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피클이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먹을까
만약 피클이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먹을까
  • 글 사진·박찬일 기자
  • 승인 2011.08.04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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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난고난 파스타

우리나라에 파스타가 들어온 건 기록이 없어서 잘 알 수는 없다. 서울시청 쪽에 ‘라 칸티나’라는 오래된 이탈리아 식당이 있고 남산 하얏트호텔 앞에도 꽤 역사 있는 집이 있으나, 그래봤자 20년이 조금 넘는 선이다. 아마도, 미군부대를 통해서 파스타를 먹는 문화가 한국에 조금씩 흘러들어온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꽤 있는데, 만약 파스타 문화가 이탈리아에서 직수입되었다면 있을 수 없는 특별하고도(?) 묘한 스타일이 한국에서 ‘본토식’이라고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긴, 김치가 일본에 건너가면 ‘기무치’가 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니 이탈리아식 파스타가 한국에서 왜곡되었다고 뭐라 할 일은 아니다. 다만, 흔히 하는 말로 '알고는 먹자'는 게 내 생각이다.

한국인의 유별난 김치 사랑

우선 이탈리아엔 없는 피클이다. 한국처럼 김치가 없으면 밥 한술 못 넘기는 민족은 아마도 전 세계에 없을 것이다. 피클이며, 독일의 양배추김치며, 일본의 오신코며(다쿠앙도 오신코의 일종), 중국의 짜샤이며, 이탈리아의 자르디니에라며 김치 노릇을 하는 절임 채소는 전 세계인이 먹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유독 한국인만 모든 음식에 반드시 김치를 곁들인다. 다른 나라는 위에 열거한 김치류가 어떤 요리에는 함께 먹기도 하고, 아예 빠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탕면 한 그릇을 시켜보자. 다쿠앙은 물론 양파 한 쪽 주는 일 없다. 그걸 얻어먹으려면 안 되는 한자며 손짓발짓을 써도 겨우 될까 말까다.

한번은 일본에 후배와 간 적이 있는데, 거리의 어느 전문점에서 라멘을 시켰다. 먹음직한 라멘이 당도하고, 나는 막 젓가락을 들고 입에 우겨넣고 있는데 후배 녀석은 멀뚱, 그릇만 쳐다보고 있다. 응?
“아, 형. 다쿠앙 나오면 함께 먹으려구요.”

오홋. 아서라. 다쿠앙 따위는 라멘집에 없는 경우가 태반이란다. 결국 녀석은 라멘을 먹기는 먹었으되, 느끼하네 어쩌네 투덜거렸다. 오죽하면 여행갈 때 김치봉지를 주섬주섬 넣어가는 게 보통이냔 말이다. 내가 아는 한 친구는 신혼여행을 가면서(그것도 폼 나는 몰디브) 김치가게를 차릴 정도로 가짓수를 챙겼다. 아내가 김치 없이는 빵 한 쪽을 못 먹는 체질이라나 뭐라나.

배추김치를 익은 것과(김치찌개를 끓여먹을 작정이었단다) 햇김치를 따로 담고, 총각김치와 고들빼기김치까지 넣었다. “왜, 아예 물김치도 한 단지 싸가지 그랬어”라고 내가 비웃자 친구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안 그래도 볶음밥을 먹는데 그 생각이 나더라니까.”

이탈리아에 피클이 없다는 얘기는 드라마 <파스타>에 나의 감수로 에피소드가 삽입됐고, 내 책에도 사람들이 즐겨 회자하는 내용으로 들어 있다. 파스타나 피자에 피클이 들어간 원류를 추적해보면, 확실히 미국 쪽이 맞는 듯하다. 달콤한 피클을 먹는 나라가 미국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엔 없는 미트소스 스파게티

다음으로는 미트소스 스파게티다. 이것 역시 이탈리아에는 없는 파스타다. 이건 뭔 소리, 내가 분명히 이탈리아에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고 인증 샷까지 보내오실 분도 있겠다.

그렇다면, 그건 아마도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진 메뉴이거나 스파게티면이 아니라 다른 넓적한 면일 가능성이 100%다. 미트소스는 흔히 ‘볼로네제’라고 부른다. 볼로냐(Bologna)식 파스타라는 뜻이다.
 
이 지역은 고기를 갈아 약간의 토마토소스와 레드와인을 넣고 푹 끓인 후 먹는 볼로네제 소스의 원산지이다. 그런데 이 소스는 절대적이라고 할 만큼 넓적한 탈리아텔레면(또는 파파르델레 같은 더 넓은 면)을 써야 한다.
스파게티에 버무리는 건 마치 우리가 콩 대신 팥으로 된장을 쑤는 것처럼 어색한 일이기 때문이다. 크림소스도 눈 씻고 찾아봐야 구경할 수 없다. 간혹 크림소스처럼 보이는 것이 있기는 하되, 마치 스프처럼 흥건한 한국식이 아니라 되직하고 짠 치즈소스일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많은 양의 소스를 먹는 일이 보통이 됐다. 자장면도 원래 이렇게 소스가 많지 않았다. 조금씩 양이 늘더니 기어이 현재의 상태가 됐다. 많은 양의 소스는 면의 개성을 죽이고, 소화를 저해한다는 전문적인 말을 덧붙이지 않더라도 문제가 많다. 그 많은 소스를 다 먹지 않으니 버리게 되는 음식쓰레기는 또 얼마더냔 말이다. 그러니까 이탈리아에서 이렇게 외쳐봐야 절대 식당에서 사 먹을 수 없는 일이다.

“응, 난 크림소스 해물 스파게티!”

피자 얘기를 조금 더 하면, 첫째 배달 피자가 없다. 배달이란 정말 한국이 세계 최고다. 오죽하면 배달의 민족이라고 농담을 하겠나. 둘째, 한국에서 먹는 원형의 피자는 저녁에만 먹을 수 있다. 물론 피자집에서 피클은 절대 안 주며, 잘라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피자를 시키면 포크와 나이프를 준다. 흔히 서빙 나이프라고 부르는 도구는 아예 없으니 찾지도 말 것. 물론 고구마 리치 피자도 없고, 더블 크러스트 치즈 피자는 물론, 오마이립 갈릭이나 차슈차슈도 없는 건 아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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