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맛만 좋을까요? 여름맛도 일품이에요~”
“봄맛만 좋을까요? 여름맛도 일품이에요~”
  • 글·김경선 기자l사진·이두용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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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푸마와 함께하는 KOREA TRAVEL 파주 ① 감악산 트레킹

설마교~안골~임꺽정봉~정상~까치봉~샛골…약 8km 원점회귀 코스 4시간 소요

▲ 까치봉에서 내려서는 길. 파란 하늘 아래 연둣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산군이 펼쳐졌다.
풋풋한 향기가 감악산을 뒤덮었다. 분홍빛 철쭉이 막 고개를 들어 마음을 설레게 만드니 정상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 가볍기만 하다. 감악산은 지금 봄처녀처럼 수줍고, 환한 웃음을 띤 아이처럼 해맑았다. 정상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자.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푸른빛의 향연이 당신의 마음을 흔들 것이다. 
 

관악산(629m)·화악산(1468m)·운악산(936m)·송악산(705m)과 함께 경기 오악(五嶽)에 꼽히는 감악산(紺岳山, 675m)은 바위 사이로 검은빛과 푸른빛이 동시에 흘러나온다 하여 감색바위라는 이름을 얻은 산이다. 아담하지만 깎아지른 기암괴석과 청정한 계곡이 어우러져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는 감악산은 서쪽으로 파주시, 남동쪽으로 양주시, 북동쪽으로 연천군의 경계를 이룬다.

감악산은 임진강과 인접할 뿐만 아니라 일대에 평야지대가 있어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여겨지던 산이다. 삼국시대 이래 한반도의 지배권을 다투던 장소이자, 6·25전쟁 때는 유엔군 소속의 영국군이 중공군과 격전을 벌였던 곳. 지금도 서부전선 최전방에 위치한 감악산은 슬픔과 비극의 역사를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다.

신록을 적시는 청정한 계곡

▲ 범륜사를 지나자 등산로는 맑은 계류가 흐르는 안골을 따라 이어졌다. 우거진 수풀이 촘촘한 그늘을 만들고 시원한 계곡의 바람이 불어와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높진 않지만 아기자기한 산으로 둘러싸인 파주 적성면 일대에 들어서자 경기도라는 사실이 놀라울 만큼 깊은 산골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시외버스와 군용 차량이 드문드문 지나는 호젓한 도로를 한참 달리자 감악산 들머리인 적성면 설마교 앞이다.

감악산 산행 들머리는 적성면 설마리의 범륜사와 감악산휴게소, 양주시 남면의 신암저수지가 대표적이다. 취재진이 찾은 곳은 파주의 범륜사 들머리로 산길이 평탄하고 유순하며 원점회귀가 쉬워 산행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코스. 범륜사에는 딱히 주차시설이 없어 50여m 떨어진 운계폭포산장에 차를 세우고 범륜사 초입으로 들어섰다.

포장도로를 따라 10여 분을 걸어 올라가니 자그마한 사찰 범륜사(梵輪寺)다. 정적을 깨는 목탁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사찰을 지나려는데 노스님 한 분이 말을 건네 왔다.

“봄맛이 좋지? 지금 올라가면 정말 좋을 거야. 오늘따라 날씨가 유난히 맑잖아.”

▲ 임꺽정봉에서 남쪽 방면을 바라보자 아담한 산군이 감싼 신암저수지가 한 눈에 조망됐다.

초연한 표정의 노스님은 화사한 봄날의 향기를 ‘봄맛’이라고 표현했다. 유난히 파란 하늘과 산을 뒤덮은 신록의 향연, 맑디맑은 계곡의 향기…. 취재진의 마음을 설레게 만든 범인은 바로 봄맛이었던 것이다. 봄맛에 취해 산길을 오르는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완만한 계곡을 따라가는 길, 우거진 숲이 촘촘한 그늘을 만들어 따가운 태양의 세례를 막아줬다.

▲ 전망 좋은 임꺽정봉
정상으로 향하는 산길 주변에서 커다란 구덩이가 자주 발견됐다. 안내판을 보니 숯가마터다. 1960년대 말까지만해도 감악산에서 숯을 굽는 사람들이 많아 곳곳에 가마터가 남아있다고 한다.

완만한 안골을 따른 지 30여 분, 묵밭 삼거리다. 왼쪽은 까치봉(560m)을 지나 정상으로 오르는 능선길이고, 직진하면 만남의숲을 지나 정상으로 오르는 계곡길이다. 직진해 계곡을 따랐다.

잠시 뒤 만남의숲 이정표와 함께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이곳에서 산길은 까치봉, 정상 안부, 임꺽정봉(670m)을 향하는 세 갈래로 나뉜다. 이 중 직진해 계곡을 따르는 산길은 정상으로 향하는 최단 거리인데다, 등산로가 완만하고 순해 산행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한다. 취재진도 직진해 정상 안부로 향했다.

산은 올라도 올라도 경사가 완만하다. 순한 산길을 꾸준히 오르기만 하면 된다. 그래도 계속된 오르막에 숨이 찰 무렵 마침 약수터가 보였다. 시원한 약수로 목을 축이고 다시 20여 분을 오르자 얼음골재 고갯마루다.

▲ 안골 등산로 주변에서 산벚꽃이 봉우리를 터뜨릴 준비가 한창이다.
감악산 주능선 상에 있는 얼음골재 고갯마루에서 오른편(남쪽)은 임꺽정봉 방면, 정면(동쪽) 계곡길은 봉암사 방면, 왼편(북쪽)은 정상 방면이다. 정상으로 바로 갈 수도 있지만, 임꺽정봉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정상보다 훌륭해 대부분의 산행객들은 임꺽정봉을 들른다. 취재진도 오른쪽 능선을 따라 임꺽정봉으로 향했다. 이정표를 보니 얼음골재에서 불과 200m 거리. 산길은 임꺽정봉 안부에서 왼쪽으로 우회하는 듯싶더니 임꺽정봉 정상까지 나무계단이 연결돼 있었다.

부드러운 연둣빛 능선의 향연
임꺽정봉(670m)에 올라서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유난히 파란 하늘 아래 온 산하가 연둣빛 물감을 뿌려놓은 듯 풋풋했다. 계절은 어김없이 변하지만, 매번 맞이하는 봄의 풍경은 늘 새롭고 감동적이다.

감악산 임꺽정봉은 임꺽정이 관군을 피해 진지를 쌓고 은거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임꺽정이 태어난 곳이 감악산 남쪽 자락의 양주 땅이기 때문이다. 임꺽정봉이라는 이름도 이런 연유에서 붙여진 것이 아닐까.

▲ 정상에서 내려서자 조망 좋은 공터에 정자가 서있었다. 군사시설과 방송기지가 있어 조망이 좋지 않은 정상보다 오히려 정자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더 시원하다.

임꺽정이 바라본 풍광을 눈에 담았다. 동으로는 동두천의 마차산(588m)·소요산(587m)·왕방산(737m)이 눈에 들어오고, 북동쪽으로는 멀리 철원의 고대산(832m)과 금학산(947m) 등 최전방의 산군이 조망됐다. 남쪽으로는 신암저수지의 평화로운 풍경이, 남동쪽 가까이로는 자그마한 산봉우리 위에 서 있는 이색적인 마리아상이 눈에 들어왔다. 인자한 표정으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마리아상은 감악산을 지키는 군인들을 위해 한 천주교 신자가 세웠다고 한다.

▲ 좁은 틈새 사이로 겨우 볼 수 있는 임꺽정굴.
임꺽정봉에서 정상으로 가기 위해 올라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가는데 등산객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감악산에서 군생활을 했는데 말이야. 이 굴 속에 자주 들어갔어. 여름이면 에어컨 바람보다 시원하거든.”

한 등산객의 이야기에 임꺽정굴(설인귀굴)을 내려다봤다. 감악산 동사면 절벽에 움푹 파인 임꺽정굴은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형이 아니었다. 절벽에 위치한 동굴 입구로는 들어갈 수가 없고, 능선에 뚫려있는 동굴 위쪽의 좁은 틈새로 들어가야 하는데, 조심스럽게 틈새를 들여다보니 아찔할 정도로 깊다. 이 굴을 굳이 들어가려면 안전장비를 갖춰야 가능할 것 같은데, ‘전역자의 이야기가 허풍은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15분 정도 능선을 따르니 정상이다. 감악산 정상은 군부대와 KBS 중계소 등이 철조망에 둘러싸여 있어 임꺽정봉에 비해 정상다운 맛이 덜했다. 널찍한 정상을 둘러보니 철조망 앞에 허름한 비석이 눈에 띈다. 설인귀사적비, 비뜰대왕비, 빗돌대왕비, 몰자비(沒字碑)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비석이다. 오랜 풍화작용 때문인지 글자 하나 남아있지 않은 이 비석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왔는데, 1982년 동국대 학술조사단의 조사 끝에 ‘신라 고비’로 결론이 났다고 한다.

완만한 하산길 곳곳에서 임진강 조망

▲ 임꺽정봉에서 바라 본 정상. 펑퍼짐한 정상에 방송수신탑이 서있다.
널찍한 정상에서 까치봉 이정표를 따라 북서쪽 등산로로 내려서자 널찍한 공터에 세워진 팔각정이 보였다. 이곳이 시설물로 가려진 정상보다 오히려 조망이 좋은 포인트다. 정자부터는 완만한 하산길이 이어졌다. 15분쯤 걸으니 까치봉(540m). 시야가 확 트여 굽이치는 임진강과 민통선 너머 북녘 땅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봉우리다. 까치봉에서 15분을 더 걸어가자 쌍소나무봉(440봉)이다. 직진해 능선을 따라가거나 100m 앞에서 오른쪽 계곡길을 따르면 감악산휴게소로 연결된다.

따가운 태양을 피해 계곡길로 내려섰다. 샛골에서 소맷골로 이어지는 계곡길은 조용하고 호젓했다. 졸졸졸 청명한 계류 소리가 울려 퍼지는 산길은 고도를 조금씩 낮추며 30분가량 계속됐다. 악(岳)산이지만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순한 산길을 내어주는 감악산이다.

경기 5악에 손꼽히는 다섯 개의 산 중에서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 가장 힘든 산이 감악산 아닐까. 서울에서 자가용을 이용해도 3시간 가까이 걸릴 만큼 가깝고도 먼 이 산에 주말이면 등산객들이 북적인다고 한다. 사람들이 이 산으로 몰려드는 이유는 시골 초가집처럼 소박하지만 수려한 산세와 깨끗한 자연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래, 어디 봄맛뿐이겠는가. ‘초여름맛’도 봄맛 못지않게 뛰어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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