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의 등’에 오르면 무엇이 보일까
‘낙타의 등’에 오르면 무엇이 보일까
  • 글 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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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TRAVEL 서울성곽 ⑤ 낙산

▲ 낙산 이화마을로 데이트 나온 풋풋한 스무살 커플.

흥인지문~낙산공원~혜화문까지 2.3km…1시간이면 넉넉

좌청룡, 우백호. 아마 가장 흔하게 들어온 ‘풍수지리’ 용어이리라. 물론 남주작, 북현무도 빼놓을 수 없다.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들은 각각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는 신령을 뜻한다. 이 중, 서울의 동쪽을 지키는 좌청룡인 낙산에 올라보았다. ‘낙산’이라는 이름은 산의 모양이 ‘낙타의 등’을 닮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덕분에 ‘낙타산’이라고도 불렸다. 또 조선시대 궁중에 우유를 공급하던 유우소(乳牛所)가 이 지역에 있어서 ‘타락산’으로도 불렸단다. ‘타락’은 우유를 의미한다. 낙타와 우유라, 궁금해지는 공간이다.


▲ 대학로가 ‘예술의 거리’라면 이화동은 ‘노동의 거리’였다. 그 둘을 잇는 공간에는 ‘생활밀착형 예술’이 자라나고 있었다.
서울 낙산(125m)은 종로구의 이화동·동숭동·창신동과 동대문구의 신설동, 성북구의 보문동·삼선동에 걸쳐 있다. 장충체육관에서부터 동대문(흥인지문)과 낙산을 거쳐 동소문인 혜화문까지 이어지는 서울성곽의 동쪽 부분을 길게 아우르는 2코스를 ‘낙산코스’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아마도 이 코스 중심에 낙산이 있기 때문일 게다. 실제 거리상으로도 장충체육관에서 한 시간 가량 걸어 닿는 동대문부터 동소문(혜화문)까지 이어지는 2.3km의 길 가운데쯤에 자리하고 있다.

이번 취재는 서울성곽의 전체적인 생김새를 비롯해 그가 품고 있는 내사산(內四山)인 북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을 각기 하나씩 독립적인 ‘산’으로 뽑아 소개하려한다. 때문에 여기서의 주인공은 내사산이다. 산자락으로 이어지는 길 위에는 어김없이 서울성곽이 있었고, 600년 넘게 서울을 보호해온 든든한 그의 품에 안겨 걷는 기분은 제법 괜찮았다. 다만, 곳곳에서 발견되는 상처들에는 어쩐지 미안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특히 낙산 줄기가 이어진 이화동과 삼선동자락에는 성곽을 괘념치 않고 그의 몸뚱이 이곳저곳을 건드리며 만든 생존공간들이 많았다. 6·25전쟁 후, 개발이 막 시작되던 1960~70년대 서울로 밀려들어와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여기 이곳 산자락에 판잣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이들에겐 성곽보다는 당장 발 뻗고 누울 공간이 필요했다. 또 어쩌면 성곽을 상처내고 삶의 터전을 만든 이들의 삶 또한 헐리고 쏠린 성곽 못지않았으리라.

동대문부터 혜화문까지를 잇는 낙산 줄기

▲ 대학로 뒷골목으로 넘어와 한독약국이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서면 본격적인 낙산 산책이 시작된다. 저 옆 ‘맞춤초밥전문점’인 ‘주수사’는 대학로의 이름난 스시집이다.
자,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낙산 트레킹을 시작해보자. 사실 낙산은 트레킹이라는 이름보다는 ‘산책’이라는 이름이 훨씬 잘 어울리는 길이다. 아이들은 물론 친구, 연인들이 함께 걷기에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성곽의 보존상태가 좋은데다, 동대문부터 낙산, 혜화문까지 오롯이 성곽길을 따라 이어지기 때문에 (옆으로 난 골목길로 빠지지만 않는다면) 길을 잃을 염려도 적다. 또 대부분 걷기 전용길이기 때문에 안전하기도 하다. 가끔 지나다니는 오토바이만 조심하면 된다.

지하철 1·4호선 동대문역 5번 출구로 나와 이화여대 부속병원 쪽으로 향하다보면 낙산공원이란 이정표와 함께 우측으로 난 언덕길을 만나게 된다. 이 길을 따라 오르면 곧 굽이치며 길게 뻗어나간 서울성곽을 만난다. 성곽 줄기를 따라 걷기 시작하면 차량과 소음에 둘러싸여 또 하루를 보내야 하는 동대문이 저 뒤에서 “잘 다녀오라” 배웅한다. 동대문을 감싸고 있는 옹성이 그를 다독이는 것만 같다.

‘낙산공원 1.2km’라는 안내판을 향해 걸어보자. 성곽을 왼쪽에 두고 약간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잘 다듬어져 어린아이도 무리 없이 걸을 수 있는 평탄한 길이다. 도시의 소음이 사라져 갈 즈음, ‘이제부터 호젓하게 걷기만 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 채 가시기도 전에 “꺄르륵” 웃음소리가 발걸음을 붙잡는다. 성곽을 우측에 두고 작은 놀이터를 포함한 그늘 쉼터에서 나는 소리다.

▲ 근처의 어린이집 아이들이 놀이터로 놀러 나왔다.
살짝 가려진 쉼터에 들어서자, 꼬마들 천국이다. 네 살쯤 되었을까. 꼬마 아이들 여럿이 저들 세상인 듯 신난다고 놀고 있는 중이다. 생글생글 웃으며 뛰어다니는 그들의 생명력에, 뭐든지 신기하고 신나기만 한 꼬마들의 소리에 엔도르핀이 확 솟는 것 같다. 줄넘기도 하고, 새로 산 뽀로로 운동화도 자랑하고, 자기들 키보다 훌쩍 큰 나무아래에서 나뭇잎을 건드려보기도 한다. 한 아이는 어디서 주웠는지 도토리를 들고 와 “예림이 도토리”라고 자랑하기도 한다. 넋이 나가 잠시 그대로 바라보고만 있다 저 뒤에 자리한 서울성곽과 눈이 마주친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바라보니, 서울성곽을 오른쪽에 두고 길가의 한켠을 차지한 작은 요새 같은, 눈에 잘 뛰지 않는 놀이터다.

두 명씩 짝을 지어 손을 잡고 줄을 서서 어린이집으로 돌아가는 꼬마들의 뒷모습을 보고서야 자리를 떴다. 요새에서 빠져나와 다시 길 위로 발을 옮겼다. 놀이터에서도 길이 이어지긴 했지만, 그러다간 꼬마들을 따라 동숭어린이집이나, 낙산어린이집으로 따라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보다 사람 홀리는 재주가 뛰어난 꼬마들이다.

길은 정말 호젓하다. 조용하고, 또 조용하다. 성곽의 키가 부쩍 커졌다. 하늘이라도 치고 올라갈 것 같다. 낙산공원을 조금 못가서 3번 마을버스 종점에 닿는다. 세 갈래길이 나오는데 저 밑, 창신동 방향으로 ‘홍덕이밭’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홍덕은 병자호란이 일어나던 해 궁중의 나인이었는데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나라 태종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한 뒤에 미래의 효종, 봉림대군이 볼모로 잡혀갈 때 함께 중국 선양으로 간다. 그곳에서 홍덕이는 채소를 가꾸어 김치를 담가 날마다 봉림대군의 상에 올렸고, 본국으로 돌아와 임금(효종)이 된 봉림대군은 홍덕이의 김치맛을 잊지 못해 낙산 중턱의 밭을 홍덕이에게 주고 김치를 담그게 했다고 한다.

▲ 사람들이 하도 난장을 부려대는 바람에 아쉽게도 ‘천사날개’ 벽화는 10월4일자로 사라졌다.

이화마을, 이렇게 예쁜 벽화 보셨나요?
성곽을 따라 오르다보면 중간에 이화동 쪽으로 넘어가는 성곽의 비밀문, 암문이 하나 있다. 이곳을 통해 건너가면 ‘그 유명한’ 이화마을이 나온다. ‘낙산공공미술프로젝트’ 덕분에 벽화거리로 새롭게 탄생한 예술마을이다.

우선은 암문을 지나쳐 성곽을 따라 계속 올라 낙산 정상으로 향했다. 성곽 안쪽 광장으로 들어서면, 바로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유명한 낙산공원이다. 여기 이곳에, 낙산공원이 세워지기 전 같은 자리에 41동이나 되는 아파트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지금은 광장과 팔각정, 그리고 곳곳에 체육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근처에 사는 주민들이 휴식과 운동을 즐기는 장소이기도 하다.

▲ 이화마을을 유명하게 한 벽화들.

낙산은 분명 125m라고 했겠다. 야트막하지만, 이곳에서는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1960~70년대식 풍경같이 작고 투박한 집들이 오종종하게 뿌려져있는 모습도 보인다. 날이 저문 후에 이곳의 야경이 유명한 이유는 아마도 저들 덕분이리라. 촘촘히 뿌려진 집들이 모두 불을 밝힐 테니 말이다. 도심의 거대 빌딩이 내놓는 화려한 네온사인과는 비교할 수 없이 예쁜 빛을.

밝은 낮이라, 낙산공원에서 잠시 서울의 풍경을 구경하고는 이화마을로 발길을 돌린다.  얼마 전 텔레비전 인기 예능프로그램 ‘1박2일’에서 방영돼 평일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사람을 만나서일까. 갑자기 허기가 밀려온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기거했다는 이화장으로 향해볼까 하다 배도 고프고, 이화마을 구경도 좀 더 하고 싶어 마을에 자리한 구멍가게에 들어섰다.

컵라면으로 허기만 간신히 덮고는 이제 어디로 갈까, 골목길을 서성거리기로 했다. 연인들이며 홀로족이며 이승기의 ‘꽃’과 ‘천사날개’를 찾으러 온 이들이 제법 된다. 골목골목을 걸으며 만난 꽃계단 앞에서는 동네 할머니가 혼자 온 학생의 사진을 찍어주는 장면을 만나기도 했고,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약자인 ‘세디’가 꿈이라는 9살짜리 꼬마 안내인을 만나기도 했다. 무엇보다 짜릿했던 동행은 스무살 연인들의 풋풋한 데이트에 눈치 없이 잠시 끼어들었던 것이었고.

▲ 대학로 뒷골목으로 넘어와 한독약국이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서면 본격적인 낙산 산책이 시작된다. 저 옆 ‘맞춤초밥전문점’인 ‘주수사’는 대학로의 이름난 스시집이다.

이처럼 이화마을과 더불어 낙산을 찾는 이들도 늘었다. 하지만 짓궂다고 치부하기에는 야속한 외지인들의 도를 넘는 장난질에 주민들의 불만은 높아졌고, ‘미안한 마음’이 든 벽화의 작가는 ‘천사날개 벽화’를 지워버린 일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좀더 흐르면 이곳을 찾는 이들은 이화마을에 벽화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리라. 낙산 정상 인근에는 <지봉유설>을 쓴 이수광의 ‘비우당’도 있고,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 기거하던 ‘이화장’도 있고, 무엇보다 600년간 서울을 오롯이 품어온 서울성곽이 오늘도 아무 말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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