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바람 구름도 쉬어가는 천년의 길, 대관령 옛길
눈 바람 구름도 쉬어가는 천년의 길, 대관령 옛길
  • 글·김경선 기자ㅣ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4.29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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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푸마와 함께하는 KOREA TRAVEL 강릉

▲ 대관령박물관을 지나면 옛길의 시작을 알리는 ‘大關嶺옛길’ 표지석을 만난다.

대관령박물관~하제민원~주막터~반정…약 6km 2시간30분 소요

강릉과 한양을 잇는 관동대로, 그 절정에 대관령(大關嶺ㆍ832m)이 있다. 이 고갯길을 옛날에는 ‘대굴령’ ‘대령’ ‘굴령’ ‘대현’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지금의 이름은 고개가 험하고 높은 탓에 ‘대굴대굴 크게 구르는 고개’라는 뜻의 대굴령에서 음을 빌려와 대관령이 됐다는 설이 전해진다. 어찌됐건 예나 지금이나 ‘큰 재’라는 의미로 통용된 것은 분명하다.

아득히 높은 고갯마루는 아흔아홉 굽이라고 했다. 그만큼 대관령은 높고 험하다. 지금이야 발품 없이 차를 타고 고갯마루를 넘으면 그만이지만 옛 사람들은 짚신감발하고 이 험준한 고갯마루를 힘겹게 넘나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오랜 세월 영동과 영서 지방을 이어주던 옛길이 아직도 대관령 고갯마루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 반정에 올라서면 아흔아홉 굽이 너머 강릉과 동해바다가 한 눈에 펼쳐진다. 푸른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그림 같은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

대관령 옛길은 반정을 중심으로 남쪽의 대관령 휴게소와 동쪽의 대관령박물관까지 약 15km 구간이다. 이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구간은 대관령박물관에서 반정까지 약 6km 구간으로 산길이 완만하고 부드러워 남녀노소 누구나 가볍게 걸을 수 있는 코스다. 산행은 반정이나 대관령박물관 어느 곳에서 시작해도 무방하지만 정상으로 오르는 산행의 참맛을 느끼고 싶다면 대관령박물관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취재진도 대관령박물관으로 차를 몰았다. 이 맘 때쯤이면 눈이 쌓였을 법도 한데 아직까지 일대 산마루는 속살을 드러낸 채 스산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구 영동고속도로에 접어들자 금세 대관령박물관이다. 사실 구 영동고속도로는 1975년에 개통해 영동과 영서를 잇는 대표 길이었다. 하지만 워낙에 경사가 가파르고 길이 꼬불꼬불해 폭설이 내리면 수시로 통제되곤 하던 길이다. 그래서 2001년, 7개의 터널을 대관령에 뚫어 새로운 고속도로를 개통했다. 이후 꼬불꼬불한 이 추억의 고속도로는 456번 지방도로로 이름을 바꿨다.

▲ 옛길로 접어들자 울창한 금강송림이 취재진을 반겼다. 향긋한 솔내음을 맡으며 옛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랐다.

아흔아홉 굽이마다 사연 가득
대관령박물관부터는 차를 버리고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 걸어야한다. ‘大關嶺옛길’ 표지석을 지나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서자 빽빽하게 들어선 금강송이 향긋한 솔내음을 풍겨왔다. 청운을 꿈을 안고 한양으로 향하던 젊은 선비들은 이 금강송을 바라보며 희망을 품었겠지. 어쩌면 괴나리봇짐 멘 장돌뱅이가 소나무 그늘에 앉아 잠시 시름을 달랬을지도 모른다. 무수한 사람들의 발길을 묵묵하게 받아준 대관령 옛길은 이렇게 발걸음마다 사연이 달렸다.

옛길로 들어서자마자 만난 고개에도 사연이 있다. 조선시대 강릉으로 부임한 고을원이 한양에서 600리나 떨어진 먼 곳으로 부임하는 것이 한스러워 울었고, 임기를 마치고 다시 한양으로 돌아가면서 강릉과의 정을 잊지 못해 두 번 울었다는 원울이재다. 원울이재를 넘어서자 뜻밖에도 펜션단지다. 조선시대에도 하제민원(下濟民院)이라는 숙박업소가 있던 자리라고 하니 과거나 지금이나 숙박터는 비슷한가보다.

▲ 상제민원 주막터 앞에 등산객들이 목을 축일 수 있도록 약수터를 만들어 놓았다.
펜션 단지 덕분인지 하제민원까지는 포장도로가 이어졌다. 예전에는 한두 명이 겨우 지날만한 좁은 산길이었다고 하는데, 조선 중종 때 강원도로 부임한 관찰사 고형산이 널찍하게 길을 닦았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 길이 바우길 2구간으로 지정되면서 등산객들이 몰려들어 길이 더욱 단단하고 널찍하게 다듬어진 듯하다.

계속된 오르막에 코끝을 아리게 만들던 추위가 사그라졌다. 대관령의 바람과 추위에 지레 겁을 집어먹고 옷을 어찌나 껴입었는지 비지땀까지 흘러 내렸다. 수려한 계곡의 절경을 바라보며 걷기를 1시간, 상제민원 주막터에 도착했다.

옛날 모습을 복원한 상제민원 주막은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대신 주막 앞뜰에 놓인 평상에서 등산객들의 점심식사가 한창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 맘 때쯤이면 배고픈 것은 매한가진가 보다. 주막을 지나자 산길이 조금씩 가팔라졌다. 계곡을 건너길 두어 번 산길이 계곡을 벗어나 능선으로 올라붙었다.

▲ 강릉시가 복원한 주막. 험난한 고갯길을 넘나들던 사람들은 이 주막을 수시로 드나들었을 것이다.
동해와 강릉 시내 조망 일품
능선으로 올라붙은 산길이 ‘아흔아홉 굽이’라는 별칭처럼 구불구불 이어졌다. 이 별명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율곡이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대관령을 넘었는데, 곶감 100개를 굽이를 넘을 때마다 하나씩 빼먹었더니 정상에 도착하자 고작 하나가 남았다고 한다. 그래서 ‘아흔아홉 굽이’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한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던 산길이 넓은 터를 만났다. 나무로 만든 널찍한 테이블과 벤치가 있어 등산객들이 쉬어가는 쉼터다. 쉼터 한 쪽에 안내판이 눈에 띄었다. 대관령이 신라 때는 대령(大嶺), 고려시대에는 대현(大峴)이나 굴령(堀嶺), 조선 초기에는 대령산(大嶺山)으로 불렸고, 대관령이라는 이름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처음 나온다고 적혀있었다. 사연만큼 이름도 많은 산이다.

조금씩 고도를 높이던 옛길이 대관령6터널 위를 지났다. 발 아래로 영동고속도로 위를 쏜살같이 질주하는 차들이 보였다. 고즈넉한 옛길에서 만난 세속적인 장면에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 옛길 곳곳에 등산객들이 쉴 수 있는 벤치가 마련돼 있었다.
산중에 쩌렁쩌렁하게 울리던 자동차 굉음이 잦아질 무렵 비석 하나가 나타났다. 순조 24년(1824)에 세워진 향리 이병화의 비석이다. 한겨울 대관령의 험난한 고갯길을 넘나들던 사람들이 변변하게 묵을 곳이 없어 목숨을 잃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사비를 내 주막을 운영했다는 이병화의 아름다운 뜻을 기리고자 세워진 비석이다.

비석을 지나자 신사임당의 시 한수가 적혀있는 안내판을 만났다. 강릉에 친정을 두고 한양으로 향하던 신사임당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지은 시다.

‘늙으신 어머니를 고향에 두고/외로이 서울 길로 가는 이 마음/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마침내 산길이 고갯마루에 닿았다. 그 정점에서 가장 먼저 우리를 맞아준 것은 바람이다. 사정없이 온 몸을 때려대는 바람을 피하자 이번에는 아흔아홉 굽이 아래 동해바다가 우리를 맞아준다.

구 영동고속도로가 지나는 반정에는 자그마한 정자가 있다. 정자에서는 신 영동고속도로와 구 영동고속도로가 한 눈에 내려다보였다. 역시나 구 영동고속도로에는 차들이 뜸하다. 세월이 흐르고 사람이 바뀌면 길도 변하는 것은 인지상정. 새길이 열리면 옛길은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옛길의 추억과 향수는 새길이 대신할 수 없다. 쌩하고 지나치는 새길은 길다운 사연이 없다.

▲ 단원 김홍도는 대관령의 수려한 절경을 화폭 가득 담아냈다. 예나 지금이나 굽이치는 대관령의 산세는 여전한가보다.
‘길’이 주는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길에는 자연이 살아 숨 쉬고 사람들의 사연이 속속 배어있다.
그래서 길 위에 서면 막막했던 발걸음이 자연의 이끌림을 따라, 인간들의 사연을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때로는 길 위에서 나 자신을 만나기도 하고, 세상을 만나기도 한다. 대관령 옛길에는 굽이굽이 사연이 가득하다. 누군가의 추억이 담겨있는 길을 걷다보면 그 사연들이 가슴으로 전해진다.

 

강릉의 바우길 11개 코스
▶1구간-선자령 풍차길 : 대관령 양떼 목장 주차장~대관령 국사 성황당~선자령 이정표~출발지, 11km 4~5시간 소요.
▶2구간-대관령 옛길 : 대관령 양떼목장-국사성황당~반정~옛길 주막~어흘리~보광리~보광리 유스호스텔, 15km 5~6시간 소요.
▶3구간-어명을 받은 소나무 길 : 보광리 유스호스텔~보현사 가는 길~어명정~술잔바위~송이 움막~임도 삼거리~임도~명주군왕릉, 12km 5~6시간 소요.
▶4구간-사천 둑방길 : 명주군왕릉~임도~사천 해살이 마을~사천 둑방~허균시비~사천진리 해안공원, 17km 6시간 소요.
▶5구간-바다 호숫길 : 사천진리 해안공원~사천항~사천해변 솔밭~경포해변~경포호수~허균허난설헌 유적지~강문-안목~남항진, 17km 6시간 소요.
▶6구간-굴산사 가는 길 : 남항진 솔바람 다리~남항진교~병산동~성덕동~중앙시장~강릉 단오장~모산봉~장현저수지~ 학산 굴산사지~학산 오독떼기전수관, 18km 6~7시간 소요.
▶7구간-풍호연가 : 학산 오독떼기전수관~금광리~덕현리~정감이 산책로~강동면 사무소~풍호 연꽃단지~풍호 산책로~하시동 해안사구~염전해수욕장~안인항, 20km 7시간 소요.
▶8구간-산 우에 바닷길 : 안인항~전망대~삼우봉~당집~183고지~정동마을~정동진역, 9.3km 5시간 소요.
▶9구간-헌화로 산책길 : 정동진~정동김치공장 옆길~기마봉가는 등산로~삼거리 전망대~해안단구 농경지~심곡~헌화로~금진, 8km 5시간 소요.
▶10구간-심스테파노 길 : 명주군왕릉~무일동~경암동 골아우~위촌리(송양초교)~죽헌 저수지~시루봉~경포대 정자, 21km 8시간 소요.
▶11구간-신사임당길 : 위촌리 송양초등학교~유천동~죽현 저수지~오죽헌~선교장~시루봉~경포대~경포호수~허균·허난설헌 생가터, 16.4km 6시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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