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아웃도어의 ‘애니콜’이 없을까
우리는 왜 아웃도어의 ‘애니콜’이 없을까
  • 박성용 기자
  • 승인 2011.09.15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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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독일 프리드리히샤펜에서 열렸던 아웃도어 전시회에 890개 브랜드가 참가했다. 전 세계에 유통되는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올해 4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우리나라의 시장 규모는 미국과 독일에 이어 세 번째로 크다고 한다.

이렇게 단시일에 시장이 급성장한 것은 그만큼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속빈 강정처럼 보인다. 이렇다 할 우리의 글로벌 브랜드가 보이지 않아서다. 아웃도어 문화가 유럽과 북미에서 건너온 것을 감안하면 일견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시장 규모가 4조원 대로 성장하는 동안 우리는 왜 아웃도어의 ‘애니콜’ 같은 브랜드가 없을까. 외국통으로 꼽히는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장인 정신, 브랜드 마케팅 전략, 국제적 마인드를 갖춘 전문 인력 부족”을 꼽았다. 그렇다고 품질이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관계자는 “우리의 대표 토종 브랜드인 <코오롱스포츠>의 예를 보면, 경쟁사 상품기획자들도 품질이나 생산관리의 우수성을 인정할 정도로 제품이 뛰어난데 해외에서 안 통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기업경영의 풍토가 변해야 한다. 실적과 매출만 따지는 지나친 성과주의는 시장의 질서와 최소한 지켜야할 기업윤리마저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이런 성과주의가 불러온 가장 큰 문제는 디자인 카피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개발한 경쟁사의 디자인을 아무 거리낌 없이 베끼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능력 있는 디자이너는 남의 제품을 표시 안 나게 잘 베끼는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전 세계 브랜드들이 모인 아웃도어 전시회에 가면 이런 문제를 실감할 수 있다. 브랜드 부스를 방문해 프레스 카드를 보여줘도 대부분 “노 포토”를 내세웠다. “왜 그러냐?”고 물었다. “관람객처럼 들어와서 제품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몰래 촬영하는 일이 많다”고 대답했다.

그 매니저는 구체적으로 언급은 안 했지만 우리나라와 중국을 꼬집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실제 이번 전시회에서 모 업체 직원이 워크북을 들고 나오다 발각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마디로 나라 망신이다. 왜 이런 낯부끄러운 일이 벌어질까. 브랜드 경쟁력과 성숙한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이제부터라도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중장기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 제품기획부터 디자인, 생산, 마케팅, 유통, R&D, 인력양성 등 전 부문을 점검하고 브랜드 경쟁력 강화에 필요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독일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던 트렉스타의 아웃솔 ‘하이퍼그립’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었다. 아웃도어 업계 사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배낭, 등산화, 랜턴 같은 단품으로 승부하면 경쟁력이 충분히 있다. 이를 성공시켜 토털로 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최순화 수석연구원은 성공 브랜드 조건으로 ‘품격’을 강조했다. “‘품질경쟁’에서 ‘품격경쟁’으로 변화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브랜드’를 넘어 ‘신뢰할 수 있는 품격 브랜드’로 변신해야 한다”고 강조한 그의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전문 워킹화 시장을 개척한 프로스펙스, 최악의 경영 위기에서도 진정성과 일관성을 유지해 ‘고품질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품격을 갖춘 아웃도어 브랜드’로 전환하는데 성공한 팀버랜드, 오토바이를 파는 것이 아닌 ‘라이딩 문화’를 전파한 할리데이비슨 등의 브랜드 성공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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