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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는 우리에게 불을 가져다주었다”
“광부는 우리에게 불을 가져다주었다”
  • 글·김경선 기자l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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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푸마와 함께하는 KOREA TRAVEL 태백 ③ 태백체험공원

▲ 최근에는 장비들이 좋아져 석탄 채취 작업이 한결 수월해졌다.

폐광된 함태탄광사무소에 조성된 태백체험공원은 광부들의 일상과 태백의 과거와 현재를 엿볼 수 있는 문화공간이다. 체험관에는 광부들이 사용했던 샤워실과 탈의실 등을 비롯해 실제 광부들이 작업하던 갱도까지 관람할 수 있어 생생한 문화학습이 가능하다. 태백의 자연을 만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면, 체험공원을 찾아 태백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해보자.


석탄산업이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1980년대 초중반, 태백에는 60개가 넘는 탄광이 있었다. 땅만 파면 석탄이 나오는 태백은 당시 ‘지나다니는 개도 입에 돈을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자 도시였다. 태백 전체가 탄광으로 먹고 살 정도였으니 석탄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어마어마하게 많았을 것이다. 태백시에서는 이들의 애환과 노고를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실제 탄광이었던 함태광산에 만들어진 석탄체험공원이 그것이다.

▲ 1980년대 함태탄광의 사택촌 모습. <사진제공=태백시청>

▲ 1980년대 함태탄광의 갱도 입구. <사진제공=태백시청>

태백시 소속의 신동일 문화해설사는 석탄체험공원을 광부기념관이라고 했다. 실제 탄광이었던 폐광을 견학하며 당시 광부들의 열악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체험관 내부에 들어서면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석탄산업의 발전과정을 사진과 설명으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사진과 설명만으로 부족한 이야기는 실제 광부들이 사용했던 목욕탕과 장화세척실, 사물함 등을 보며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1980년 중반 이후에 와서야 사물함과 목욕탕 시설이 생겼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도 35년간 광부 일을 하셨는데, 새카맣게 석탄 가루를 묻힌 모습 그대로 퇴근하셨죠. 아버지를 생각하면 항상 화장한 얼굴이 기억납니다. 얼굴이며 몸이며 주름진 곳은 까만 석탄 가루가 박혀 있었죠.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가 않았어요.”

체험관 내부에 마련된 샤워실은 지금의 대중목욕탕 형태다. 내부에는 광부들이 목욕하는 모형을 만들어 당시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했다. 신동일 씨에 의하면 1980년대 이후에 와서야 광부들을 위한 복지시설이 조금씩 생겨났다고 한다.

▲ 함태탄광의 전성기 시절 광도 입구 전경. <사진제공=태백시청>

해수면 가까이 내려가 채광 작업
▲ 광부들의 두 눈이 되어 준 칸데라.
“이것은 실제 괴탄입니다. 괴탄은 덩어리탄이죠. 괴탄을 깨서 분탄을 만들고 그것을 가공해 연탄을 만듭니다.”

나무로 짠 광차에는 진짜 석탄 덩어리가 가득했다. 직접 사람이 끌어야 했던 나무 광차는 1980년대 초반까지 쓰이다 이후에 쇠로 만든 광차가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고 한다. 그 옆에는 광부들의 두 눈이 되어 주던 조명 칸데라가 보였다. 헤드램프가 없었던 시절, 광부들은 칸데라 내부에 물과 카바이트를 섞어 넣고 화학반응으로 생성된 아세틸렌가스에 불을 붙여 램프로 사용했다. 칸데라를 사용하던 광부들은 조금 더 발전된 형태의 캡램프를 사용하는데, 체험관에는 광부들이 사용하던 캡램프와 충전기가 함께 전시돼 있었다.

체험관을 한 바퀴 둘러보자 지하로 이어지는 수갱 입구다. ‘당신은 담배나 성량을 휴대하고 있지 않습니까?’ 갱도로 들어서는 입구에 쓰인 문구다. 탄광 내에서는 인화물질을 전혀 사용할 수 없었을까?

탄광은 갑종탄광과 을종탄광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갑종탄광에서는 인화물질을 사용할 수 있지만, 을종탄광에서는 인화물질을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을종탄광에는 석탄과 함께 메탄가스가 매장돼 있어 화기류로 인해 폭발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곡괭이질을 할 때 발생한 불꽃으로 폭발이 일어나기도 해 수압으로 석탄을 채취했다고 한다.

▲ 광부들이 작업을 마치고 갱도를 따라 나오고 있다. <사진제공=태백시청>
함태탄광 입구에서 계단을 내려서자 마치 터널 형태의 갱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갱도를 따라 10여m 들어가니 길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왼쪽 길은 석탄차가 지나다니는 길이고, 오른쪽 길은 케이지 입구입니다. 케이지를 타면 수직으로 730m를 내려가죠. 지금 저희가 서있는 이곳이 대략 800m 고지니까 거의 해수면 가까이 내려가게 됩니다.”
함태탄광은 사갱이다. 사갱은 석탄이 산 속에 대각선 방향으로 매장돼 있는 것을 말한다. 광부들이 수갱 밑으로 케이지를 타고 내려가 석탄을 캐면 광차가 산 사면을 가로질러 석탄을 운반한다.

“태백에서 지금도 영업중인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는 해발 600m 고지에 있는데, 수갱이 1100m까지 내려갑니다. 이상하지 않으세요? 해수면 밑으로 500m를 더 내려간단 소리죠. 저희 동서가 그곳에서 광부로 일하고 있는데 지열이 어찌나 심한지 2시간 이상 작업을 할 수 없다고 해요.”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광부들

▲ 체험관 내에 쌓여있는 괴탄. 나무로 만든 광차 위에 괴탄이 수북이 쌓여있다.
갱도를 되돌아 나오는 길, 광부들의 고단한 생활상이 담긴 사진이 체험관 한쪽에 나란히 전시돼 있었다. 시커먼 분진을 뒤집어 쓴 채 석탄을 캐고 있는 그들의 애환이 사진 밖에서도 느껴질 정도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주었다는 이유로 코카서스 산 위에서 평생 간을 파 먹히는 형벌을 받았다. 그리고 광부는 땅속에서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주었다는 이유로 평생 폐를 뜯겨 먹는 형벌을 받았다.

광산에서 3년 이상 작업을 하면 진폐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 진폐증은 석탄 분진이 폐에 쌓여 시간이 갈수록 폐가 굳어져 급기야 호흡을 하지 못해 죽게 되는 병이다. 태백의 많은 광부들이 진폐증에 걸려 고통 속에서 죽어갔으며, 아직도 태백에는 100여 명의 노인들이 진폐증으로 고통 받고 있다고 한다.

한창 석탄산업이 호황이었던 1980년대 중반, 태백의 인구는 13만2000명에 달했다.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가 5만 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쓸쓸한 도시는 이제 과거의 영화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한 도시가 돼버렸다.

석탄체험공원은 석탄이 태백에 얼마만큼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 있는 현장이다. 태백의 발전과 쇠락을 보여주고 광부들의 고단한 삶을 조명한 이곳에서 일반인들은 잠시나마 태백의 과거를 회상해 볼 수 있다. 산업 역군들의 애환이 살아 숨 쉬는 석탄체험공원에서 태백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해보자.

태백체험공원

태백체험공원은 함태탄광사무실을 개조해 만든 체험학습장으로 갱도를 비롯해 실제 광부들이 사용하던 사물함과 목욕탕 등을 둘러볼 수 있다. 광부들의 고단한 삶을 조명한 체험관 내부에는 태백 석탄산업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설명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 가족 나들이 코스로 유익하다.

태백체험공원에서는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주말에만 가능하며 미리 체험공원에 연락해 예약해야 한다. 태백체험공원 입장료는 어른 10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500원이며, 이용시간은 09:00~18:00, 주차요금은 무료다. 태백체험공원 문의 033-550-2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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