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묵직한 마루금의 파노라마
깊고 묵직한 마루금의 파노라마
  • 글·김경선 기자ㅣ사진·안희태 기자
  • 승인 2011.11.1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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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fuma와 함께하는 KOREA TRAVEL 평창 ②오대산 트레킹

▲ 이른 아침 짙은 안개가 오대산에 내려앉았다. 상원사 전각 처마 너머로 오대산 능선이 아스라이 보인다.

오대산은 어머니다. 이 산에는 모든 부처의 어머니이자 모든 보살의 스승인 문수보살이 상주한다. 산은 대지를 품고 물을 감싸고 사람을 보듬는다. 어머니의 모습처럼 한없이 부드럽고 포근하다. 그리하여 오대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오대산에 문수신앙이 태동한 시기는 신라시대다.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했을 때 “당신의 나라 동북방 명주 땅에 일만의 문수보살이 늘 거주하니 가서 뵙도록 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신라로 돌아온 자장율사는 강원도 오대산에 문수신앙의 본거지를 만드는데, 그 자리에 세운 사찰이 월정사다. 오대산 자락에 적멸보궁을 세워 부처의 머리에서 나온 진골사리를 모셔 놓고 ‘불법의 산’이자 ‘불교의 성지’로 만든 이도 자장율사다.

문수보살 전설 서린 상원사

▲ 국보 제221호인 상원사 문수동자상.
월정사 입구 매표소를 지나자 잘 닦인 포장도로가 이어졌다. 산행을 시작할 상원사까지 7km 거리다. 이른 아침의 오대산은 인적이 드물다. 적막한 도로를 따라 달린지 15분 만에 상원사에 도착했다.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신문왕의 아들 보천태자는 아우 효명과 함께 오대산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예배하고 염불하던 중 오만의 보살을 친견한 뒤 날마다 이른 아침에 차를 달여 일만의 문수보살에게 공양했다’고 기록됐다. 이때 두 왕자가 오대산 중대에 진여원(眞如院)이라는 사찰을 창건했는데, 지금의 상원사다.

아담한 절집 상원사에 들어서자 문수전 앞마당에 상원사동종(국보 제36호)이 보였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동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범종으로 맑고 깨끗한 울림을 내는 종이다. 악기를 연주하면서 하늘을 나는 비천상과 우아한 문양이 시선을 압도했다. 아쉽게도 지금은 오대산을 굽이굽이 휘감아 울리는 종소리를 듣지 못한다. 훼손을 막기 위해 더 이상 타종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종과 함께 상원사를 대표하는 국보가 문수동자상(국보 제221호)이다. 전신에 종창이 생기는 괴질을 앓은 세조가 오대산에서 동자승으로 변한 문수보살을 만난 후 인상착의를 바탕으로 조각된 것이라고 전한다.

▲ 협소한 공간에 가람을 배치하기 위해 계단식으로 설계한 사자암이 독특하다.

상원사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됐다. 비탈을 따라 오르자 어느새 중대 사자암. 협소한 공간에 가람을 배치하기 힘들었는지 특이하게 계단식으로 지어진 절집이다. 사자암을 지나 가팔라진 산길을 잠시 따르면 우리나라 불교의 제일 성지로 손꼽히는 적멸보궁이다. 영축산 통도사, 사자산 법흥사,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에 속하는 곳이다.

적멸보궁에는 불상이 없다. 대신 부처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 이른 아침부터 적멸보궁에는 부처의 가르침을 갈망하는 신도들이 여럿이다. 고요한 산중에 울려 퍼지는 목탁소리가 청아하다.

수묵화 부럽지 않은 부드러운 산물결

▲ 비로봉 정상에서 바라 본 조망은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다.
적멸보궁을 지나자 산길이 부쩍 가팔라졌다. 부드러운 어머니의 품이라도 정상만큼은 쉽게 보여주지 않을 모양이다. 숨이 꼴딱꼴딱 넘어갔다. 등에서도 땀이 주룩주룩 흐른다. 정상이 나타날 듯하면 또 한 굽이가 여러 번, 드디어 비로봉(1563m)이 모습을 드러냈다.

풍요로운 산세가 끊임없이 펼쳐졌다. 삼대(三代)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오대산 정상 풍광에 가슴이 설렌다. 운무는 산줄기를 타고 춤사위를 펼쳤다. 청명한 조망은 아니지만 몽환적인 운무의 물결에 풍경은 더욱 고즈넉하다. 육감적인 강원도의 산세가 발아래 가득하니 넉넉한 여인의 품에 안긴 듯 가슴이 벅차오른다.

▲ 부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적멸보궁.

‘쌩쌩’ 능선을 넘나드는 바람 소리가 정상을 울렸다. 아직 산 아래는 선선한데 백두대간을 넘나드는 차가운 바람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정상의 황홀한 풍경과 작별할 시간이다.

상왕봉(1491m)까지는 오대산 주능선을 따르는데 갑자기 산길이 좁아지더니 수풀이 무성하다. 바닥도 질퍽질퍽해 자꾸 발이 빠졌다. 발끝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눈에서 풍경이 멀어졌다. 산길 주변엔 멧돼지가 파헤친 흔적이 가득하다. 오가는 등산객 하나 없어 내심 섬뜩한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주목 군락이 나타났다. 오대산 주목은 족보가 있을 만큼 나이가 많다. 거친 칼바람에도 꿋꿋이 산을 지키는 주목이 늠름하다.

비로봉에서 상왕봉으로 가는 길은 조망이 막혀있다. 대신 두 곳의 헬기장에 서면 오대산의 산줄기가 선명하게 보인다. 동쪽으로 노인봉 너머 동해가 펼쳐지고, 북쪽으로 설악산의 호쾌한 산줄기가 흘러간다.

오대산과 ‘五’의 인연
오대산은 자장율사와 인연이 깊다. 산의 이름 역시 자장율사가 지었다고 전해진다.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돌아와 처음 오대산을 찾았을 때 만월봉·장령봉·지로봉·기린봉·상왕봉이 마치 연꽃이 핀 듯한 형국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하나 튀는 것 없이 다섯 개의 봉우리가 평평한 대를 이룬 모양이라 오대산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 날이 맑을 때면 비로봉에서 노인봉과 동해바다까지 한 눈에 조망된다.

▲ 상왕봉에 서면 조망이 시원하게 뚫린다. 동쪽으로 동대산과 노인봉이, 북쪽으로 설악산의 마루금이 한 눈에 조망된다.

‘五’와의 인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동서남북을 지키는 다섯 개의 봉우리에 각각 동대 관음암, 서대 염불암, 남대 지장암, 북대 미륵암, 중대 사자암이 세워졌다. 숫자 5는 완전함과 힘, 신성의 상징이다. 오대산이 우리나라 ‘불교의 성지’이자 ‘불법의 산’으로 추앙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산길은 이제 원시림의 모습이다. 거목들은 자태를 경연하듯 뽐내며 풍요로운 가을을 만끽하고 있었다. 설악산처럼 호쾌한 암봉이 시선을 압도하지는 않지만 한없이 부드러운 능선은 은근하면서도 묵직한 감동을 끊임없이 내어줬다.

비로봉을 출발한지 1시간 만에 상왕봉에 도착했다. 이제 하산할 시간이다. 산길은 계속 능선을 따르더니 두로령 삼거리에 닿았다. 능선을 계속 따르면 두로봉까지 이어져 백두대간에 닿겠지만 우리는 북대로 내려서 상원사로 가야했다.

▲ 고즈넉한 절집 월정사.

가파른 비탈이 이어졌다. 부드러운 육산이라지만 제법 긴 산행에 다리가 저려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산길이 끝나고 옛 446번 도로를 만났다. 여기서부터 상원사까지는 비포장 도로다.

자작나무가 완만한 산길을 호위했다. 널찍한 도로지만 양쪽으로 키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뜨거운 햇살을 막아줬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도로는 5km나 이어진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길은 1시간 30분 후에야 상원사 주차장에 닿았다.

오대산은 계절마다 새로운 산으로 거듭난다. 이 산이 불교의 성지이자 나무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월정사 전나무 숲에 이르면 거목의 아름다움은 절정에 다다른다. 하늘을 향해 한없이 곧추선 전나무의 기상은 잡다한 상념을 깨뜨린다. 오대산의 문수보살이 우리에게 전하는 삶의 지혜가 이것이었을까? 바람이 분다. 상념이 바람을 타고 오대산으로 흘러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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