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이, 근데 왕왕특이오 왕 특특이오?
“오케이, 근데 왕왕특이오 왕 특특이오?
  • 글·박찬일 기자
  • 승인 2011.09.30 1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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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살다 보면 어떤 깨달음의 단계에 다다를 때가 있다. 그렇다고 내 주제에 득도를 한다고 해도 믿을 사람은 없을 테고, 아마도 ‘저 인간, 또 무슨 농담을 하려고 저러나’ 할 거다. 곧장 질러가서 말하자. 바로 ‘인간사 수많은 음식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대명제, 왜 몸에 좋은 건 맛이 없나’다. 다시 말해서 몸에 나쁜 건 맛이 좋다는 뜻이다.

담배를 떠올려 보라. 한 대의 여유, 일상의 도피, 도파민이 우루루 쏟아져 나온다는 만족감, 특히 에스프레소 커피와의 절묘한 궁합…. 더 이상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는 진정 울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

실제 살아보니 더 그 말이 사무친다. 담배가 몸에 좋았다면, 내 주치의는 이렇게 권고했을 거다.
“참 안 된 말씀입니다만, 힘드시더라도 담배를 두 갑 정도 피워주세요. 뭐, 쉽지 않다는 건 압니다. 정육점 이 사장 아시죠? 그 양반, 담배 끊더니 비명에 가셨다는 거 아닙니까? 몸 생각해서…….”

요리사 괴롭히는 무궁무진한 요리법

오늘은 달걀 얘기다. 그런데 웬 건강 타령부터 늘어놓았냐고? 바로 내가 달걀귀신이기 때문이다. 나는 달걀을 너무 좋아한다. 냉장고의 달걀 트레이에 좌악, 노란 달걀이 늘어서 있으면 기분이 좋아서 냉장고를 수시로 여닫고 싶어지는 종류의 인간이다.

밤참으로 으뜸은 삶은 달걀 다섯 개요, 아침밥에 달걀말이나 프라이가 올라오면 생일상이다. 찜질방에서 맥반석 달걀을 안 먹는 놈을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그런 인간 말이다. 내 주치의는 담배를 권해주지는 못할망정 달걀을 조절하라고 경고했다.

“나이 오십이 다 되어서 아직도 그렇게 계란을 많이 먹으니 콜레스테롤이 높지. 소화도 잘 안 되고 그러니 줄이라고.”

달걀은 언제부터 인간이 먹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달걀이 생기면서부터 미식과 요리의 신기원이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맛있는 과자와 아이스크림에 달걀이 절대 빠지지 않는다.

특히 달걀의 노른자와 흰자위로 분리되는 두 가지 다른 성질은 화려한 미식의 열쇠가 됐다. 프랑스 요리에서 사람들을 감탄하게 만드는 크렘브륄레나 슈크림, 커스타드를 넣은 샌드가 노른자위의 마력이라면, 한없이 부풀어 올라 미식의 허영을 충족시키는 수플레, 중독성의 마카롱 같은 과자는 흰자위의 변신으로 가능해진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요리사이자 제과사 앙투안 카렘은 이런 달걀의 특성을 십분 이용한 다양한 요리와 과자로 세계를 풍미했다.

그의 기술은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의 입을 즐겁게 해준다. 만약 달걀이 없었다면, 특히나 대량 밀집 사육으로 값싸고 풍부한 달걀이 시장에 나오지 못했다면 지금 우리의 음식사는 다시 써야할 지경이다.

달걀 한 개는 100원 남짓에 불과하다. 그렇게 값싼 달걀이지만 무궁무진한 요리법으로 요리사들을 괴롭힌다. 주로 미국이나 영국 요리사에게 해당되지만, 간단한 아침 달걀 요리 하나에도 A4용지 몇 장을 채우고도 남을 요리법이 있다.

우선 프라이를 보자. 뒤집지 않고 한쪽만 익히는 서니 사이드 업, 뒤집지만 살짝 굽는 오버 이지, 완전히 익히는 오버 하드 등으로 나뉜다.

영국이나 미국의 고급 호텔의 아침 식사는 다른 건 몰라도 달걀만큼은 요리사가 직접 불을 때서 즉석에서 요리하는 게 원칙이다. 파랗게 면도를 한, 갓 수습을 뗐을 것 같은 어린 요리사가 살가운 표정으로 주문을 받아 만들어주는 달걀 요리는 정말 받아먹을 만한 가치가 있다.

앞서의 프라이 요리는 물론, 다른 요리도 다 된다. 마구 휘젓는 것 같지만 일정한 농도와 질감을 내야 하는, 그래서 초보 요리사를 골탕 먹이는 스크램블 에그도 있고, 끓는 물에 예쁘게 익혀내는 수란(水卵)도 있다.

치즈 등의 고명을 얹어 오븐에서 굽는 시어드 에그도 있으며 반숙이나 완숙 달걀은 기본이다. 고급 호텔에서 할 짓은 못되지만, 양쪽으로 젓가락 구멍을 내어-아, 놀라운 물리력의 해석-쪽 빨아먹는 날달걀은 또 어떻고.

초간장에 찍어먹는 달걀말이

내게 감동적인 달걀 프라이는 영국도, 미국도 아닌 뉴칼레도니아의 한 호텔이었다. 그것이 프렌치식이었는지 아니면 관광객이 많으니 미국식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매우 예술적인 달걀 요리를 맛보았다는 점이다. 메이드복을 입은 뚱뚱한 원주민 아주머니가 두꺼운 무쇠솥-그래, 팬보다는 거의 솥처럼 보였다-에 기름을 엄청나게 붓고 자글자글 끓이다가 프라이 주문이 들어오면 튀기듯 프라이를 했다.

흰자위의 겉은 바삭했지만 질기지 않았고, 노른자위는 밑면에서부터 익힘 정도가 다 달랐다. 미디엄웰던에서 레어까지 노른자위의 층위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노른자위의 아래쪽은 살짝 씹혔고, 위쪽은 크림처럼 입안에 가득 퍼졌다. 달걀은 신이 준 선물이라는 얘기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달걀을 둘러싼 고통스러운 기억을 가진 이들도 있다. 내 요리학교 후배들의 얘기다. 한 녀석은 실습하는 식당에서 밥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 노예처럼 부려만 먹었나보다.

저녁밥이라고 주는 게 파스타 한 그릇에 메인 요리로 달걀 프라이였다. 그것도 오일이 아닌 버터에 부친 달걀이었다고 한다. 안 그래도 느끼한 음식에 신물이 난 한국인에게 버터에 부친 달걀은 고문이었을 것 같다.
또 한 녀석은 아예 달걀 때문에 실습 식당을 박차고 나와 버렸다. 먹는 게 부실해서 하도 배가 고파 손님의 아침식사용 삶은 달걀을 하나 먹었다가 발각이 됐다. 결국 주인에게 바가지로 욕을 얻어먹었다고 한다. 나는 두 녀석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은 건 아니다.

셰프의 딸을 집적거렸거나, 주방에서 김치찌개를 끓여먹다가 들통이 나거나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버터에 부친 프라이라면 뛰쳐나올 만하다고도 본다. 물론이다. 그래도 한번쯤 먹어보고 싶다. 세상에, 버터라니!

여러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질문 한 가지. 도매상에 달걀을 주문하면 그가 이렇게 되묻는다. 과연 이게 농담일까 진담일까.

“아, 계란 한판? 오케이. 근데 왕왕특이오 왕특특이오? 왕왕대, 특대왕란도 좋은데. 뭘로 드릴까?”

물론 농담이다. 달걀의 공식 분류는 왕-특-대-중-소-경으로 나뉜다. 그러니까 제법 실하다고 볼 수 있는 ‘중’이 결코 중이 아니라 메추리알 만하다는 것이다.

하긴, 쇠고기 등급도 코미디다. 1등급을 사면, 그게 3등급이니까, 투 플러스, 원 플러스 다음 등급이기 때문이다. 뭐든, 과잉과 머리만 큰 한국식 코미디다. 초등학교 때 피아노나 미술대회 나가면 8할이 우수상 이상이다. 꼴찌는? 물론 장려상 정도는 된다.

각설하고, 달걀말이에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싶은 초여름 밤이 이어진다. 달걀말이는 그냥 먹어도 좋지만, 초간장에 찍어보시라. 음, 필 소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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