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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동안 송아지 내장만 썬 ‘달인’
30년 동안 송아지 내장만 썬 ‘달인’
  • 글 사진·박찬일 기자
  • 승인 2011.04.2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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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내장탕,시칠리아 햄버거

▲ 30년 동안 이 가게에서 송아지 내장만 썬 시칠리아의 사나이
전국은 물론, 전 세계를 떠돌면 틀림없이 ‘괴식(怪食)’이라고 부를 만한 음식을 먹게 된다. 얌전하게 맥도널드를 찾아 감자튀김을 씹거나, 아니면 슈퍼마켓에서 빵을 사서 씹고 돌아다녀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패스트푸드점이 없는 지역이 여간 많은 게 아니고-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 켄터키 프라이드의 흰색 양복 입은 할아버지를 찾지 마시라-현지인과 동화의 순간을 맞아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뭐, 추억의 이름으로 한 그릇 먹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인도기행> <티베트기행>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후지와라 신야의 <동양기행>은 아주 감명 깊은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터키에서 출발,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돌아가는 기행을 책에 옮겨 놓았다. 그중 티베트 편에서 괴식을 맛보게 된다. 히말라야 고산에 있는 절에 들어간 그는 ‘마치 흙이나 초식동물의 배설물 같은’ 한 덩어리의 음식을 받는다. 나그네라고 다른 음식을 주지 않는 오지의 절. 그는 구역질을 하며 그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허기의 끝에 다다르자 그 음식에서 맛있는 풍미를 느끼게 된다. 음식물을 거의 구하지 못하는 그 절은 철저하게 직접 농사를 짓거나 채집한 식물로 끼니를 이었다. 후지와라가 먹은 그 음식은 ‘파파’라는 이름의 밀보리겨였다.  문명의 혀를 만족시키는 어떤 맛도 없는 그 음식을 먹으면서 그는 세속의 풍진을 비로소 떨어내게 된다.

이탈리아에도 소내장탕이 있다

▲ 시칠리아 햄버거는 송아지 내장으로 만든다.
그는 터키에서 기막힌 음식을 먹어본다. 특히 양머리 통구이나 양 내장 스프는 그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을 던져주지만, 세상의 끝을 여행하는 후지와라다운 결기로 그 맛을 극복한다. 양고기는 특유의 냄새 때문에 한국인도 좋아하는 이가 드물다. 후지와라는 양 머리를 둘로 쪼개 뇌수를 꺼내 먹는 요리까지 도전한다. 그에게 괴식이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통과의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괴식은 아니지만, 그는 버마(지금의 미얀마)에서 놀라운 음식을 접한다. 노천 식당에서 앉아 음식을 먹는데, 어린 소년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흔한 소매치기나 들치기 정도로 오해한 후지와라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소년들은 따가운 볕을 가려주느라 식사시간 내내 그에게 그림자를 선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탈리아에 가기 전에 소 내장 따위는 한국이나 먹는 줄 알았다. 미국에서는 소 내장으로 고양이나 개 먹이를 만들고, 소꼬리조차 잘 먹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초기 미국 유학생들은 정육점에서 소꼬리나 사골을 얻어다가 버터를 넣고 끓여 체력 보충을 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쨌든 미국과 달리 유럽은 목축이 쉬운 땅이 아니었고, 당연히 고기가 흔하지 않아 알뜰하게 모든 부위를 먹었다. 물론 한국처럼 ‘수구레’-소가죽 아래의 젤라틴 성분을 끓인 후 식혀 만든 음식-까지 먹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프랑스ㆍ이탈리아ㆍ독일 등은 고기를 먹는 방법이 비슷하다. 특히 소나 돼지의 모든 부위를 알뜰하게 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순대, 머리고기까지 우리와 비슷한 방법으로 먹는다. 프랑스의 부뎅은 꼭 순대를 닮았다. 당면이나 쌀을 넣지만 않지만, 피를 넣기 때문에 검은색을 띠는 게 꼭 순대랑 비슷하다. 머리고기나 족발도 즐긴다. 머리고기를 삶아서 누른 후 편육을 만드는 것까지 흡사하다. 인류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건, 어느 인종이나 비슷하게 마련이다.

소 내장도 아주 즐겨 먹는다. 한국에 와서, 내가 이탈리아식으로 소 내장 요리를 처음 세상에 선보였다.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마치 한국의 곱창전골과 비슷한 요리다. 다만 가루 치즈를 뿌려 먹는다는 점 정도가 다르다. 이탈리아를 여행할 깨 겨울에는 꼭 이 소내장탕을 시켜 먹었다. 우선 값이 쌌다. 한 그릇에 1만 원 정도. 스테이크는 2만원이 넘으니 비교적 좋은 값이었다. 이탈리아 요리는 뜨겁게 요리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런데 이 소내장탕은 뜨끈하고, 어떤 경우에는 매운 고추를 넣어 얼큰하게 만든다. 한국인 식성에 딱 맞는다. 이름은 주파 디 트리파(zuppa di trippa)다. 겨울에는 대부분의 추운 지역에서 다 먹으니 메뉴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여름에는 냉채를 만들기도 한다. 한국도 소의 양으로 만든 냉채무침을 만든다. 비슷한 맛이다.

소 내장이 들어간 시칠리아 햄버거
이중 괴식이라고 할 만한 소 내장 요리는 시칠리아에서 만났다. 시칠리아는 지중해에 떠 있는 거대한 섬이다. 지도를 보면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 반도가 냅다 걷어차는 삼각형의 물체가 바로 시칠리아 섬이다. 역사 이래 수많은 외적의 침탈과 지배를 겪은 슬픈 운명의 섬이기도 하다. 사라센ㆍ무어인ㆍ신성로마제국ㆍ스페인ㆍ미국 등 수많은 이방인의 점령을 겪었다. 그래서 시칠리아인들은 마음을 잘 안 내준다. 마피아가 이 땅에 생긴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을 무대로 한다. 마피아는 원래 지주와 외래 세력에 대한 농민들의 자주 방위 조직이었다.

어쨌든 나는 이 지역에서 요리사 생활을 했다. 그런데 그 동안에도 몰랐던 소 내장 요리를 팔레르모에서 보게 됐다. 작년의 일이다. 팔레르모의 해안가를 걷고 있는데, 희한한 가게가 눈에 들었다. 연륜이 들어 보이는 가게였고 손님들이 많았다. 요리사인 나의 호기심을 끌만했다. 가게 안은 식당 홀이자 주방이었다. 메뉴는 딱 하나. 무슨 햄버거 같았다. 그런데 속에 들어가는 것이 달랐다. 남정네 여럿이 끓이고 썰고 있는 건 소 내장이었다. 허파ㆍ심장ㆍ간……. 모두 송아지 것이라고 했다.

이탈리아에선 수컷 송아지는 일찍 잡는다. 암컷은 우유를 생산하니까 오래 기른다. 송아지 내장이므로 부드럽다. 누린내도 거의 나지 않는다. 이 내장을 햄버거 빵에 넣고 레몬즙을 짜서 먹는다. 별다른 양념이 없는데도 맛이 기막히다. 같이 간 시인 최갑수는 호기심이 넘쳐서 빵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주인과 대화를 나눴다. 오직 30년을 이 가게에서 송아지 내장만 썬 사나이다. 그에게 왜 시칠리아에서 송아지 내장 햄버거가 있느냐고 물었다.

“음, 시칠리아는 가난했으니까 고기는 먹을 수 없고 값이 싼 내장으로 햄버거를 만들 수밖에. 그게 시칠리아의 음식이지.”

등심 같은 구이거리는 부자에게 내어주고, 내장으로 탕을 끓였던 우리 민중들의 음식과 흡사했다. 역사의 음식에는 계급이 있다. 그럴 깨우친 시칠리아의 내장 햄버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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