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재촉하는 걸음이 눈부시네
봄을 재촉하는 걸음이 눈부시네
  • 이두용 기자
  • 승인 2011.04.05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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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교~영명사 입구~각시봉~정상~주어재~하품교…약 10km, 4시간30분

하루가 멀다 하고 과거 기록을 갱신하며 추위 경쟁을 벌이던 겨울이 지났다. 유난히 잦던 눈 소식과 이어진 추위에 ‘겨울이 빨리 지나갔으면’ 했는데 입춘을 넘기면서 하루가 다르게 햇살이 좋고 따사롭다.

모처럼 영상 기온을 웃도는 아침. 여주에서 제일 높다는 양자산(709.5m)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양자산 이름은 양평 쪽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 ‘들판에 버드나무가 즐비하다’는 뜻인 양평(楊平)과 산 아래 쪽에 버드나무가 많아서 양자(楊子)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예전엔 산이 소처럼 생겼다고 해서 소산이라고도 불렀다. 이 이름은 앵자봉 서쪽 방향인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에서 유래한 듯하다.

▲ 아직 눈에 덮여있는 북사면의 양자산. 맑은 날은 남한강과 어우러진 절경을 볼 수 있다.

여주에서 가장 높은 산

워낙 자료가 없는 산이라 이 고장 토박이로 이뤄진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산행하기로 했다. 산행을 통해 삶을 즐기기 위해 여주·양평의 등산 애호가들이 모여 만들었다는 <우리웰빙산악회>. 이름만 들어도 건강해지는 것같다.

오늘 산행에 참여한 회원은 7명. 인사를 나누는데 출발도 하기 전부터 회원들 얼굴에 기대와 설렘이 가득하다.

“웰빙산악회는 회원이 676명이나 돼요. 매주 40~50명이 모여서 산행을 하는데 많을 때는 100명 정도가 모이죠. 보통은 버스를 대절해서 지방산행을 다니고 있어요.” 총무를 맡고 있는 이민자씨가 산악회를 소개했다.

 하품1리 하품교 등산로 입구에 세워진 안내도를 확인하고 영명사 방향으로 출발했다. 안내도에 능선을 바로 오르는 코스가 소개돼 있는데 이정표가 없어 아쉽다. 오르는 길에는 계곡을 따라 안두렁이 마을을 지나 영명사까지 임도를 걷는다. 계곡 주변 곳곳에 예쁜 전원주택이 들어서 있었다. 영명사 인근까지 단지가 생기는지 공사 차량이 분주히 드나들었다.

“집을 저렇게 지으면 안되는데. 저걸 샌드위치 패널이라 부르는데 저걸 사용해서 집을 지으면 집이 숨을 못 쉬어요. 당장 따뜻할 수는 있지만 사람한테 좋지는 않죠.” 고운수 회원이 한 주택을 가리키며 말을 꺼냈다.

“한옥이 방바닥만 따뜻하고 외풍은 세지만 사람에겐 건강한 집이에요. 항아리의 원리라고 할까요. 저런 주택은 플라스틱 용기의 원리라고 하면 되겠네요. 외풍은 없지만 답답해서 건강에 좋지는 않아요.”
주택의 자제와 설계방식에 따른 건강까지 꼼꼼히 알고 있는 걸 보면 웰빙산악회임이 틀림없었다.

▲ 이른 봄 산행에는 마른 땅이라 할지라도 아직 얼어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엄마 품 같은 햇살 속을 걷다

영명사 오른쪽으로 조릿대가 우거진 길을 따라 올랐다. 여기서부터 제법 산행답다. 조밀한 조릿대 틈으로 걸으니 흙과 대나무향이 좋다. 길이 갑자기 가팔라지나 싶더니 이내 임도가 나타났다. 임도를 따라 가도 되지만 명색이 산악회 회원들이 쉬운 길을 택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각오는 해야 한다. 힐끗 올려다봐도 경사가 제법이다. 

“이제 좀 산다워지는구만. 서 있지들 말고 올라갑시다.” 산행대장을 맡고 있는 권병국씨가 서 있던 회원들을 독려해서 출발시킨다.

임도 옆 샛길을 따라 낙엽송이 빽빽한 오르막으로 줄을 서서 올랐다. 얼마나 올랐을까, 등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오르막을 올라서 그런가’ 싶어 온도를 확인하니 영상 6도다. 더욱이 각시봉까지는 양지바른 남사면을 따라 걸으니 등을 감싸는 햇살이 엄마 품처럼 따뜻할 수밖에.

오늘 산행에 참여한 최고령 회원인 신금홍씨가 겹쳐 입었던 상의를 하나씩 벗자 “과연 젊은 오빠는 다르다”며 회원마다 한마디씩 건네 웃음꽃이 피었다.

길이 거친 듯하나 인공적으로 닦여 있는 길보다 자연 그대로를 만끽하며 걸을 수 있어 좋다. 길은 조금 수월해지면서 잣나무 숲으로 접어든다. 낙엽송과 구별하지 않아도 잣방울이 지천이다.

각시봉을 지나면 양자산 정상까지 완만한 능선이 이어진다. 이 능선은 양평군과 접해 있어 양평에서 오르는 등산로가 여러 개다. 북사면으로 내리막을 따르니 곧 눈앞에 널따란 헬기장이 나타났다. 등산로에 하얗게 쌓인 눈을 보니 남사면에서 느꼈던 봄기운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마흔이라지만 오늘 산행에서 가장 젊은 정혜란씨가 눈을 뭉쳐 회원들에게 던졌다. 이에 질세라 회원마다 눈을 뭉쳐 서로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예정에 없던 눈싸움이 시작되면서 여기저기서 웃음꽃이 피어났다. 산행의 피로를 웃음으로 씻어내는 순간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순수함이 어린아이 못지않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智者樂水),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仁者樂山)’고 했던 공자의 말이 떠오른다. 어질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 순수할 수 있을까.

▲ 양자산에는 통일된 안내도나 이정표가 거의 없어 출발 전에 꼼꼼한 확인이 필요하다

이정표 찾아 헤맨 하산길

헬기장을 한 번 더 지나 낮은 언덕을 오르는가 싶었는데 정상이다. 높은 꼭대기에 올라 선 느낌이 아니라서 조금 싱겁다. 맑은 날은 남한강과 어우러진 절경을 볼 수 있다는데 사방으로 안개가 깔려 있어 아쉽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찾아올 이유가 된다. 정상 표지석에 둘러서 인증사진을 찍었다. 다들 표정이 어린아이 마냥 익살맞다.

“산에 오르면 늘 기분이 좋아요. 대학 땐 산악부여서 산에 많이 다녔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주 못간 것 같네요. 앞으로 더 자주 다녀야겠어요.” 라푸마 여주점을 운영하고 있는 염제호씨가 등산 소감을 밝혔다.
정상에서 안내도를 확인하는데 아래서 본 것과 달랐다. 들머리인 하품교에 있는 건 코스가 A~E코스로 표기돼 있더니 이건 1~3코스로 표기돼 있다. 지도 모양도 코스도 다르다.

자세히 보니 밑에서 본 건 여주군에서 만든 것이고 정상에 있는 건 양평군에서 만든 것이다. 아무리 지자체가 달라도 이렇게 손발이 맞지 않아서야 되겠나.
정상에서 하산하는 방법은 세 갈래. 올라온 길을 따라 각시봉을 통하는 길과 664봉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원점회귀 하는 길, 주어재 능선을 따라 앵자봉으로 향하는 길이다.
664봉에서 하품리로 이어지는 길을 따르기로 했다. 하산에 앞서 심호흡을 하는데 찬바람 속에 숨어든 봄의 기운이 폐를 단번에 채운다. 내리막은 경사가 있는 구간마다 밧줄과 울타리 시설이 돼 있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다. 능선을 따라서 양지바른 남쪽 면엔 마른 땅이, 음지인 북쪽 면엔 소복이 쌓인 눈이 한눈에 비교된다. 하지만 마른 땅이라 할지라도 낙엽 아래는 아직 얼어있으니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길이 조금 이상한 것 같은데요. 우리 지금 앵자봉 방향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산행대장 권병국씨가 회원들을 세우며 말했다. 안내도 대로 하산한다고 했는데 일행은 664봉이 아닌 주어재로 하산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정표가 없어도 너무 없다. 큰 갈림길에조차 변변한 이정표가 없어 초행인 경우 헤매기 십상이다. 안내도 또한 표기가 일정치 않아 없느니만 못하다.

내려온 길을 되돌아가기에도 어느 정도 왔는지 몰라 앵자봉으로 조금 더 가다가 주어재에서 왼쪽 아래 계곡을 따르기로 했다. 계곡으로 접어들어 홍계골 방향으로 하산했다. 내려와서 보니 원점회귀 하려던 하품교가 있는 하품1리와는 4km 떨어진 상품리. ‘통일된 안내도와 적절한 곳에 이정표만 몇 개 있었어도 좀 더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 양자산은 토토리가 많기로 유명하며 교통이 편리하면서 한적하다. 서울에서 1시간 거리에 있어 가족, 연인, 산악회 등 친목산행지로도 좋다. 산행 기점은 하품리 버스정류장 동편 하품교에서 안두렁이를 지나 영명사입구~각시봉~정상~664봉~안두렁이~하품교 원점회귀코스가 일반적이며, 하품교~각시봉~정상~주어재~앵자봉~자작봉~남이고개로 내려오는 종주코스도 인기 있다. 재미있는 건 각시봉이 있는 양자산이 각시산이 아닌 신랑산이고, 마주 보고 있는 앵자봉이 각시산으로 불렸다고 한다. 부부가 함께 오르면 금슬이 좋아진다고 하니 부부산행지로 추천할 만하다. 문의 : 031-887-2868 여주군 관광 안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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