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명한 하늘 아래로 물로 씻어낸 듯 깨끗한 서울의 모습에 참가자들은 한마디씩 탄성을 자아냈다.
장충단~장충동 성곽길~자유총연맹~남산봉수대~숭례문…약 4.7km 3시간 소요
서울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꼭 찾는 명소 중 그 으뜸은 예나 지금이나 남산이 아닐까. 서울 곳곳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N서울타워와 산을 오르내리는 즐거움을 두둑하게 채워주는 케이블카는 방문객들에게 늘 최고의 인기다. 그런 이유로 남산 산책은 서울 중심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해설사가 시대에 따라 성벽을 쌓은 축조 방식에 대해서 진지하게 설명하고 있다. |
서울의 중심에 우뚝 솟아있는 남산(262m)의 원래 이름은 목멱산(木覓山)인데, 목멱산이란 말도 옛말로 ‘마뫼’라 하여 곧 남산을 뜻한다. 남산은 북악산(北岳山)·낙산(駱山)·인왕산(仁王山)과 함께 서울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 중 하나다. 조선 초기 서울에 왕도(王都)를 정할 때, 이들 산과 더불어 그 능선을 따라 18.2km의 성곽이 쌓여졌으나, 오늘날은 일부 성곽을 포함한 102만9300㎡ 산지가 남산공원으로 지정돼 서울에서 가장 넓은 공원이 됐다.
남산이 처음 시민공원으로 개발된 것은 1910년으로, 당시 공원 표지로 세웠던 ‘한양공원(漢陽公園)’이란 고종(高宗)의 친필 석비가 지금도 통일원 청사 옆에 보존돼 있다.
장충동 언덕길 품은 성곽길
전국적으로 걷기열풍이 거세지고 있는 요즘, 서울시와 관할 구에서 성곽을 따라 걸으며 역사적 의미까지 되새길 수 있는 걷기로 서울성곽 걷기를 추진 중이다. 서울시민의 나들이·데이트코스로 오래전부터 사랑받아온 남산도 장충동에서 숭례문을 잇는 성곽을 따라 걸으며 남산공원까지 만끽할 수 있는 길이 생겼다. 지난 14일, 남산이 속해있는 중구의 문화원에서 ‘해설사와 체험하는 남산 성곽길 걷기행사’를 진행한다 하여 기대에 부풀어 신청을 했다.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6번 출구 앞에 위치한 장충단공원 사각정에 모인 참가자들은 다소 쌀쌀한 아침에도 불구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첫 걸음을 내딛었다.
▲ 장춘단 뒤쪽 성곽길 좌측으로 나있는 흙길을 따라 내려가면 자유총연맹 건물이 나온다. |
남산 성곽길은 원래 장충체육관 뒤편에서 시작한다. 아니 광희문과 연결된 서울성곽이 그리로 지나간다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18.2km의 서울성곽 중에서 현재 형태라도 남아있는 부분은 11.4km. 그 중 그나마 온전한 모양을 갖춘 곳이 장충동 성곽이라고 한다. 나머지 약 6.7km는 성곽의 형태가 완전히 사라져 흔적도 없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장충체육관을 지나 동호로 가에 있는 첫 번째 골목으로 접어드니 골목길을 따라 우측 편에 길게 연결된 성곽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언덕을 따라 연결된 성곽은 아래쪽 주택가를 내려다보며 호위하는 군주의 성처럼 도심을 감싸고 있는 듯 했다. 성곽의 형태가 그나마 온전하게 남아있고 훼손되거나 유실된 부분도 많은 부분 복원돼 있어 더욱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른다.
중구청에서 ‘서울 성곽 올레길’이라 칭하고 성곽을 따라 걸을 수 있게 다양한 표지판을 세우고 나무 데크를 연결해 예쁜 길을 만들어 놓아 성곽을 따라 걷기에도 그만이다.
▲ 남산으로 향하는 길은 숲이 울창하고 길이 아름다워 평소에도 산책과 등산을 즐기는 방문객이 많다. |
60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성곽이 여러 차례 개축되거나 보수되긴 했지만 산 능선을 따라 쌓아졌음에도 훼손되거나 유실된 부분을 제외하고는 어느 한 곳 기초 부분이라도 내려않은 곳이 없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당시 우리 조상이 얼마나 정교한 기술을 가졌었는지를 여실히 증명하는 증거가 아닐까.
신라호텔 뒤편으로 이어진 성곽을 끝까지 따라서 올라가면 끊어진 부분 위쪽으로 쉬었다 갈 수 있는 정자가 하나 나온다. 일행들과 정자에 올라 아래로 보이는 남산과 서울 시내의 풍광을 눈요기 삼아 잠시 쉬었다.
나라의 상황을 알렸던 남산
▲ 봉수대는 과거의 통신수단으로 거치하는 횃불의 수로 국가의 위급상황을 알렸다. |
이 길은 숲이 울창하고 길이 아름다워 평소에도 산책과 등산을 즐기는 방문객이 많다. 가을 색을 머금은 나무들이 시원한 바람에 가지를 흔들며 반긴다.
▲ 관광객들은 이곳 남산 분수대 인근 공원에서 N서울타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
N서울타워는 서울 내 최고의 명소답게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일본이나 중국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도 여기저기서 즐거운 모습으로 타워를 배경삼아 사진을 찍고 있었다.
▲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뒤 현재 팔각정이 있는 자리에 국사당을 짓고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우리 국사당을 인왕산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일본식 신사인 조선신궁을 세워 일본 천왕의 신주를 모셨다. 1945년 광복 후 조선신궁은 일본인들이 스스로 철거해 일본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 옆에는 봉수대가 자리한다. 서울에는 무악동, 남산, 아차산에 봉수대지가 있는데 남산에는 5개의 봉수대를 복원해 놓았다. 과거의 통신수단인 봉수대는 거치하는 횃불의 수로 국가의 위급상황을 알렸다. 예를 들어 평상시는 1개의 횃불을, 적이 나타나면 2개, 경계에 접근하면 3개, 경계를 침범하면 4개, 접전하게 되면 5개를 올려 상황을 전달했다고 한다. 해설사의 진지한 설명에 일행 중 일부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받아 적기도 했다.
▲ 남산 성곽길은 성의 안쪽이여서 성곽의 전체적인 모습이 아닌 여장부분인 윗부분만 볼 수 있다.
서울성곽의 정문, 숭례문
봉수대 옆으로 난 하산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하산하는 길옆으로 N서울타워 광장에서 보이지 않던 성곽이 다시 따라붙는다. 남산의 성곽은 성의 윗부분인 여장이 전부라고는 하지만 옷소매와 목깃에 수놓은 레이스마냥 남산의 울긋불긋한 단풍과 어울려 즐거움을 더한다.
케이블카 승강장을 지나면 남산 성곽길 볼거리의 하이라이트인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실로 대단하다. 그 어디에서 서울 곳곳을 이리도 꼼꼼하게 내려다 볼 수 있을까. 청명한 하늘 아래로 물로 씻어낸 듯 깨끗한 서울의 모습에 참가자들은 한마디씩 탄성을 자아낸다.
▲ 축조된 성이 부실하거나 훼손될 경우 축조한 사람이 책임을 진다는 의미로 이름을 새겨 넣었다. |
이곳에 있는 성곽의 아랫부분 돌에는 성을 축조한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축조된 성이 부실하거나 훼손될 경우 축조한 사람이 책임을 진다는 의미로 새겨 넣었다고 한다.
육교를 건너 골목 하나를 지나면 드디어 숭례문이다. 대한민국의 국보 1호로서 서울의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됐던 남대문은 2008년 방화로 소실돼 아직까지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대형 임시가건물 덮개에 덮인 채 한쪽 끝만 아련히 보이는 남대문의 모습이 마음을 아리게 했다. ‘전통기법으로 다시 태어나는 숭례문’이라고 쓰여 있는 현수막이 덮개 위에 펼쳐있는데 기대보다는 아픔에 가깝다. 문득 훼손된 서울성곽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소중한 옛것을 지킬 수 있어야 온전한 새것이 있는 것이다. 하루하루 생겨나는 새로운 문화코드에서도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남산 성곽길 걷기를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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