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품 팔아 엿본 '꽃지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
발품 팔아 엿본 '꽃지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
  • 글·김경선 기자I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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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TRAVEL 안면도 | ② 해안 트레킹

▲ 아름다운 꽃지해수욕장의 일몰. 붉게 타오르는 석양이 할미바위와 어우러져 황홀한 풍광을 선물한다.

백사장항~안면해수욕장~꽃지해수욕장…해안 따르는 트레킹 코스 13km 3시간30분 소요


안면도의 해안을 걸었다.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백사장과 생명의 활기가 넘치는 갯벌, 찰랑이는 파도로 넘실대는 무채색의 바다가 해안을 걷는 나그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바다와 태양이 만나는 장관을 목격했다. 태양도 바다에 잠겨 잠시 쉬어가는 곳, 안. 면. 도.


겨울바다는 참 매력적이다. 누군가는 바다의 참맛이 여름이라고 하지만 기자가 생각하는 바다의 백미는 겨울이다. 쓸쓸함과 고즈넉함 속에서 풍겨 나오는 운치는 겨울바다만이 가지는 매력이기 때문이다.

바다와 붉은 석양의 매력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곳. 섬과 육지의 경계를 넘나드는 안면도는 겨울에 떠나기 좋은 여행지다. 한 해의 끄트머리를 장식하는 계절에 황홀한 해넘이를 바라보며 지나 온 일 년을 되돌아볼 수 있는 안면도만큼 겨울 여행지로 좋은 곳이 있을까? 여름처럼 신록의 향기도 없고 가을처럼 알록달록한 색의 향연도 없지만 무채색의 차분함이 가득한 안면도의 겨울은 아름답기 때문이다.

태양의 세례를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백사장을 걷고 싶어 늘씬한 자태를 뽐내는 안면도의 해안선을 따라 북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를 잡았다. 부산한 백사장항의 전경과 차분한 꽃지해수욕장의 일몰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코스다.

▲ 백사장항은 조업을 마치고 들어온 고깃배들로 시끌벅적했다.

백사장항에서 만난 경쾌한 삶의 풍경들
정오의 백사장항은 활기찼다. 만선의 고깃배들이 항구로 들어오기 시작하자 기다리고 있던 갈매기떼가 어선 주위를 맴돌며 눈치를 보고 있었고, 막 잡은 수산물로 한껏 풍성해진 어시장은 상인과 손님 사이의 흥정으로 시끌벅적했다.

부두에 정박한 어선에서 쏟아져 나오는 싱싱한 물고기들은 오늘 수확이 쏠쏠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낙들은 배에서 끄집어 내린 그물에서 밴댕이를 떼어내느라 두 손을 쉴 새 없이 움직였고, 청년들은 켜켜이 싸여가는 생선을 옮기느라 두 발을 바쁘게 놀렸다. 안면도 앞바다에서 조업하던 고깃배들이 들어올 때면 백사장항은 늘 이렇게 분주한 모습이다.

▲ 백사장항에서는 막 잡아 올린 수산물 경매가 한창이었다.
항구 주변에는 싱싱한 수산물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어시장이 형성돼 배고픈 나그네의 허기를 달래준다.
“아가씨, 대하가 1kg에 2만원이유~!”

한창 물이 오른 대하가 입 안 가득 군침을 돌게 만들었다. 시장에는 대하뿐만 아니라 새조개·맛조개를 비롯해 광어·도미·우럭 등 싱싱한 수산물이 가득했다. 게다가 후한 인심으로 무장한 시장 상인들은 덤까지 팍팍 얹어가며 여행자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항구의 경쾌한 풍경은 지난 겨울에 발생했던 태안의 ‘검은 악몽’을 잊게 만들기 충분해 보였다. 기름유출의 피해가 크지 않았던 안면도라고 하지만, 그 많던 기름때가 아름다운 해안을 검은 재앙으로 물들였던 기억은 한동안 사람들의 발길을 서해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해안가를 수놓은 만선의 배와 싱싱한 수산물은 언제 그런 슬픈 기억이 있었냐는 듯 말끔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우리들의 마음뿐이다.

항구를 나와 해안도로를 따라서 남쪽으로 걸었다. 도로를 따라 걸은 지 20여 분, 도로 오른쪽으로 해안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삼봉해수욕장이다. 해안 북쪽의 세 개의 봉우리가 인상적인 삼봉해수욕장은 드넓은 백사장이 남쪽의 기지포해수욕장까지 이어졌고, 뽀얀 속살을 보이는 너른 백사장 안쪽으로는 빽빽한 소나무 군락이 거친 해풍을 막아선 채 푸른 기개를 뽐내고 있었다.

백사장을 따라 기지포해수욕장까지 걸었다. 겨울 바다의 쓸쓸함이 느껴지는 백사장은 찬란한 태양빛을 머금어 반짝였고, 무채색의 바다는 몸을 부대끼는 파도로 넘실거렸다. 사진을 찍느라 바쁜 연인과 강아지와 함께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중년의 부부…. 여름과는 사뭇 다른 조용한 해안의 풍경이 겨울 안면도를 아름답게 빚고 있었다.

▲ 한적한 밧개해수욕장. 넓은 백사장의 하얀 모래가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살포시 뽀얀 자태 드러내는 해안
기지포해수욕장을 나와 참성교를 지나자 툭 트인 바다가 해안도로 옆으로 더욱 가깝게 다가왔다. 안면도 서쪽 해안도로를 따르면 만나게 되는 예쁜 해변은 진주알로 엮은 목걸이처럼 남북으로 길게 수놓은 모습이다. 그리고 그 유려한 해안선의 시시각각 달라지는 풍경은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고서는 못 배길 만큼 색다른 풍경을 선물했다. 도로 왼쪽으로 이어지는 쓸쓸한 들녘도 겨울의 정취를 부추겼다. 추수를 마쳐 휑한 속살을 드러낸 논은 볏짚 태우는 구수한 냄새와 어우러져 정겨운 추억을 떠오르게 했다.

안면해수욕장으로 들어가자 늘씬한 안면송이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줄서있었다. 게다가 해안에서 숲을 향해 날아오른 철새들은 일제히 커다란 대형을 이뤄 모이고 흩어지기를 몇 번, 역동적인 군무를 펼쳐보였다.

새들의 아름다운 비행을 감상한 후 다시 해안도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로는 두여해수욕장을 지나 잠시 언덕을 지나고, 해안으로 더욱 가까워지면서 갯벌을 드러냈다. 생명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채 살아 숨 쉬는 갯벌은 태양이 수평선에 가까워질수록 붉은 빛을 머금어 더욱 찬란하게 빛나 나그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 해안도로를 따르다 만난 들판에서는 아주머니가 한창 밭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두여해수욕장을 지나 1시간쯤 걸었을까? 어느새 방포항이다. 저녁노을이 내려앉아 어스레한 방포항 너머로 안면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꽃지해수욕장의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가 붉은 노을에 안겨 황홀한 석양의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꽃지해안의 해거름. 공허하리만큼 광활한 하늘에서 느릿느릿 내려앉던 태양은 이제 바다와의 만남을 재촉이라도 하듯 달음질치기 시작했다. 태양의 속도를 놓치지 않으려는 기자의 발걸음도 덩달아 빨라져 금세 꽃지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노부부의 품을 파고드는 붉은 석양
꽃지의 해안은 바다를 갈라 성마른 속살을 내밀었다. 그 신비로운 길을 따라 다정한 ‘노부부의 품’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이, 찬란한 태양은 은빛 물결과 어우러져 그 품속을 파고들었다.

겨울바람이 파도를 살랑이고, 저무는 햇무리의 붉은 빛깔이 보는 이의 마음을 환상으로 적시는 시간. 낙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감탄으로 물들어갔다. 보는 이는 시선을 찬탄으로 물들이는 이 해거름의 장관이야말로 꽃지의 일몰을 최고로 칭송하게 만든 장본인이리라.

▲ 안면해수욕장의 고운 백사장.

‘출사 명당’. 꽃지해수욕장에는 디카족들의 셔터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줄달음치는 태양의 자취를 따라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의 표정이 진지하다. 꿈결 같은 꽃지의 낙조를 최대한 아름답게 남기고 싶은 디카족들의 열망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이다.

어느새 태양은 무대 뒤로 사라지고, 붉게 타오르던 열기도 한 순간 바다에 잠겨 차갑게 식어갔다. 수평선을 따라 은은하게 퍼지는 오렌지빛 여명만이 태양이 머물렀던 흔적을 남겨놓았을 뿐이다.

화양연화(花樣年華). 저물기 직전에야 더욱 찬란해 지는 태양은 인생과 많이 닮았다. 그러나 내일이 오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면 태양은 다시 떠오르고, 인생의 화양연화를 다시 한 번 꿈꿀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어둑해진 바다를 향해 다시 한 번 이렇게 외친다. 화. 양. 연.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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