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와 혼돈의 시간, 매너 스트리트
캐나다 밴쿠버의 작고 조용한 거리 매너 스트리트Manor Street에는 창고를 개조한 아크테릭스 공장이 있었다. 2012년까지 캐나다 유일의 아크테릭스 공장이자, 물류센터, A/S 작업실이던 이곳은 한 공간에 신제품 제조와 A/S 시설이 공존하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매너 스트리트의 공장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빠른 속도로 복잡한 작업을 능숙하게 해내는 프레스 기술자들, 작은 제트기 소리가 나는 공업용 재봉틀로 만든 고어텍스 재킷, 날렵한 손동작과 기계 사이를 오가며 재단되는 소재들, 형형색색의 더미를 이루며 바닥에 쌓여가는 시접 리본. 협소한 공간에서 능률적으로 이루어지는 공정들은 아크테릭스를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혼재된 공간은 전쟁터였다. 더 나은,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환경이 절실했다.
도약을 위한 새로운 생산 기지, 아크'원
아크테릭스가 성장하면서 모두를 위한 새로운 공간이 필요했다. 2016년 5월 문을 연 아크'원ARC'ONE은 밴쿠버 디자인센터와 불과 2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디자인과 생산 간의 긴밀한 연결고리를 확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아크테릭스는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지 않았다. 본사가 위치한 밴쿠버에 지적 자산을 남기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로써 디자인팀과 개발팀은 제품의 제작 과정을 더욱 잘 이해하고, 우수한 제품을 만들게 됐다.
아크'원은 기존의 방식과 차별화된 새로운 작업을 시도했다. 보통의 공장은 제품을 제작할 때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분업화된 작업을 하는데, 이러한 방식은 속도가 빨라 효율적인 반면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해 곳곳에서 병목현상이 발생하기도 하며 종종 완성품을 하나도 만들지 못하는 날이 생기기도 한다.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고자 아크'원은 팀 기반의 작업 과정을 채택했다. 이 방식은 높은 효율성을 내기 위해 모든 작업자가 더 높은 수준의 기술을 갖춰야 하지만 매일 지속적으로 완성품을 생산할 수 있다. 물론 작업자들은 큰 변화에 적응해야 했다.
아크'원에서의 작업환경은 크게 개선됐다. 새로운 공장은 기존의 매너 스트리트 시절 보다 네 배나 커졌고 축구장 세 개 규모에 달한다. 이곳에는 공장, A/S 센터가 있으며 물류 배송까지 이루어진다. 무엇보다 협소한 공간에서 작업하던 A/S 센터팀에게 넓고 쾌적한 사무실이 주어졌으며, 세탁기도 네 대나 들여놓는 등 효율적인 업무공간이 완성됐다. 매주 접수되는 A/S 물품들을 쌓아둘 공간도 넉넉하다. 휴식 시간에 직원들이 운동할 수 있는 트랙과 배드민턴 코트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매너 스트리트 시절보다 시설이 얼마나 더 좋아졌는지가 아니다. 새로운 공간에서 공장의 기술자와 그들이 작업할 설비를 만드는 엔지니어 사이에서 활발한 교류가 일어나고, 가까운 거리 덕에 디자이너와 공장의 기술자가 교류하며 조언을 구하고, 피드백을 교환한다. 디자이너가 샘플을 완성해 공장에 전달하는 시간은 불과 25분. 모든 공장이 해외에만 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해외 공장에서 ‘이렇게는 못할텐데..’ 란 피드백이 오더라도 디자이너가 아크'원을 찾아 직접 가능여부를 검증할 수 있다.
아크테릭스는 자국 내 공장을 보유한 유일한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다. 공장에는 400여 명의 직원이 근무중이며 아웃도어, 베일런스, 리프 제품을 주로 생산한다. 1년에 85가지 품목, 11만500개 제품을 만들며, 매일 300개 이상 완성품이 탄생한다. 각각의 제품은 작게는 152가지에서 많게는 325가지 개별 공정을 거친다. 전 세계 생산량의 10%가 이곳에서 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