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드러진 소금꽃에 숨이 막힐 지경
흐드러진 소금꽃에 숨이 막힐 지경
  • 글·박소라 기자|사진·엄재백 기자
  • 승인 2011.11.1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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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fuma와 함께하는 KOREA TRAVEL 평창 ③효석문화마을길

▲ 소금을 뿌린 듯 새하얀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봉평 메밀밭.

평창은 겨울이 제격이지만 봉평은 가을이 으뜸이다. 봉평 출신 작가 이효석은 자신의 고향을 배경으로 한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했다. 그 숨 막힐 듯한 광경은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볼 수 있다. 가을이면 봉평은 온통 새하얀 메밀꽃으로 뒤덮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밀꽃 필 무렵 봉평에 가면 문학의 향기가 더해진 가을 정취에 흠뻑 빠지게 된다.

<메밀꽃 필 무렵> 배경인 이효석 고향

▲ 메밀밭 사이로 작은 길이 나 있고 사진촬영 장소가 마련돼 있다.
지금의 효석문화마을은 이효석의 고향 봉평면 창동리 남안동이다. 그는 봉평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곧 고향과 자연을 그린 작품의 바탕이 되었고 한국 단편문학의 백미라고 불리는 <메밀꽃 필 무렵>을 탄생시켰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되는 효석문화마을은 이효석생가와 이효석문학관 등이 위치해 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학답사지로 꼽힌다. 이효석문학관 김성기 관장은 “봉평 메밀밭은 총 25만평인데 이중 효석문화마을에만 9만평이 조성돼 있다”며 “봉평에서도 제일가는 메밀밭 풍경”이라고 자랑했다. 그 풍경에 버금가는 명품길도 나 있다. 김 관장은 “이효석문학관 뒤로 주민들이 산책 코스로 이용하는 문학오솔길이 있다”며 “산꼭대기에 오르면 봉평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효석문화마을은 남만교에서 시작된다. 곧장 다리를 건너도 되지만 바로 옆 돌탑 오른쪽 길로 내려서면 섶다리가 설치돼 있어 서정적인 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징검다리를 폴짝폴짝 뛰어 건널 수도 있다. 흥정천을 건너 계단을 오르면 눈앞에 새하얀 메밀꽃밭이 펼쳐진다. 사진을 찍으면 그림이 되는 풍경이다.

마을 초입에 위치한 평창군종합관광안내센터 옆에는 물레방앗간이 조성돼 있다. 지난 1991년 남안동을 문화마을 1호로 지정하면서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세운 것이다. 이 뒤로 이효석문학관으로 오르는 나무계단길이 있다. 경사는 제법 가파른 편이다. 이보다 아스팔트 도로를 따르면 좀 더 편하게 갈 수 있지만 그만큼 걷는 재미는 적다.

이효석문학관은 작가의 업적을 기리는 공간인 동시에 휴식처로도 손색이 없다. 이효석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문학전시실 외에도 문학정원과 메밀꽃길 등이 잘 꾸며져 있기 때문이다.

▲ 효석문화마을 입구의 물레방앗간. 지난 1991년 남안동이 문화마을 1호로 지정된 것을 기념해 세운 것이다.

문학관 뒤쪽 언덕으로 오르면 푸른 잔디밭 너머로 울창한 숲길이 이어진다. 김 관장이 추천한 문학오솔길이다. 평탄하기 그지없는 이 길은 오가는 사람이 적어 호젓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표지판이나 이정표는 없지만 외길로 이어져 길을 헤맬 염려는 없다. 30분 정도 걷다보면 비닐하우스와 국토지리원에서 세운 안내판이 설치된 정상에 이른다. 겹겹이 산으로 둘러싸인 안락한 봉평 땅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바로 옆에는 큰 나무에 그네가 설치돼 있어 잠시 쉬어가기 좋다.

▲ 서정적인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흥정천 섶다리.
이곳은 문학오솔길의 끝이자 반환점이다. 능선을 곧장 따르면 평창 무이예술관과 휘닉스파크까지 길이 이어진다. 김성기 관장은 “도중에 이효석생가 방면 메밀밭으로 내려설 수도 있지만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니라 수풀을 헤쳐가야 한다”며 원점 회귀할 것을 조언했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숲길을 두고 돌아서기엔 아쉬움이 컸다. 결국 조금만 더 가보자는 욕심을 부렸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갑자기 길이 가팔라지면서 힘에 부치기 시작한 것이다. 취재팀은 발밑이 전혀 보이지 않는 무성한 수풀을 헤치며 간신히 마을로 내려설 수 있었다.

소설 읽으며 걷는 산책길

▲ 평창군에서 복원한 이효석생가 당나귀집.
▲ 석각마다 <메밀꽃 필 무렵>의 이야기를 새긴 효석·문학숲공원. 총 69개 석각을 따라가면 소설 한 편을 다 읽게 된다.












▲ 이효석이 평양에 살며 <메밀꽃 필 무렵> 등을 집필했던 평양 ‘푸른집’.
▲ 이효석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이효석문학관.











효석문화마을에는 이효석생가가 두 곳이다. 하나는 실제로 이효석이 태어난 생가터, 또 하나는 복원된 생가다. 생가터는 현재 개인 소유지로 새마을운동을 거치며 개축돼 지금의 모습이 됐다고 한다. 그래서 평창군은 지역 원로들의 고증을 바탕으로 700m 떨어진 곳에 새로운 생가를 복원해 놓았다. 이효석이 평양에 살며 <메밀꽃 필 무렵>을 비롯해 수많은 작품을 썼던 ‘푸른집’도 재현돼 있다. ‘푸른집’은 뜰에 나무와 화초가 가득하고 담쟁이가 집 전체를 푸르게 덮어 불렸던 이름이다.

옛 생가터 옆에는 ‘메밀꽃 필 무렵’이란 이름의 음식점이 있다. 그동안 생가터를 관리·보존해온 홍씨 일가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직접 농사지은 메밀로 만든 메밀국수 맛이 일품이다. 특히 국수 고명으로 올린 메밀싹의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입맛을 돋운다.

▲ 문학오솔길 정상에서 내려다 본 봉평 일대.

생가터에서 표지판을 따라 가면 효석·문학숲공원으로 길이 이어진다. 약 1km 정도 떨어져 있는데다 약간 언덕진 길이라 오르기 힘들지만 그만큼 발품을 판 보람이 있다. 이제껏 걸어온 길이 <메밀꽃 필 무렵>이 태어나게 된 배경을 둘러보는 코스라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소설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효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효석·문학숲공원은 소설을 테마로 한 자연학습장으로 문학체험숲길과 고랭길 등 트레킹 코스도 함께 조성돼 있다. 입구에서 황톳길을 따르면 석각마다 <메밀꽃 필 무렵>이 처음부터 끝까지 새겨져 있다. 총 69개에 이르는 석각을 따라가면 소설 한 편을 다 읽게 되는 셈이다.

곳곳에 소설 내용에 걸맞은 모형과 함께 충주집, 물레방아, 장터 등이 조성돼 있고 다양한 야생화가 군락을 이뤄 걷고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쉬엄쉬엄 글을 읽으며 걷다보면 소설 속 허생원의 말에 절로 수긍이 가게 된다. ‘그때부터 봉평이 마음에 든 것이 반평생을 두고 다니게 되었네. 평생인들 잊을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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