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이 석 자만 더 길었어도…
내 손이 석 자만 더 길었어도…
  • 글·김경선 기자l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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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푸마와 함께하는 KOREA TRAVEL 남양주 ① 천마산 트레킹

▲ 천마산 정상에서 북쪽 방면으로 내려서자 운무가 가득한 능선이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냈다.

호평동~천마의집~정상~돌핀샘~천마의집~호평동…원점회귀 코스 약 5.5km 4시간 소요

수도권에서 1시간 남짓이면 접근하는 남양주에 이성계가 감탄한 천마산이 있다. 주변에 그다지 높은 산이 없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이 산은 조선시대만 해도 임꺽정의 활동 무대였을 만큼 오지였다. 지금은 초고층 아파트들이 우후죽순 들어서 예전의 호젓한 맛은 없지만, 청정하고 수려한 계곡과 장쾌한 조망이 어우러져 수도권 시민들의 인기를 한 몸에 얻고 있다.


▲ 녹음이 짙은 천마산 큰골 계곡.

서울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에 넘쳐나는 사람들, 덕분에 수도권 인근의 도시들은 나날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남양주 역시 서울의 위성도시로 최근 급격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지역이다.

사실 남양주는 양주에 속한 작은 지역에 불과했다. 1980년 남양주군으로 분리되고 1995년 남양주시로 승격하기까지 남쪽의 양주라는 더부살이 운명에 만족해야했다. 하지만 남양주의 역사만큼은 독립적이다. 남양주의 호평과 평내 지역에 선사유적과 수석리 토성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남양주가 선사문화를 꽃피웠던 곳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백제·신라의 격전지로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하던 지역이다.

▲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만난 거대한 꺽정바위.
울에서 불과 1시간도 걸리지 않는 이 도시에 최근 고층 아파트들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 천마산 들머리인 호평동 역시 대규모 아파트 단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예전에 비해 호젓한 맛은 덜했지만 인근 주민들에게 청정한 쉼터가 되어주는 천마산(天摩山, 812m)은 1983년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이다.

천마산은 남양주시의 화도읍과 오남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교통이 편리하고 코스가 잘 정비돼 있어 하루 산행 코스로는 그만이다. 산자락 곳곳에 시민들을 위한 운동기구와 벤치가 잘 정비돼 있어 산행뿐 아니라 나들이 코스로도 인기가 많다. 그래서인지 평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호평동 수진사 들머리에는 주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등산복을 잘 차려 입은 사람들보다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선 주민들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산은 정상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오르는 길이 나있다. 서쪽에는 호평동과 팔현리에서, 남쪽에는 마치고개에서, 동쪽에는 가곡리에서 천마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조성돼 있다. 이 중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접근성이 좋고 산길이 완만한 호평동 코스다. 취재진은 호평동에서 천마의집을 거쳐 정상에 오른 뒤 돌핀샘을 거쳐 호평동으로 내려오는 원점회귀 코스를 선택했다.

시원한 계류 쏟아지는 큰골
‘천마산(天摩山)’이라는 이름은 조선의 태조 이성계와 연관이 있다. 이성계가 마석에 사냥을 왔다 지금의 천마산을 보고 “인간이 가는 곳마다 청산은 수없이 있지만 이 산은 매우 높아 푸른 하늘에 홀(笏:관직에 있는 사람이 임금을 만날 때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이 꽂힌 것 같아 손이 석자만 더 길었으면 가히 하늘을 만질 수 있겠다(手長三尺可摩天)”라고 혼잣말을 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산은 ‘하늘을 만질 수 있는 산’이라는 뜻의 천마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성계의 이야기처럼 산은 남양주 한 복판에 우뚝 솟은 형상이다. 능선이 정상을 중심으로 방사선 형태를 이루고 있어 사방에서 바라보아도 정상이 바라보일 정도다. 호평동 들머리에서 우뚝 솟은 정상을 바라보며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태풍 ‘덴무’가 지나가고 맑은 날씨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아침부터 산은 뿌연 운무로 뒤덮여 있었다.

수진사를 지나 포장도로를 300여m 따르자 상명대학교 생활관 앞에서 갈림길이 나타났다. 포장도로를 따라도 천마의집까지 오를 수 있지만 수려한 큰골의 비경을 만끽하고 싶어 오른쪽 산길로 접어들었다.

▲ 꺽정바위를 지나 나무계단을 올라서면 전망대 역할을 하는 벤치가 나타난다. 날씨가 맑을 때면 주변 산군이 한 눈에 조망된다.

전날까지 전국적으로 큰 비가 와서인지 계곡의 수량이 풍부했다. 거침없이 흐르는 계류는 바라만 봐도 시원할 정도다. 산길은 계곡을 따라 이어졌다. 맑고 깨끗한 계류에 손을 담그자 얼음장 같이 시원한 냉기가 온 몸에 느껴졌다. 갈 길을 멈추고 계류에 발을 담그고픈 유혹이 솟구쳤지만 이 즐거움은 하산길에 기약하고 정상을 향해 발길을 서둘렀다.

계곡을 건너길 두 차례, 전나무 우거진 삼림욕장이 취재진을 반겼다. 서늘한 숲의 기운과 전나무가 뿜어내는 향긋한 피톤치드가 정신을 맑게 만든다. 나들이 나온 주민들은 삼삼오오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며 삼림욕을 만끽하고 있었다. 무더위가 파고들 틈 없는 숲 속에서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 한가로워 보였다.

바위로 이루어진 천마산 정상
삼림욕장을 지나 완만한 오르막을 잠시 더 걷자 산길이 끝나면서 임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천마의집이다. 이 임도를 따라 100여m를 오르자 길이 끊기면서 오른쪽으로 산길이 이어졌다. 이정표를 보니 정상까지 약 1.3km. 이정표 앞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고 정상을 향해 발길을 서둘렀다.

아침부터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더니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운무가 짙어졌다. 마치 분무기로 물을 뿌린 듯 미세한 물방울들이 공중에 떠돌고 있어 무덥지 않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온 몸에 습기가 가득했다.

▲ 정상에서 하산하는 바위지대가 제법 험했다.
하지만 운무로 뒤덮인 숲은 나름의 운치가 있다. 빽빽하게 들어선 숲이 운무에 휩싸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다. 숲은 정지한 화면 속에서 하나의 프레임으로 재탄생했다. 빛과 운무가 빚어내는 한 폭의 수묵화는 ‘소나무’ 연작으로 유명한 배병우 작가의 작품처럼 신비롭기만 하다.

전나무 군락을 지나 능선을 따른 지 30여 분, 거대한 꺽정바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꺽정바위는 바위가 둘로 갈라져 한 사람이 지나다닐만한 틈이 있는 특이한 바위다. 이 꺽정바위를 우회하자 나무계단이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나무계단을 올라서자 전망대 역할을 하는 벤치가 있었다. 날씨가 좋을 때면 주변 산군을 조망할 수 있겠지만 희뿌연 운무로 뒤덮여 한 치 앞도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벤치에 앉아 잠시 점심식사를 하는 사이 하늘에서 빗방울이 한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찌푸린 하늘이 결국 비를 뿌릴 심산이다.

벤치를 떠난 지 10여 분 드디어 정상에 닿았다. 정상에 서자 정상 표지석과 안내지도, 태극기가 시원한 조망을 대신하고 있었다. 사방이 운무로 뒤덮여 시원한 조망은 기대할 수 없었지만 북쪽으로 뻗은 ‘천마지맥’이 운무가 걷히며 살짝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맑은 날이면 철마산과 주금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뿐만 아니라 북한산과 도봉산까지 한 눈에 조망되겠지만 오늘은 아니다.

▲ 천마의집을 지나자 울창한 전나무 숲이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까지 맑게 만드는 돌핀샘
정상에서 호평동으로 내려서는 코스는 올라왔던 길로 내려서는 방법과 돌핀샘을 거쳐 내려서는 코스 두 가지다. 취재진은 돌핀샘을 거쳐 호평동으로 원점회귀하기 위해 ‘샘터’ 이정표를 따라 북쪽으로 내려섰다. 이정표에 따르면 샘터까지는 약 280m. 지금까지 부드러운 육산이었던 것에 반해 천마산 주능선은 암릉 구간으로 샘터로 향하는 능선길에는 곳곳에 밧줄이 설치돼 있었다.

정상에서 능선을 따른 지 5분 정도 됐을까. 갈림길이 나타났다. 이정표를 보니 직진하면 보광사, 왼쪽 샛길로 내려서면 팔현리다. 호평동 방면 표시가 없었지만 지도를 살펴보니 팔현리 방면으로 내려서다 호평동으로 빠지는 산길이 있었다. 이정표를 따라 왼쪽 팔현리 방면으로 내려섰다. 급한 내리막길을 따른 지 10여 분, 돌핀샘이다.

▲ 절벽 밑에서 솟아나는 돌핀샘은 산행객들에게 시원한 약수를 내어줬다.
샘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후덥지근한 열기에 지친 몸이 약수 한 모금에 다시금 기운을 되찾는 듯하다. 돌핀샘에서 호평동 이정표를 따라 하산을 계속했다.

인적은 드물지만 산길이 워낙 뚜렷해 길을 헤맬 염려는 없었다. 그렇게 샘터를 떠난 지 30여 분, 천마의집 갈림길을 다시 만났다. 여기서부터는 올라왔던 길과 동일한 코스. 큰골로 접어들어 시원한 계류에 발을 담그자 산행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는 듯했다.

늦여름의 후덥지근한 열기와 뿌연 운무가 가득했던 산행길. 쾌청한 하늘과 어우러진 시원한 조망은 없었지만 운무로 뒤덮인 산은 나름의 운치와 정적을 선물했다. 이 몽환적인 풍광을 만끽하며 걸은 5시간의 산행길은 일상의 단조로움을 벗어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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