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정원에 피어난 모란꽃 한 송이
왕의 정원에 피어난 모란꽃 한 송이
  • 김경선 기자
  • 승인 2011.04.05 15: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릉과 영릉을 둘러보는 산책길

여주에는 2개의 왕릉이 있다. 재밌게도 2곳의 능역 이름이 모두 영릉이다. 많은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은 꽃부리 영(英)자를 사용하고, 평생 북벌정책을 펼쳤던 효종은 죽어서 만큼은 편안하게 안식하라는 의미에서 편안할 영(寧) 자를 붙여 이름을 지었다.

한양에서 200리나 떨어진 여주에 2개의 왕릉이 자리한 까닭은 무엇일까. 조선시대의 법전인 <경국대전>에는 ‘능역은 한양성 사대문 밖 백 리 안에 두어야 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너무 먼 곳에 위치해 있으면 한양에서 제를 지내러 이동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선시대의 왕릉은 여주의 영릉(英陵·세종과 소헌왕후), 영릉(寧陵·효종과 인선왕후), 영월의 장릉(莊陵·단종), 북한의 후릉(厚陵·정종과 정안왕후), 제릉(齊陵·신의왕후)을 제외하고는 한양성 100리 길 안에 있다. 단종과 정종은 말년에 머물던 곳에 묻혔다고 하지만 세종과 효종은 한양에서 생을 마감했으니 이와도 관계가 없다. 여주 땅이 왕릉 입지의 불문율도 예외가 될 만큼 풍수가 좋았기 때문이다.

▲ 홍살문을 지나자 정자각 뒤로 세종대왕과 소헌왕후가 잠들어 있는 영릉이 보인다

본래 세종대왕릉은 서울 서초구 내곡동 대모산 자락에 있었다. 생전에 효심이 깊었던 세종대왕은 능의 터가 수맥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인 태종 옆에 묻혔다. 하지만 세종대왕이 승하한 후 왕실에 크고 작은 비극이 계속되자 조선 왕실은 예종1년(1469)에 세종대왕릉을 지금의 자리로 이장했다.
왕릉은 자연과 조화를 이뤄야한다. 그래서 능역은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배산임수에 따라 조영됐다. 세종대왕과 효종대왕이 남한강의 풍요로운 젖줄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해시계로 시간과 절기를 한 눈에
두 개의 영릉을 잇는 트레킹의 시작점은 세종대왕릉 입구다. 입장료 500원을 내고 들어가자 관리사무소가 보였다. 이곳에서 문화관광해설사 유옥분 씨를 만났다. 미리 서비스를 신청하면 누구나 해설사와 동행이 가능하다.

왕릉 입구로 들어서자 왼쪽으로 세종대왕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세종전이 보이고 앞마당에는 세종대왕이 발명한 측우기와 해시계인 앙부일구 등이 전시돼있다.
“해시계를 먼저 볼까요.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해시계는 가마솥같이 오목하고,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고 해서 앙부일구라고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해시계가 특별한 이유는 시간과 절기를 동시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오목한 시계판의 세로선은 시간을, 가로줄은 계절을 가리킨다.

▲ 세종대왕은 백성들을 위해 많은 과학 기구들을 발명했다. 특히 해시계는 시간과 절기를 동시에 알려줘 백성들의 삶을 보다 편안하게 만들었다.

“지금이 몇 시인지 맞춰보세요.”
“10시 15분?”
그런데 손목시계를 보니 10시 48분이다.
“시간이 안 맞죠. 우리나라가 현재 동경 시간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죠. 시간의 기준이 되는 경선이 동경은 135도이고 우리나라는 127도라 약 8도 차이가 납니다. 1도에 약 4분의 시간차가 발생하기 때문에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보다 조선시대의 시간이 32분 정도 늦거든요.”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시대 사람들이 현재의 우리보다 더 정확한 시간을 사용하고 있었다. 박옥분 해설사는 해시계 외에도 물시계인 자격루와 측우기 등 세종대왕이 만든 발명품들을 일일이 설명하며 대왕의 업적을 전했다.

세종관 건너편에 말끔한 한옥 한 채가 보였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재실(齋室)이다. 요즘은 전주 이씨 종친회에서 1년에 4번 재실을 사용한다. 세종대왕이 승하한 4월8일과 소헌왕후가 승하한 4월28일에 기신제를 지내고, 5월15일 탄생일에는 숭모제전을, 10월15일에는 한글날 기념행사를 지낸다.

모란꽃이 반쯤 피어난 형태의 명당터
재실을 지나 훈인문을 통과하자 멀리 동산만한 영릉이 보이고 홍살문에 다다랐다.
“왕릉은 크게 3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요. 재실에서 홍살문까지가 진입공간,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가 재향공간, 정자각에서 능침까지가 능침공간이죠. 홍살문을 지나면 신성한 영역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옛날에는 왕과 왕족 외에는 홍살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어요.”

홍살문을 지나자 정자각까지 돌길이 이어졌다. 돌길의 가운데 부분이 조금 높은데 승하한 왕과 왕비의 영혼이 후손을 마중 나오는 신도(神道)란다. 그 옆에 낮은 길은 살아있는 임금이 다니는 길이라고 해서 어도(御道)라고 한다.

어도를 따라 가자 제사를 지내는 정자각(丁字閣)이 나타났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고무래 정(丁)자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자각에 올라 향을 피우고 잠시 묵념을 한 뒤 능침공간으로 향했다. 정자각 오른쪽 계단을 올라가자 드디어 세종대왕과 소헌왕후가 잠들어 있는 능에 도착했다.
“우선 주위를 한 번 돌아보세요. 영릉의 풍수를 ‘모란꽃이 반쯤 피어난 형태’라고 합니다. 묘혈을 둘러싼 산들이 마치 신하가 무릎을 꿇고 군왕에게 조례를 하는 모습이죠. 풍수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곳이 명당이란 걸 금세 느낄 수 있어요.”

세종은 53세로 승하할 때까지 32년간 재위하면서 우리나라 역대 군왕 중 가장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측우기와 해시계 등 과학 기구를 제작했으며, 또 6진을 개척해 국토를 확장하고 쓰시마섬을 정벌하는 등 정치·경제·사회·문화 거의 모든 면에 훌륭한 치적을 쌓았다. 그리하여 사후 565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영릉에는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려는 사람들이 늘 넘쳐난다.

능에서 내려와 효종대왕이 잠들어 있는 영릉으로 향했다. 원래 정자각 오른쪽으로 효종대왕릉까지 이어지는 왕릉산책로가 조성돼 있는데, 11월에서 5월 중순까지는 산불예방을 위해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 정자각에 들어가 효종과 인선왕후를 위해 향을 피웠다.
왕릉 재실이 잘 보존된 효종대왕릉
세종대왕릉 주차장에서 오솔길을 따라 10여 분을 걸어가자 효종대왕릉이다. 세종대왕릉과 달리 진입공간이 짧은 효종대왕릉은 매표소를 들어가자마자 재실을 만날 수 있었다.
“효종대왕릉의 재실은 보물 1532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조선 왕릉에 남아있는 재실 중 원형을 가장 많이 보존하고 있죠.”

조선 왕릉의 재실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후 대부분 멸실돼 그 일부만 남아 있으나, 이곳은 왕릉 재실의 기본 형태가 가장 잘 보존돼 있어 보물로 지정됐다. 전반적으로 간결하고 소박하면서도 짜임새 있게 지어진 재실은 향청(능에서 제례를 지낼 때 임금이 내려준 축문과 향을 보관하던 곳)·제기고·제실·행랑채 등의 시설이 온전하게 보존돼 있었다.
효종대왕릉으로 향하는 길은 소나무·느티나무·향나무·갈참나무·쪽동백나무 등이 가득해 걷기에 그만이다. 짧은 숲길 끝 홍살문을 지나면 영릉이 모습을 드러낸다. 세종대왕릉과는 달리 효종과 인선왕후 능이 따로 조성된 쌍릉 형태다.

“효종대왕릉은 세종대왕릉에 비해 규모가 작지만 수수한 멋과 운치가 있어요. 편안하게 안식하라는 후대인들의 마음이 능에도 고스란히 남아있죠.”
정자각을 지나 능으로 올라섰다. 정자각과 가까운 쪽에 인선왕후가 잠들어 있고, 그 뒤편에 효종대왕이 안식하고 있었다. 효종은 인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난 이듬해부터 형인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서 8년간 볼모생활을 했다. 이때 청나라에서 겪은 갖은 고초가 한으로 남아 평생에 북벌정책을 펼쳤다. 

왕릉 산책길의 마지막 코스는 세종산림욕장이다. 효종대왕릉을 나와 333번 지방도를 건너면 삼림욕장 입구. 한적한 오솔길을 10여 분 올라가자 남한강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팔각전망대다. 그런데 눈앞의 풍경이 삭막하다. 강변의 아름다운 풍경 대신 굴삭기가 사정없이 파헤친 스산한 강변의 모습만 남아 있다. 얼마 전 4대강 사업이 영릉을 침식시킬 수도 있다는 기사를 봤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상황을 묵묵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세종과 효종의 심정이 어떠할까.
조선 왕릉 40기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정갈하고 신성한 조선 왕조의 위엄이 여전히 남아있는 왕릉 산책길. 그 신성한 영역에 들어서는 순간 편안하고 포근한 정기를 받을 수 있다. 왕릉에는 역사와 문화, 자연이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었다.

▲ 여주의 왕릉길은 조선의 영명한 두 군주인 세종과 효종의 능을 둘러보는 산책 코스다. 두 임금의 혼이 잠들어 있는 풍수지리의 명당터를 직접 걸어보며 문화와 역사를 배울 수 있다. 산책길의 시작은 세종대왕릉 주차장이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으면 2개의 영릉을 돌아볼 수 있다. 세종대왕릉에서 효종대왕릉까지 왕릉 산책로가 조성돼 있지만 11월1일부터 5월15일까지는 산불예방을 위해 출입할 수 없다. 세종대왕릉 주차장에서 효종대왕릉과 연결되는 오솔길이 나있다. 세종산림욕장은 333번 지방도를 사이에 두고 세종대왕릉 동쪽에 위치해있다. 세종교에서 약 400m 거리다. 호젓한 산림욕장은 남한강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팔각전망대까지 이어진다. 왕릉길에서는 문화관광해설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예약은 필수. 서비스 문의는 031-887-6871. 영릉 입장료 어른 500원이다. 세종대왕릉 031-881-6818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