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선생 사색하며 걷던 그 산길
다산 선생 사색하며 걷던 그 산길
  • 글·김경선 기자ㅣ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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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푸마와 함께하는 KOREA TRAVEL 남양주 ② 운길산~예봉산 트레킹

▲ ‘구름을 모으는 산’이라는 명성답게 운길산은 뿌연 운무가 가득했다.

운길산역~운길산~적갑산~철문봉~예봉산~팔당역…약 12km 7시간 소요

수도권에서 지하철이 한 번에 연결되는 산, 하지만 식상하지 않은 산, 이런 산을 찾고 있다면 남양주 운길산~예봉산으로 떠나보자. 지하철 중앙선이 몇 해 전 연장되면서 수도권 시민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운길산~예봉산은 조망이 탁월하고 숲이 울창해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사람들에게 하루 산행 코스로 그만이다.


▲ 운길산 정상에는 짙은 안개가 내려앉아 주변 조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유유히 흐르는 한강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남양주에 이르러 고고한 자태로 한강을 굽어보고 있는 운길산(雲吉山, 610m)과 예봉산(禮峯山, 683m)을 만날 수 있다.

이 두산을 잇는 주능선을 ‘다산능선’이라고도 부르는데, 두 산이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 선생과 인연이 깊기 때문이다.

특히 주능선 상에 있는 철문봉 정상에는 ‘정약용, 약전, 약종 형제가 집 뒤 능선을 따라 이곳까지 와 학문을 밝힌 곳’이라는 글귀도 적혀있다. 정약용 선생은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기 전 형제들과 함께 이곳 능선길을 산책하며 학문을 논했다고 한다. 다산의 고향이 예봉산 남쪽 끝자락이 뻗어 내린 조안면 능내리 마현마을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좀더 거슬러 오르면, 태조 이성계가 ‘산에서 구름이 흘러가다 쉬어가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운길산이나, 조선시대에 선비들이 한양으로 갈 때 ‘임금이 사는 도성을 향해 신하로서 예를 표한다’하여 붙여진 예봉산의 이름에서도 아련한 역사의 향기가 느껴진다.

▲ 운길산 정상에서 내려오자 평탄한 능선길이 이어졌다.

구름이 모이는 산, 운길산
운길산~예봉산 종주 산행을 위해 지하철을 타고 운길산역에 도착했다. 주말인데다 지하철로 연결되는 산이라 그런지 역 앞은 등산객들로 북적거렸다. 2008년 말 덕소역~국수역 구간의 중앙선 공사가 완료된 이후 운길산과 예봉산에는 주말과 평일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역을 나서는 등산객들의 뒤를 따라 운길산 들머리로 향했다. 등산로 입구엔 장어구이집이 성황이었는데,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가게마다 장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장어구이집을 지나 호젓한 전원마을을 가로지르자 운길산 등산로 입구다.

‘구름을 모으는 산’이라는 이성계의 말처럼 운길산은 초입부터 운무가 가득 끼어있었다. 뿌연 운무를 헤치고 산길로 접어들자 습기를 잔뜩 머금은 숲의 향기가 코끝이 간질였다. 촉촉한 향기에 취해 잠시 산길을 따르자 포장도로가 길을 막아섰다. 운길산 깊은 곳에 터를 잡은 수종사까지 이 포장도로가 이어지는데, 취재진은 지루한 포장도로 대신 산길을 선택했다.

▲ 운길산은 전체적으로는 부드러운 흙산이지만 정상 일대에 바위지대가 있었다.
제법 가파른 산길을 40분 가량 올랐을까. 멀리서 목탁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산길을 계속 따르면 수종사를 지나쳐 정상까지 바로 이어지지만 유서 깊은 사찰을 둘러보기 위해 수종사로 방향을 틀었다.
수종사는 금강산을 유람하고 돌아오던 세종대왕이 샘과 종을 발견했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사찰로 조선후기 사회변혁을 꿈꾸던 선각자들이 모여들던 곳이다. 초의선사,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선사와 묵객들이 종파와 당색, 신분을 따지지 않고 사회변혁의 꿈을 다듬었다고 한다.

사찰을 나서 이정표를 따라 다시 정상으로 발길을 돌렸다. 안개가 짙게 깔린 산은 습기를 잔뜩 머금어 온 몸을 축축하게 적셔왔다. 그렇게 덥고 습한 산을 오르길 30여 분, 운길산 주능선에 닿았다. 바람도 쉬어 넘어간다는 운길산답게 능선에 서자 비로소 바람이 통했다. 선선한 바람에 열기를 식히고 다시 능선을 따르길 10여 분, 운길산 정상이다.

적갑산까지 오르락내리락 능선길
운길산은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이다. 하지만 한강 두물머리가 지척이어서인지 산이 구름을 모은다. 아니나 다를까. 정상으로 모여든 구름은 주변 조망을 가리고 있었다. 서울의 젖줄 한강의 물줄기도 뿌연 운무 속에 모습을 감췄다. 한강을 굽어보는 조망이 탁월하고, 두물머리 위로 떠오르는 태양의 장관이 아름답다는 운길산은 귀한 자태를 구름 속에 꼭꼭 숨기고 있었다.

▲ 다소 정상다운 맛이 떨어지는 적갑산. 하지만 한강과 주변 산군이 한 눈에 조망되는 전망 포인트다.
예봉산의 청명한 조망을 기대하며 ‘예봉산(적갑산)’ 이정표를 따라 서쪽으로 내려섰다. 정상에서 내려서는 바위 지대는 산길이 험하고 가팔랐다. 밧줄을 붙잡고 바위 지대를 내려선 지 10여 분, 평탄한 능선길이다.

운길산에서 시작된 산줄기는 적갑산을 지나 예봉산~직녀봉~견우봉~승원봉을 거쳐 한강으로 내려앉는다. 마치 시위를 잔뜩 잡아당긴 활의 형태다. 활처럼 팽팽한 운길산~예봉산 능선 중에는 10여 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가 있어 오르락 내리락을 수시로 반복해야하기 때문에 산행이 녹록치만은 않았다.

485봉~505봉~482봉~449봉을 지나자 공터가 나타났다. 끊임없이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다 보니 안개에 휩싸인 적갑산이 하루거리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공터에 앉아 간단히 허기를 채우고 난 사이 거짓말처럼 안개가 걷혀 있었다. 예봉산의 시원한 조망을 기대해도 좋을 듯싶었다.

공터에서 가파른 오르막을 10여 분 올라서자 463봉이다. 이후 능선길은 482봉과 496봉을 지나 적갑산에 닿았다. 적갑산(560m)은 운길산에 비해 정상다운 면모가 부족했다. 산길 바로 옆 바위지대에 놓인 정상 표지석 만이 이곳이 적갑산임을 알리고 있었다. 적갑산에 도착했다는 즐거움도 잠시, 마지막 봉우리인 예봉산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 예봉산으로 향하는 길에 지난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에서는 패러글라이더들의 비행이 한창이었다.

패러 활공장에서 비행 펼쳐져
▲ 예봉산 정상은 널찍한 공터가 조성돼 있다. 수도권 일대의 산군과 한강이 시원하게 조망되는 곳이다.
적갑산에서 능선을 계속 따르자 철문봉(630m)을 지나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에 도착했다. 활공장에서는 주말을 맞아 산을 찾은 패러글라이딩 동호회 회원들의 멋진 비행이 펼쳐지고 있었다.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의 품속으로 온 몸을 내던지는 이 멋진 장관에 바쁘게 걷던 등산객들도 발걸음을 잠시 멈춘 채 구경하기 바쁘다. 취재진은 물론이고 등산객들 모두 ‘패러 타고 한 번에 하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활공장에서 다시 10여 분, 드디어 마지막 봉우리인 예봉산에 도착했다. 시계가 썩 좋진 않지만 운무가 걷힌 산은 유유히 흐르는 한강 줄기를 드러냈다. 마주보이는 검단산과 지나온 운길산~적갑산의 산줄기도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저 멀리 수락산과 북한산 등 수도권 명산들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마지막 봉우리인 예봉산 정상에 서자 긴 산행에 긴장했던 몸이 여유를 찾는 기분이다. 총 거리 12km, 처음부터 단단히 마음 먹고 시작한 산행이지만 쉴 새 없이 오르내리는 능선길이 녹록치만은 않았다. 하지만 한 걸음씩 걷다보니 어느새 예봉산. 하루 산행이 인생과 닮은꼴이다.

▲ 예봉산 하산길에 만난 전망대. 유유히 흐르는 한강과 팔당대교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가파른 산길을 내려서 팔당역 방면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지하철을 타고 산을 찾은 등산객들이 많아서인지 하산길이 무척 북적거렸다. 아이들을 대동한 가족들도 있고, 주말을 맞아 산을 찾은 동호회 회원들도 많았다. 이렇게 30여 분을 내려오자 한강이 시원하게 조망되는 전망대다. 마지막 전망대라 그런지 바삐 하산하던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전망대 앞에서 멈춰 섰다.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 그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온 몸 가득 운길, 예봉의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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