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산 성곽길에서 만난 암문.

조선의 수도 한양을 수호하는 4개 구간 성곽…약 18.2km 종주에 이틀 소요

조선의 수도 한양을 수호하던 서울성곽이 최근 복원공사로 인해 말끔한 모습을 되찾고 있다. 아직까지 성곽 복원공사가 진행중이지만 상당 구간의 성곽들이 보수돼 서울을 대표하는 길로 자리 잡는중이다. 4개의 산과 4개의 큰 문을 잇는 성곽을 따르다보면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서울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

▲ 낙산에서 내려다본 이화동 전경.

요즘 여행은 ‘길’이 대세다. 어딜 가나 만나는 것이 길이라지만 지역에 따라, 풍경에 따라, 숨은 이야기에 따라 길은 나름의 매력을 내뿜는다. ‘길’ 열풍의 원조격인 제주도의 올레길이나 최근 뜨고 있는 지리산 둘레길, 강화도 나들이길 등 전국 각지에 매력적인 테마 길들이 만들어지면서 여행자들은 ‘어느 길을 걸어볼까’ 행복한 고민에 빠져버렸다. 언제나 ‘빨리빨리’를 외치며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길은 잠시 마음의 여유를 찾아주는 쉼표 같은 존재로 변화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는 매력적인 테마길이 없을까. 1000만 명의 인구가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서울 땅. 그래서 서울의 길은 언제나 복잡하고 어수선하다. 하지만 중심가를 조금만 벗어나면 호젓하고 한적한 길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그 중 ‘진짜 서울’을 수호하는 길, 서울성곽(사적 제10호)이 있다.

서울성곽의 역사
과거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을 둘러싼 북악산(342m)과 인왕산(338m), 낙산(125m), 남산(262m)을 내사산(內四山)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지금의 서울을 둘러싼 북한산(837m)과 용마산(348m), 관악산(632m), 덕양산(125m)은 외사산(外四山)이라 부른다. 과거 한양을 둘러싼 4개의 산인 내사산을 연결한 것이 바로 서울성곽이다.

서울성곽은 1396년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한 도성이다. 당시 3분의 2는 토성이고 나머지는 석성인 형태로 축조된 서울성곽은 세종 때 보수공사를 통해 모든 성곽을 석성으로 바꾸었으며, 이후 숙종 때 6년에 걸쳐 보수공사를 진행해 18.2km에 달하는 성곽을 완성했다.

▲ 낙산으로 오르는 성곽길은 시민들이 산책하기 좋게 깔끔한 모습으로 정비돼있다.

하지만 성곽은 일제강점기를 전후해 많이 훼손됐다. 1890년대에는 전차길을 내기 위해 돈의문과 흥인지문 부근의 성곽이 헐렸고, 1910년대에는 도로 공사를 위해 숭례문과 남소문터의 성벽이 훼손됐으며, 이후 1930년대 말까지 많은 구간의 성곽이 일본에 의해서 소실됐다. 600년 동안 한결 같이 서울을 수호한 서울성곽은 일제가 훼손한 이후 쉽게 복원되지 못하다 최근 서울시에 의해 적극적으로 복구공사가 진행중이다.

성곽은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여 낙산, 남산, 인왕산을 잇고 있으며, 4대문인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숭례문(남대문), 숙정문(북대문)과 4소문인 혜화문(동소문), 소의문(서소문), 광희문(남소문), 자하문(북소문)을 포함하고 있다.

4개의 큰 문과 4개의 작은 문을 잇는 성곽은 한양의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였다. 지금이야 평지의 성곽 대부분이 소실돼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몇 년에 걸친 복원공사로 인해 옛 성곽의 모습을 많이 되찾은 서울성곽은 시민들의 산책코스로 인기가 많다.

서울시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알리고 도심에서의 여유로운 산책 코스를 제공하기 위해 성곽을 복원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최장 기간 도성의 역할을 수행한 서울성곽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키기 위한 작업도 진행중이다.

▲ 서울 시민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북악산 성곽길. 평일, 주말할 것 없이 늘 사람들이 북적인다.

4개의 성곽길 순환 코스 조성
성곽을 따라 옛 한양을 한 바퀴 돌아보는 코스는 총 4개의 구간으로 나뉜다. 숭례문~장충체육관 코스(남산 구간), 장충체육관~혜화문 코스(낙산 구간), 혜화문~자하문 코스(북악산 구간), 자하문~숭례문 코스(인왕산 구간)다.

남산 코스는 숭례문에서 시작해 백범광장~안중근의사기념관~N서울타워~포토아일랜드~소나무탐방로~국립중앙극장~우수조망소~성벽길~장충체육관까지 이어지는 약 6km 구간이다. 이 구간은 성곽이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지만 길이 잘 조성돼 있어 걷기가 편하고, 서울의 랜드마크인 N서울타워의 환상적인 조망을 감상할 수 있다.

낙산 코스는 장충체육관부터 혜화문까지 이어지는 약 5km의 성곽길이다. 이 구간은 장충체육관~광희문~동대문 역사문화공원~이간수교~오간수교~전태일 거리~흥인지문~낙산공원~혜화문으로 이어지며 비교적 성곽길이 잘 복원돼 있어 걷기가 수월하다.

▲ 북악산 성곽길에서 본 북한산.

북악산 코스는 혜화문에서 자하문(창의문)까지 이어지는 약 4.5km의 구간으로 2007년 전면개방 이후 일반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서울성곽길이다. 다만 군사보호시설로 지정돼 신원확인이 필수이므로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해야한다. 북악산 코스는 혜화문~와룡공원~숙정문~곡장~청운대~1.21사태소나무~백악마루~자하문으로 이어지며 서울시내의 전경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다.

인왕산 코스는 자하문에서 숭례문에 이르는 약 6km 코스로 구간 내내 서울 시내의 막힘없는 조망을 감상할 수 있다. 더불어 국사당, 선바위, 서대문형무소, 사직단, 경교장, 서대문 터 등 다양한 명소도 만날 수 있어 반나절 산책 코스로 인기가 많다.

▲ 인왕산에서 바라본 북한산의 비봉능선이 장쾌하다.

서울성곽을 따르는 길은 역사와 문화, 자연이 공존하는 서울 최고의 산책로다. 현대적인 첨단문화와 역사의 향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성곽길을 걷다보면 바쁜 일상 때문에 잊고 있던 서울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 성곽길은 18.2km의 짧지 않은 코스지만 길이 험하지 않아 13시간 정도면 완주가 가능하다. 하지만 성곽길 주변의 명소를 여유롭게 만끽하고 싶다면 2~3일에 나눠 걷는 것을 추천한다.

단풍이 무르익는 가을, 원숙미 넘치는 서울을 만끽하고 싶지 않은가. 하얗게 뻗은 성곽을 따라 서울의 진면목을 만나보자. 여느 유명 테마길들이 부럽지 않은 편안하고 포근한 서울성곽길이 가을의 정취를 가득 안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