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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봄봄’의 실레마을을 아시나요?”
“‘동백꽃’ ‘봄봄’의 실레마을을 아시나요?”
  • 글·김경선 기자l사진·이소원, 이두용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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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푸마와 함께하는 KOREA TRAVEL 춘천 ③ 김유정문학촌

▲ 2004년 새롭게 복원한 김유정 생가. 김유정이 어린 시절 살았던 ‘ㅁ’자형 가옥이다.

금병산 기슭에 자리한 마을 곳곳엔 소설의 흔적 가득

한겨울의 실레마을은 정적이 감돌았다. 금병산도 흐드러진 노란 동백꽃 대신 하얀 눈꽃만 가득하니 조용한 마을에 바람소리만 쌩쌩하다. 하지만 한국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 중 한 분인 김유정 선생의 발자취를 좇아 마을로 들어서는 순간, 얼어붙었던 마을에 알싸한 동백꽃 향기가 풍겨 나기 시작했다.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 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나아가면 내닫는 조고마한 마을이다. (중략)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움푹한 떡시루 같다 하여 마을 이름을 실레라 부른다.’
김유정(金裕貞, 1908~1937)은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에서 자신의 고향인 강원도 춘천의 실레마을을 이렇게 소개했다. 지금이야 잘 닦인 도로와 지척의 기차역으로 가기 쉬운 고장이 됐지만 김유정이 살던 시대만 하더라도 꼬불꼬불한 산길을 한참을 가야 나오던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하지만 이 작은 마을에 한국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인 김유정 선생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춘천시내에서 승용차로 10여분을 달리자 김유정역이다. 경춘선의 김유정역은 국내에서 인물 이름이 붙여진 최초의 역이다. 원래는 1939년부터 신남역으로 불리었는데 김유정을 기념하기 위해 2004년 한국철도공사가 역의 이름을 개명했다. 실레마을은 김유정역에서 모퉁이를 돌자마자 나타났다. 몇 굽이의 산허리를 돌아 만난 작고 고즈넉한 마을은 한겨울의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 고즈넉한 김유정문학촌 전경. 문학촌에는 김유정기념관과 생가, 방앗간 등이 있다.

마을로 들어서자마자 반기는 것은 새로 지은 정갈한 한옥촌이다. 2004년 춘천시가 김유정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생가와 기념관 등을 지어 놓은 것이다. 문학촌으로 들어서 가장 먼저 찾은 생가는 꽤 큰 ‘ㅁ’자형 가옥이다. 눈이 녹아 처마 밑으로 뚝뚝 떨어지는 낙숫물을 피해 방안으로 들어서니 주인을 잃은 집에는 냉기만 감돌았다. 김유정은 소설 ‘솥’에서 실레마을의 매서운 겨울을 이렇게 표현했다.

‘방은 우풍이 몹시도 세었다. 주인이 그악스러워 구들에 불도 변변히 안 지핀 모양이다. 까칠한 공석 자리에 등을 붙이고 사시나무 떨리듯 덜덜 대구 떨었다. 한구석에 쓸어 박혔던 아이가 별안간 잠이 깨었다. 칭얼거리며 사이를 파고들려는 걸 어미가 야단을 치니 도로 제자리에 가서 찍소리 없이 누웠다.’

▲ 김유정문학촌 내에 있는 디딜방앗간.
유복한 어린 시절과 불행한 청년시절
금병산 자락의 소설 ‘동백꽃’ 배경지도 가보고 ‘봄·봄’의 화전밭도 둘러보고 싶지만 폭설로 얼어붙은 금병산은 사람들의 접근을 반기지 않았다. 대신 김유정의 소설에 등장하는 실레마을을 찬찬히 둘러보기로 하고 김유정문학촌의 고계원 사무국장과 동행했다.

“많은 사람들이 김유정 선생을 고독과 가난 속에서 삶을 마감한 비극적인 소설가라고 생각해요. 그도 그럴 것이 폐결핵과 늑막염, 치질 등으로 평생을 병마에 시달려 30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죠. 하지만 불행한 청년기와 달리 김유정의 어린 시절은 유복했습니다.”

김유정은 유복했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나 사랑을 독차지하며 성장했다. 고계원 사무국장은 “김유정이 태어날 당시 재산이 수십 만 원이었다”며 “당시 춘천의 집 한 채 값이 200~300원 정도였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재산”이다.

김유정의 비극적인 삶이 시작된 것은 어머니의 죽음부터다. 7살이 되던 해 어머니를 여의고 곧이어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부모의 빈자리는 어린 김유정에게 큰 상실감을 주었다. 더구나 큰 형이 도박과 유흥으로 재산을 모두 탕진하자 김유정의 인생도 꼬이기 시작한다.

“가난도 문제였지만 어릴 적부터 유독 몸이 허약했어요. 횟배도 자주 앓았고요. 그런 김유정을 아버지의 무지가 더욱 병들게 만들었죠. 담배를 피우면 회충이 사라진다는 소리에 어렸을 때부터 김유정은 담배를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합니다.”

춘천에서 서울로 근거지를 옮긴 김유정은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1930년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했지만 출석일수 부족으로 제적된 후 다시 고향으로 내려온다. 이때부터 조카 김영수와 야학을 시작한 김유정은 농우회를 조직하는 등 농촌계몽운동에 힘을 쏟는다. 이 시기에 김유정은 ‘산골 나그네’를 시작으로 ‘봄·봄’, ‘안해’, ‘동백꽃’ 등 한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발표한다.

봄이면 알싸한 동백꽃 향기

▲ 김유정 선생이 코다리찌개를 안주 삼아 자주 술을 마시던 주막. 지금은 폐허로 남아있었다.
기념관에서 사진과 기록으로 김유정을 만났으니 이제는 실레마을에 남아있는 김유정의 향기를 만나볼 차례다. 실레마을은 기념관에서 도보로 5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하얀 눈밭을 따라 낮은 언덕을 오르니 움막 야학터다. 지금은 마을사람들의 텃밭으로 이용되고 있지만 김유정은 이곳에 움막을 짓고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마을에 들어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소설 ‘봄봄’의 얄미운 빙부 김봉필의 집이다. 지금은 잣나무에 뒤덮여 흔적만이 남아있지만 김봉필의 실존모델이 살았다고 한다. 주막에서 술을 먹고 백두고개를 넘어오던 김유정은 점순이와 혼례를 시켜주지 않는다며 사위가 장인과 싸우는 장면을 메모해 두었다가 ‘봄봄’을 집필했다.

김봉필의 집을 나와 좁은 마을 골목을 지나면 금세 금병의숙(錦屛義塾)이다. 마을 외곽의 움막 야학동이 화재로 없어진 후 김유정은 마을 중앙에 간이학교인 금병의숙을 지었다. 지금은 간이학교 대신 번듯한 마을회관이 들어서 있었지만, 건물 옆에는 금병의숙을 지을 당시 기념으로 심은 느티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라 당시의 체취를 느낄 수 있었다.

마을에는 김유정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주막과 ‘산골 나그네’의 물레방아터 등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김유정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었다. 점순이, 덕돌이, 덕만이, 뭉태, 춘호, 근식이 등 김유정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마을을 여전히 돌아다니는 듯 과거의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느낌이다.

▲ 김유정 선생의 복원된 생가 내부 모습.

꽃피는 3월이 되면 노란 동백꽃이 흐드러진 금병산 자락을 걸어보고 싶다. 강원도 사람들은 이른 봄날 생강나무에서 피는 노란 꽃을 가리켜 동백꽃이라고 부른다. 소설 ‘동백꽃’에서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는 대목도 생강꽃을 표현한 것이다.

▲ 마을로 들어서는 길목에 경춘선 김유정역이 있다.
김유정문학촌 뜰에 서면 금병산 자락에 푹 안긴 마을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잣나무숲 뒤편은 ‘동백꽃’의 배경이고, 맞은편 언덕은 김유정이 움막을 지어 우리말을 가르치던 야학터다. 마을 한 가운데 잣나무숲은 ‘봄봄’의 봉필이 영감집이고, 그 옆으로 간이학교 금병의숙과 느티나무도 자리하고 있다. 김유정이 코다리찌개에 술을 마시던 허름한 주막도 폐허가 된 채 마을에 남아있다. 자신의 아픔을 웃음으로 풀어내던 김유정의 이야기는 알싸한 동백꽃 향기와 더불어 실레마을에 여전히 남아있었다.  

김유정문학촌

춘천시 신동면 증3리 실레마을은 한국 현대문학의 대가 김유정 선생의 고향이자 작품의 무대다. 금병산 자락이 감싼 작지만 아늑한 실레마을에는 김유정 선생의 기념관과 생가를 비롯해 소설 속 배경지들이 남아있다. 소설 ‘봄봄’의 김봉필 집터와 금병의숙, 주막, ‘산골 나그네’의 물레방아터를 비롯해 금병산 자락의 동백꽃 군락과 ‘만무방’의 동굴, 새고개 등 김유정 문학의 생생한 현장들이다.

문학촌에서는 매년 행사들이 진행된다. 3월29일에는 김유정 추모제, 4월에는 김유정문학제, 5월에는 청소년 문학축제인 ‘봄봄’, 7월에는 김유정문학캠프, 9월에는 향토작가 알리기 순회 문학강연, 10월에는 1930년대 삶의 체험행사, 11월에는 생가 지붕에 이엉 엮어 올리기 등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된다.

김유정문학관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일이다. 입장료와 주차료는 무료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실레마을을 둘러볼 수도 있다. 김유정문학관을 통해 예약이 가능하다. 예약문의 033-261-4650, www.kimyouje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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