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맛있는데 표현할 방법이 없네”
“참 맛있는데 표현할 방법이 없네”
  • 글 사진·박찬일 기자
  • 승인 2011.05.1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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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뽕

▲ 전국에서 맛있다는 전통의 짬뽕을 보면 걸쭉한 국물에서 돼지 맛이 난다

당신이 혹시 나이 마흔이 넘었다면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중국집에 짬뽕을 주문하면 짐자전거에 ‘철가방’-그 시절에는 그냥 배달통이라고 불렀고, 가벼운 알루미늄 제품이 나오기 전에는 나무통을 썼다-을 싣고 왔다. 한 손에 짬뽕 국물이 든 양은 주전자를 여러 개 꿰고, 다른 한 손으로 곡예 운전을 하면서 말이다.
플라스틱 랩이 생기기 전, 짬뽕 국물이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국물만 따로 주전자에 담아서 배달했던 것이다. 아무 것도 덧씌우지 않은 그릇에는 면과 오징어, 홍합 같은 고명이 놓여 있었다. 배달꾼은 주전자를 기울여 그릇 가득 국물을 부어 주었다. 내 기억으로는 주전자는 그대로 회수해 갔던 것 같다.

맵고 진한 맛의 그 국물을 먹기 위해 어린 나는 침을 삼키며 기다렸다. 별달리 먹잘 게 없던 시절, 어린아이들도 매운 걸 잘 먹었다. 심지어 나는 한 종지의 깐 마늘을 고추장에 찍어 간식처럼 먹어치운 적도 있었다. 불과 일곱 살 때의 일이다. 나의 위장병은 아마도 그때 시작된 것 같기도 하다.

돼지뼈와 돼지고기로 우려내야 진국
고등학교 때 한번은 친구들과 자장면 먹기 내기를 했다. 내가 곱빼기 두 그릇 반을 먹고 결승에서 졌다. 상대는 자그마치 곱빼기로 세 그릇을 먹고도 후식(?)으로 군만두까지 한 그릇 추가 주문을 하는 기염을 토했다. 녀석은 군대도 면제받을 만큼 과체중이었는데, 문방구에서 파는 교련복 요대가 맞는 게 없어 두 개를 사서 잇대어 썼으니 그 덩치를 짐작하실 수 있겠다.

약이 오른 나는 녀석이 매운 걸 못 먹는다는 걸 간파하고서 짬뽕으로 다시 겨루기로 했다. 앞서 밝힌 대로 나는 매운 걸 정말 잘 먹었기 때문이다. 각자 짬뽕 두 그릇(물론 곱빼기다) 정도를 비워갈 즈음, 내가 앞서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녀석이 ‘클레임’을 거는 게 아닌가.

“야, 짬뽕은 국물이야.”

응? 나는 국물을 상당 부분 남기고 있었는데 그걸 녀석이 꼬집고 나선 거였다. 심판을 보던 다른 친구가 내 눈치를 살피더니 “뭐, 틀린 말이 아니네”하고 녀석의 손을 들어주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짬뽕은 국물! 맞다. 나는 짬뽕이 매워서가 아니라 국물 때문에 속으로 울었다. 거금 짬뽕값-아마 곱빼기 그릇당 1천원 정도 했을 듯-을 내야해서 또 울었다. 뱃구레가 녀석과 상대가 안 되는 나로서는 국물까지 알뜰하게 마시게 되면 도저히 녀석을 이길 수 없었다.

짬뽕은 국물이 맞는 게, 둘이서 자장면과 짬뽕을 시켰을 때 자장면 시킨 사람이 이렇게 얘기하면 증오한다. 물론 나는 짬뽕을 시켰을 때다. 

“어이, 짬뽕 국물 좀 남겨줘.”
“택도 없다. 국물 먹으려고 짬뽕 시켰거든!”

짬뽕 국물에 대한 오해도 좀 있다. 짬뽕은 해물을 넣어주니 국물도 해물 맛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짬뽕 국물 맛의 기본은 고기 육수다. 요즘은 닭뼈나 흔히 ‘치킨 스톡’이라고 부르는 분말이나 페이스트를 많이 쓴다. 그런데 제대로 된 짬뽕은 돼지뼈와 돼지고기로 국물을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예전 방식이 그랬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국에서 맛있다는 전통의 짬뽕을 보면 걸쭉한 국물에서 돼지 맛이 난다. 또 센 불에 볶은 돼지고기가 고명으로 많이 쓰인다. 짬뽕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 말이 맞다는 느낌이 온다. 자, 짬뽕의 무릉도원으로 조각배를 몰아 가보자.

▲ 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하얀 국물의 나가사키 짬뽕. 나가사키가 개항이 되고 외국인이 들끓던 시절에 만들어졌다.

한중일 세 나라의 ‘짬뽕 삼국지’

짬뽕은 내가 명명한 적이 있는데, 이른바 ‘짬뽕 삼국지’다. 나가사키 짬뽕이라고 들어보셨나. 한국의 이자카야 같은 곳에서 파는 국물이 하얀 짬뽕을 일컫는다. 일본인들은 매운 것을 거의 먹지 않으니 짬뽕도 맵지 않게 먹는다.

이 짬뽕은 여러 설이 있는데, 나가사키가 개항이 되고 외국인이 들끓던 시절에 시작되었다는 게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중국 푸첸성 출신의 진평순(陣平順)이 중국 유학생들을 위해 처음 고안해서 만들어 팔았다는 얘기가 있다. 그 후 한국에는 일제시대에 전파되었고 그것이 현재의 한국 짬뽕이라는 게 ‘전설’의 골자다.
짬뽕이 산둥성 출신의 화교 요리사들에 의해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지만, 짬뽕(ちやんぽん)이라는 일본어를 보면 어쨌든 일본에서 영향을 받은 게 확실해 보인다. 그래서 중국인이 만들고, 일본에서 시작됐으며, 한국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삼국지’가 완성된다.

짬뽕은 국물이 중요한 음식이지만 곁들이는 채소도 맛을 내는데 중요하다. 중국 요리는 매우 강력한 화력으로 재료를 순식간에 볶는다. 재료의 수분을 가두면서 빠르게 익힌다. 얼마나 불이 세면 요즘 팔리는 중화요리용 가스레인지의 상품명이 ‘제트 버너’다. 제트기처럼 무서운 화염을 뿜는다는 뜻일 것이다. 채소가 불과 기름에 볶아지면서 아삭한 식감과 ‘불맛’이라고 부르는 탄 기운을 얻는다.

중국 요릿집 주방에 들어가면 우선 그 ‘제트 엔진’의 요란한 소음에 귀가 먹먹해지고, 연기에 눈이 매워지고, 기름 태운 기운에 코가 마비된다. 커다란 웍을 자유자재로 흔들며 볶을 때 기름이 웍 근처로 강력한 불기운을 빚어내는 걸 보게 된다.

그렇게 요리한 짬뽕은 약간 씁쓸하면서 기름을 태운 듯한 맛이 식욕을 강하게 자극한다. 나는 짬뽕 국물에 검댕이 둥둥 떠 있어야 ‘아, 이 집이 제대로 채소와 해물을 볶았구나’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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