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룩’소리에 높아만 가는 주방장 콧대
‘후루룩’소리에 높아만 가는 주방장 콧대
  • 글 사진·박찬일 기자
  • 승인 2011.04.06 11:3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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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멘

요리 솜씨라고는 김혜자나 고두심에게 맡긴 듯한 사람을 흔히 ‘라면도 하나 못 끓인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게 바다를 건너면 요리의 한 마당을 이루는 것을 넘어, 장인의 세계로까지 우러르기도 한다. 물론, 봉지를 뜯어 끓이기만 하면 되는 인스턴트 라면과는 좀 질이 다르기는 하다.

일본인들의 라면 사랑은 상상을 초월한다. 봉지 라면은 한국인이 더 많이 먹지만, 요리다운 한 그릇의 제대로 끓인 ‘라멘’은 이제 국민 음식의 반열에까지 올랐다. 전국 단위는 물론 각 현과 도시별로 해마다 각종 라멘 대회가 열린다. 수상하기만 하면 돈방석과 유명세를 동시에 오를 수 있는 까닭이다. 맛있다고 소문이 나거나 어디 수상 경력이 있는 라멘집에 가면, 주방장이 얼마나 콧대가 센지 고개를 바짝 쳐들고 있어서 아예 손님들을 콧구멍으로 맞이하는 형국을 보게 된다. 그래도 좋다고, 줄을 서는 건 기본이고 라멘 그릇을 던져주면 감읍하는 표정들을 짓는 것이다.

▲ 유명 라멘집에 가면 줄을 서는 건 기본이고 라멘 그릇을 던져주어도 감읍하는 표정을 지으며 먹는다.

우동의 아성을 허무는 라멘

일본은 원래 ‘우동’의 나라였다. 그러던 것이, 라멘이 우동을 완전히 밟고 서서 그 간격을 더욱 벌리고 있다. 우동의 자존심을 가진 사누키 지역에서조차 관광객들이나 우동을 먹지 현지인들은 라멘 가게에서 죽친다고들 하지 않는가. 우동의 밋밋하고 슴슴한 맛과 달리 자극적이고 입천장에 쩍쩍 붙는 그 감칠맛은 이미 대세를 가르고도 남는다. 비록 그 맛이 폭발하는 인공 글루타민산의 여진이라고 해도 말이다.

라멘의 일본 기원설은 16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대체로 전후에 유행하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 중국인들이 중화 요릿집으로 진출하면서 시작되었고, 거의 동시에 제국주의 기간 동안 중국 대륙에서 요리를 배워온 일본인들의 라멘집도 번성하기 시작했다. 이후 라멘은 일본에서 하나의 전형을 이루게 된다. 후루룩, 값싸게 때울 수 있으면서 동시에 뼈 우린 국물의 높은 영양가에 복종했던 것이다.

도쿄올림픽을 전후하여 영양 제일주의의 시대를 거치면서 라멘의 높은 칼로리는 곧 영양으로 받아들여졌던 셈이다. 대부분의 일본 요리가 3대니 4대니 대를 이은 노포(老鋪)를 자랑하는데 비해, 라멘집들은 그런 호들갑이 없는 것이 바로 이런 라멘의 역사와 잇대어 있다.

일본에 가서 일본 라멘을 먹으면 나는 도시의 불빛이 저물고 쓸쓸한 샐러리맨의 어깨가 눈에 삼삼하게 그려진다. 일본인들이 라멘을 먹는 한 방법은 바로 해장용이다. 회식 등의 저녁 술자리를 마친 회사 인간들은 여럿이 어울리거나 아니면 혼자서 출출한 배를 달래기 위해 라멘집에 들른다. 특이하게도 국물로 여간 배가 부르지 않을 텐데도 해장술은 생맥주를 곁들여야 한다. 도저히 궁합이 맞지 않을 것 같은 이런 조합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떻든, 제법 그들의 방법을 따라하면 묘하게 아귀가 물려가는 느낌이 있다.

시원한 생맥주와 함께 먹는 맛  
뜨거운 라멘 국물과 시원한 생맥주가 입안과 뱃속에 충돌한다. 심지어는 온천장 호텔의 야간 ‘스나꾸 식당’에서도 사람들이 몰려 라멘과 생맥주를 마신다. 온천쯤 왔으면 그 지역의 별미나 하다못해 온천물에 삶은 달걀인 온센 다마고에 조용히 사케 잔을 기울여야 그럴 듯 해보이지 않을까. 나의 이런 생각을 그들이 알 리 없고, 여전히 “이봐! 나마삐루를 가져오라고”를 외치는 호기로운 아저씨들로 스나꾸의 밤이 깊어간다. 

나는 이런 일본식 라멘 먹기가 일본 라멘의 스타일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인스턴트 라멘은 국물이 엷다. 고기나 닭과 돼지의 뼈로 우린 두껍고 진한 국물이 아니다. 그러니 뭔가 상쾌한 술을 곁들일 여지가 별로 없다. 그러나 라멘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진하디 진하며, 무엇보다 엄청나게 짜다. 라멘에 김치 같은 짠지나 다쿠앙을 먹지 않는 것도 아마 이런 이유일 것이다. 그러니 진하고 무거우며 짠 국물을 식혀주고 희석해줄 무엇이 필요하지 않을까. 일본인들이 사랑해마지 않는 맥주가 여기 등장하는 건 너무도 자연스럽다.

일본은 생각보다 훨씬 넓다. 도쿄를 중심으로 한 간토 지방과 오사카의 간사이 지방은 오랜 앙숙 관계다. 두 지역의 야구팀이 일본 시리즈에서라도 만난다면 정말 열도가 들썩인다. 그러나 그 지역이 일본의 전부는 아니다. 규슈와 도호쿠, 홋카이도는 또 우습게 볼 일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넓은 일본땅인지라 라멘을 먹는 스타일도 내 눈에는 다르게 보인다. 제 속을 잘 보여주지 않는 도쿄 사람들은 라멘도 다소곳하고 새침하게 먹는다. 심야 라멘집은 혼자서 라멘 한 그릇과 맥주 한 잔을 곁들이는 감색 양복의 샐러리맨들이 많다. 그들이 라멘을 먹고 서류 가방을 끼고 지하철역을 향해 흔들리며 걷는 뒷모습은 도쿄의 애수 이상의 무엇이 있다.

반면 오사카나 규슈 지방에서 보는 심야 라멘집은 좀 다르다. 후쿠오카 같은 곳에서는 아예 시내 천변을 끼고 늘어선 라멘 포장마차가 성시를 이루어 쓸쓸한 도쿄의 서정 같은 건 발  붙일 데도 없다. 왁자지껄하게 호객을 하고 라멘을 들이키는 남부 지방다운 거칠고 질박한 염분이 공기 중에 가득 차 있다. 에잇, 뭐 욕설이라도 하면서 라멘과 생맥주를 먹어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을 것 같은 여유가 넘친다. 후루룩! 다행히도 도쿄라고 해도 라멘은 이렇게 호기롭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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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ry 2011-07-01 15:23:06
That's really tikhinng out of the box. Than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