입은 사람들부터 가볍게 산책 삼아 공원을 찾은 시민들까지, 다양한 차림이지만 하나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은 성곽을 따라 북악산으로 향했다.

와룡공원에서 성곽 우측으로 난 숲길을 따랐다. 잠시 오솔길을 걷자 나무 계단길이 나타났고, 계단을 올라서니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오는 전망대다. 전망대에 서자 북악산이 감싸 안은 고급 주택가 성북동 일대가 시원하게 조망됐다. 북악산과 북한산 사이에 자리 잡은 성북동은 복잡한 서울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한적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 말바위안내소를 지나자마자 전망대가 나타났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시원한 서울의 전경을 배경으로 사진찍기가 한창인 시민들의 모습.
전망대에서 내려와 자하문 방면으로 성곽길을 따른 지 10여 분, 말바위안내소에 도착했다.

“신분증이 없으면 출입하실 수 없습니다.”

안내소 입구를 지키는 수방사의 소속 병사가 방문객 한 명 한 명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북악산 일대는 군사지역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신분증이 없으면 출입이 금지되는 구간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방문객들이 꽤나 많은지 되돌아가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북악산 출입이 유독 까다로운 까닭은 산이 청와대와 인접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1968년 발생한 1·21사태는 북악산 일대의 경비를 더욱 삼엄하게 만들었다. 1·21사태란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했던 사건이다. 당시 군복을 입은 무장 게릴라 31명은 황해도 연산을 출발해 휴전선~파주~노고산(구파발 부근)~진관사~북한산(비봉)을 지나 청와대 앞 500m 지점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했고, 우리나라의 군사망을 너무나 쉽게 무너뜨려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었다. 이 사건 이후 북악산은 2007년 4월 다시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기까지, 약 40년간 철저히 출입이 통제됐었다.

▲ 호젓한 성곽길을 걷고 있는 시민들. 신분증 확인 등 까다로운 출입절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악산 성곽길은 늘 인기 만점이다.

북악산 통행 위해 신분증 지참 필수
말바위안내소에서 신분증 검사를 받은 후 숙정문 방향으로 들어섰다. 성곽을 잠시 따르자 우거진 수풀 사이로 거대한 문 하나가 나타났다.

서울성곽의 북대문으로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의미의 숙정문(肅靖門)이다. 숙정문은 1413년 태종13년에 풍수학자 최양선이 “창의문(자하문)과 숙정문은 경복궁의 양팔과 같으므로 길을 내어 지맥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건의한 것을 받아들여 두 문을 닫고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했다고 한다.

와룡공원부터 시종일관 완만한 오르막이 계속되던 성곽길은 곡장을 앞에 두고 경사가 급해졌다. 서울성곽을 걷다보면 곡장을 여러 번 만날 수 있는데, 인왕산에서 한 번, 북악산에서 한 번이다. 곡장은 적을 살피고 좀 더 쉽게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이다. 과거 평탄한 지형에는 치성을, 산세가 험한 곳에는 곡장을 설치했는데, 북악산 곡장은 툭 튀어나온 능선에 반원형으로 굽은 형태로 성곽을 축조했다.

▲ 서울성곽을 이루는 사대문 가운데 하나로 도성의 북쪽 대문인 숙정문.
곡장에서 바라보니 북쪽으로는 시원하게 뻗은 북한산 비봉 능선과 고즈넉한 성북동·평창동 일대가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고, 남쪽으로는 레고 블록처럼 네모반듯한 고층 빌딩들이 한 손에 쥘 수 있을 것처럼 작게 보였다.

곡장을 지나자 ‘푸른 꿈을 안으라는 의미’의 청운대다. 청운대에 서자 서울의 반쪽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땅에서 보면 높디높은 초고층 빌딩들이 청운대에서 바라보니 너무 왜소하게 느껴졌다. 저렇게 답답한 성냥갑 같은 빌딩 속에서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니 새삼 자연과의 교감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청운대에서 보이는 세종로의 전경이 근사했다. 경회루와 근정전, 광화문도 보이고 그 앞으로 쭉 뻗은 세종로도 한 눈에 들어왔다. 얼마 전부터 광화문 광장의 새로운 주인이 된 세종대왕 동상과 늠름한 이순신 장군 동상도 작지만 또렷하게 보이니 이곳이 서울의 심장을 조망하는 최고의 전망대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서울의 심장을 수호하는 주산

▲ 숙정문에 올라 서울을 내려다보고 있는 시민들.
백악마루로 오르는 길, 소나무 한 그루 앞에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표지판을 보니 ‘1·21사태 소나무’다. 당시 무장게릴라군과 우리 군과의 총격전이 펼쳐지면서 이 소나무에 15발의 총알이 박혔다고 한다. 소나무에는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총알 자국이 선명히 남아있었다.

‘1·21사태 소나무’에서 가파른 계단길을 10여 분 오르자 백악마루다. 북악산 정상인 백악마루는 서울 시내를 감상하기에 그만인 장소다. 사방으로 막힘없이 펼쳐지는 서울의 조망에 정상에 오른 등산객들도 감탄사를 연발하기 바빴다. 얼굴을 마주한 남산과 그 너머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비롯해 서울 전역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조망은 북악산을 찾는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동이다.

백악마루를 내려와 자하문으로 향하는 길, 초반부터 아찔한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다행이 성곽을 따라 계단을 잘 만들어놓았지만 자칫 발이라도 잘못 내딛으면 크게 다칠 만큼 가파른 구간이다. 하지만 하산길에서 만나는 조망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지금껏 백악마루가 가렸던 인왕산이 당당하고 기품 있는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 과거 성벽을 지키는 군인들이 이러했을까.
백악마루에서 가파른 성곽길을 따라 하산한 지 20여 분, 드디어 창의문안내소에 도착했다. 출입증을 반납한 후 안내소를 나가자 창의문이다. 서울성곽 4소문 중 하나인 창의문은 서대문과 북대문 사이에 있다고 하여 북소문이라고도 한다.

지금은 ‘자줏빛 안개’라는 뜻의 자하문으로 더 많이 불리는 문이다. 자하문은 조선시대 지어진 서울시내 9개 문 중 현재까지 유일하게 24시간 개방되고 있는 문이다. 자하문길로 내려오니 바로 버스정류장이다. 이곳에서 버스를 타면 대부분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과 연결된다.

하늘과 맞닿은 북악산 능선은 단연 서울 최고의 산책로다. 가족 나들이 코스로도 좋고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그만이다. 굳이 등산복을 잘 갖춰 입지 않고도 쉽게 걸을 수 있다는 점 역시 북악산이 가진 매력이다. 가을의 절정 11월이 되면 북악산은 더욱 원숙미 넘치는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빼앗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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