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을 통해 마주한 한라산의 원시림 일주길
캠핑을 통해 마주한 한라산의 원시림 일주길
  • 아웃도어뉴스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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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판악휴게소~정상~관음사야영장…총 18.5km 8시간 소요

Special Report 섬 캠핑_②한라산 트레킹

제주의 어머니는 한라산이다. 한라산 백록담 분화구에서 솟아오른 마그마가 굳어 섬이 된 곳, 산과 땅이 한 몸이 된 제주도이기에 사람들은 한라산이 제주도며 제주도가 곧 한라산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3월 일렁이는 갈대의 물결을 따라 넉넉한 한라의 품에 안겨 제주의 이른 봄 정취를 느껴보았다

▲ 한라산의 식생은 고도를 높여감에 따라 난대식물부터 한대식물까지 한눈에 접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3월 중순임에도 제주의 이른 아침은 차고 쌀쌀한 기운이 감돌았다. 관음사야영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간단히 짐을 챙겨 한라산(漢拏山, 1950m)의 동쪽 들머리인 성판악으로 가는 길은 창문 밖에서 밀려들어오는 찬 기운이 옷을 여미게 한다. 숲 터널이 일품인 5.16도로는 야생동물이 점령을 했는지 노루와 까마귀 떼가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이는 문명과 뚝 떨어진 산간도로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성판악휴게소에 도착하니 오전 8시. 이른 아침임에도 주차장에는 한라산을 오르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정상을 밟고 내려오는 데만 8시간 이상이 걸리는 한라산 산행은 이른 아침에 시작하지 않으면 완주조차 힘들다. 더군다나 진달래대피소에서 12시 30분이면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통제하기에 한라산 산행을 준비하는 등산객들은 부지런을 떨 수밖에 없다.

휴게소에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등산로로 들어섰다. 하늘을 보니 뭉게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간간히 드러나는 쾌청한 날씨다. ‘오늘은 백록담을 볼 수 있겠구나’하는 기대감이 앞서지만, 워낙에 변덕이 죽 끓듯 한 제주의 기상이기에 한라산이 정상을 보여줄지는 미지수다. 종잡을 수 없는 한라산의 날씨가 오늘만은 화창하기를 기대해볼 따름이다.

▲ 한라산 트레킹은 신기한 산정의 호수인 백록담과 더불어 자연의 조화를 감상할 수 있는데 즐거움이 있다.

▲ 좁은 길을 따라 내려가는 하산로에는 육지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꽃과 나무들을 만날 수 있다

▲ 바람에 의해 짧은 키를 유지하며 자라는 나무들. 자연의 특징에 따라 나무도 적응하기 마련이다

한라산은 남한 땅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백두산·금강산과 함께 우리나라의 3대 영산으로 꼽힌다. 그도 그럴 것이 위엄이 느껴질 만큼 높되 포근하고, 거대하되 친숙한 산이 바로 한라산 아닌가. ‘하늘의 은하수를 잡아당길 만큼 높다’는 의미의 한라산은 이 땅의 사람들에게 멀고도 가까운 산으로 자리 잡았다.

등산로에 접어들자 우거진 숲이 길을 압도했다. 하늘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숲은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등산로 초입은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길이다. 갈 길은 먼데 완만한 길은 고도를 높일 줄 모른다. 아직 매서운 맛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편안한 등산로를 따라 이국적인 식생을 마음껏 만끽한다.

돌 많기로 유명한 제주도라 한라산도 예외는 아니다. 검은 현무암을 쌓아 계단을 만들고, 곳곳에 나무 데크며 계단 등을 정비해 걷기가 한결 수월했다. 1시간 30분 정도 걸어 사라악약수터에 도착했다. 성판악코스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약수터로 시원한 약수 한 모금으로 마른 목을 달랜 후 진달래대피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녹색의 이끼가 낀 작은 호수를 연상하게 하는 한라산 풍경

▲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으로 오르기 위해 나무 테크를 따라 올랐다

섬 특유의 식물군락을 보여주는 성판악 오름
사라악약수터 이후론 등산로가 제법 가팔라진다. 줄곧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자꾸만 산행객들의 발을 붙잡아 속도를 더디게 만들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처럼 이어지던 등산로가 지루하게 이어지더니 진달래대피소를 코앞에 두고 서야 시야가 확 트인다. 짙은 숲에 꽁꽁 감춰놓았던 한라산의 윤곽이 이제야 시원하게 드러난 것이다.

진달래대피소에 도착하니 허기가 밀려든다. 성판악휴게소에서 2시간 20분을 내리 걸었으니 에너지가 고갈될 수밖에. 대피소 한쪽에 앉아 준비해 간 김밥과 컵 라면으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했다. 몇 번의 한라산 산행 경험에 비추어볼 때 대피소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한라산의 최대 난코스다. 충분한 휴식으로 체력을 보강하고 대피소를 나섰다.

▲ 널찍한 고지대의 초원은 이 땅이 아니 아프리카나 히말라야의 고 지대를 연상하게 한다

한라산국립공원은 지속적으로 등산로를 정비하고 있다. 2년 전 한라산을 찾았을 때만 해도 진달래대피소를 벗어나자마자 가파르고 험한 바위길이 이어졌는데, 지금은 깔끔한 나무데크가 이어져 산행이 훨씬 수월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20분가량 이어지던 데크길이 사라지고 한라산의 거친 속살이 드러났다. 이제 숨은 턱 끝까지 차오르고, 중력은 점점 더 강하게 느껴져 다리가 천근만근이다. 한라산이 그리 쉽게 정상을 보여주진 않을 모양이다.

대피소에서 가파른 오르막을 1시간 정도 올랐을까. 정상에 솟아오른 봉우리가 시원하게 모습을 드러내더니 사방으로 제주도의 풍광이 펼쳐졌다. 크고 작은 오름과 푸른 바다, 섬들이 어우러진 절경에 산행객들은 오르기를 멈추고 풍광을 감상하기 바쁘다.

▲ 한라산 산행은 정상까지의 거리와 시간을 고려해 오후에는 진달래 대피소에서 입산을 통제한다

정상을 바라보자 한숨이 절로 난다.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 같은 오름이 보기만 해도 어지러울 지경이다. 정상으로 향하는 이 길은 사방으로 펼쳐진 제주의 풍광이 없다면 쉬이 걸을 수 없는 힘겨운 구간이다. 아름다운 풍광의 위로를 벗 삼아 30여분을 올라가니 드디어 한라산 정상이다.

한라산의 화산 폭발은 정상부에 이국적인 식생과 커다란 굼부리를 남겨놓았다. 새빨간 용암이 흘러내린 자리마다 생명이 돋아나는 신비의 섬이 제주고 곧 한라산인 것이다. 그러나 제주 사람들의 믿음은 다르다. 그들은 거인인 설문대할망이 치마 가득히 흙을 담아 바다 한 가운데 뿌려 생긴 산이 한라산이라고 믿는다. 제주사람들에게 한라산은 신앙이자 숭배의 대상인 셈이다.

설문대할망도 오늘만큼은 기분이 좋았나보다. 청명하진 않지만 백록담 전경이 희뿌연 안개 사이로 온전하게 눈에 들어왔다. 하늘을 품고 바다 위를 군림하는 백록담은 분화구 둘레가 1720m, 깊이가 108m에 달하는 거대한 산정호수다. 한라산의 오름길인 성판악코스와 관음사코스를 따라 오른 산행객들의 발이 닿는 곳은 한라산 동릉의 해발 1933m지점이다. 1950m의 한라산 정상은 반대쪽 서릉이기에 분화구를 에두르는 순환 코스가 나 있지만 자연휴식년제 구간으로 묶여 있다.

▲ 한라산의 정상인 백록담. 물이 마르긴 했지만 여름에는 제법 풍부한 물을 지닌 산상호수가 된다.
백록담은 백두산 천지처럼 물이 많지는 않지만, 여름철 만수 때에는 수위가 4m까지 높아져 장관을 연출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른 봄이라 그런지 물이 많지 않아 메마른 백록담을 보여준다. 백록담에 시선을 뺏겨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든 사이 구름이 밀려들며 희뿌옇게 시야를 흐려 놓았다. 굼부리 가득 구름이 채워지자 산 정상은 한치 앞도 구분하기 힘들 지경이다. 30분 전만 해도 맑던 날씨가 순식간에 뒤바뀌니, 종잡을 수 없는 한라산의 변덕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정상에서 관음사코스로 하산을 시작했다. 관음사코스는 급하고 험하지만 왕관바위와 구상나무 군락지가 펼쳐져 수려한 절경을 자랑하는 코스다. 정상에서 이어지는 나무 데크를 따라 5분 정도 내려서니 시간을 초월한 듯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온 고사목들이 등산로 양쪽으로 간간히 모습을 드러낸다. 또한 한라산에 가장 많이 분포한다는 구상나무 군락은 이 나무가 왜 서양으로 넘어가 크리스마스트리용 나무가 되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정상에서 내려선 지 20여분, 탐라계곡 건너 장구목 능선의 편편한 초원지대가 한 눈에 조망되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남쪽의 백록담에서 흘러나온 구름이 탐라계곡으로 쏟아지는 모습이 장관을 연출해 산행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입에서는 연신 감탄사가 흘러나오지만 뿌연 구름이 춤추듯 하늘을 떠도는 비경은 글로서는 도저히 표현하기조차 힘들다. 한라산이 아니고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명경이리라.

왕관 능선에서 왼쪽 산사면의 가파른 돌계단을 10여분 내려서니 용진각대피소 터다. 2007년 태풍 나리에 의해 유실된 용진각대피소는 이제 터만 남았고 현재는 삼각봉대피소에서 한라산 산행을 통제하고 있다. 용진각대피소 터에서 10여분 걸어 내려오니 삼각봉대피소다. 대피소에 들어가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하산을 시작했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20분 정도 내려서니 개미목 이정표가 나타났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개미목 능선의 동쪽 계곡이 탐라계곡이며, 서쪽 계곡은 개미계곡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지루한 하산 길을 한참 동안 걸었다. 산행객들도 묵묵히 걷기만 하니 지칠 대로 지친 모습이다. 탐라계곡대피소를 지나자 계곡을 가로지른 흔들다리가 나타났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니 한라산의 덩치만큼이나 어마어마한 탐라계곡의 실체가 드러났다. 평소에는 물이 없는 건천이지만, 비가 많이 올 때면 물이 불어나 장관을 보여주는 계곡이다.

한라산 정상에서 분출한 용암이 흘러 산을 만들고 섬을 만들었다. 왕관처럼 생긴 바위를 만들기도 하고, 고지대의 이색적인 장구목의 초원지대를 만들기도 했다. 구멍이 숭숭 뚫려 마르고 거친 산과 땅에도 울창한 숲이 우거지고 다양한 식생이 살아 숨 쉬는 것이다.

▲ 한라산 오름 중에 만난 노루. 한라산 주변에는 야생 노루가 서식하고 있다
“서걱서걱” 등산로 주위를 빼곡히 메운 조릿대 사이에서 어떤 움직임이 포착됐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커다란 눈망울을 깜박이며 노루 한 마리가 인사를 건넨다. 한라산에 서식하는 노루가 운 좋게도 기자의 눈에 띈 것이다. 야생에서 살아가는 노루를 보고나니 한라산이 천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 이름다운 섬 제주. 한라산이 곧 제주요, 제주가 곧 한라산이다
정상에서 하산한 지 꼬박 3시간. 옛 선조들이 얼음 창고로 활용했다는 구린굴이다. 구린굴 을 지나니 바로 관음사야영장이다. 화장실과 취사장 등의 기본 편의시설을 갖춘 이곳은 한라산을 찾는 사람들이 즐겨 이용하는 야영장이다. 야영장의 데크에 둘째 날 밤을 지켜줄 소형 텐트를 쳤다. 한라산의 밤은 바람과의 싸움이다. 하지만 시린 바람에도 사람들이 한라산을 찾는 것은 다리품을 팔아야만 얻을 수 있는 멋진 풍경과 모통이를 돌 때마다 나타나는 자연의 신비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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