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테릭스 디자인센터, 마이크와 탐의 이야기
아크테릭스 디자인센터, 마이크와 탐의 이야기
  • 이지혜 기자
  • 승인 2018.08.30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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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인 동시에 천재인 디자인센터 마술사
마이크 블렌칸 & 탐 페일

마이크 블렌칸(MIKE BLENKARN)의 이야기

혼돈.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노스 밴쿠버에 자리한 아크테릭스의 디자인센터 1층 모습을 설명하는 단어다. 중간벽 없이 오픈된 구조는 프로패셔널한 연구소처럼, 그래서 무질서해 보이기까지 한다. 책상 아래에서 뒹굴고 있는 강아지, 소파에 눌러 앉은 채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재봉틀이나 컴퓨터, 절단기 앞에 앉아 온 신경을 집중하는 직원들. 이곳의 베테랑 연구개발자이자 ‘마술사’로 불리는 마이크 블렌칸은 잠시 그 모습을 둘러보다 이내 어느 한 곳에서 시선을 멈췄다. 그의 양손은 허리춤에 고정됐다. 무언가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마도 테스트하고 있던 방수 소재의 성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거나, 새로운 디자인의 옷깃이 생각보다 무게를 많이 줄이지 못한 듯하다. 뭐가 문제든, 이러한 디테일을 살피는 것이 바로 그의 임무다. 그래서 때로는 더 나은 접착방법, 더 적절한 라미네이팅 방식, 더 정확한 재단에 대해 닦달한다.
“이봐 자네, 이걸 좀 더 정확하게 해야 해. 한 눈에 알아차릴 수 있어야 좋은 제품이지.”

그는 괴짜다. 그리고 동시에 천재다.블렌칸은 오늘날 아크테릭스가 있기까지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의 커리어는 어쩌면 수십 년에 걸친 전쟁이란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수많은 저항에 맞서 좋은 아이디어가 정말 ‘좋은 아이디어’인지 증명해야 했다. 그래서 블렌칸은 종종 말한다.
“사람들은 당신의 아이디어가 나쁘다고 할 것이다. 실제로는 그게 좋은 아이디어임에도 말이다.”
워터타이트Watertight™ 방수 지퍼가 가장 좋은 예다. 지퍼 그 자체로 방수가 된다는, 모두가 비웃었던 아이디어가 가능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블렌칸은 10년이란 세월을 기꺼이 쏟아 부었다. 그 결과 방수 재킷을 만드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나아가 아웃도어 산업 전체를 완전히 뒤바꿀 수 있었다. 소프트쉘 소재 또한 그의 아이디어가 현실화된 또 다른 사례다. 처음 그는 동네 장비점에서 사온 스프레이 접착제를 이용해 두 개의 서로 다른 직물을 하나의 소재로 붙여봤다. 그 결과물을 폴라텍Ⓡ에 보내면서 요청했다.
“꼭 좀 부탁이니 이런 걸 한 번 만들어보면 어때요?”
다행히 그들은 요청에 응했고, 소프트쉘 소재인 폴라텍Ⓡ 파워 쉴드™는 그렇게 태어났다.

탐 페일(TOM FAYLE)의 이야기

연구 개발팀의 수장인 탐 페일은 또 다른 괴짜이자 또 한 명의 천재다. 그의 최신 작품은 중국 장난감 ‘핑거 트랩’과 수목 관리사들이 쓰는 도구의 특징을 섞은 것이다. 바로 줄이나 버클 없이 고정과 길이 조절을 할 수 있는 허리 벨트다. 상상이나 해봤을까. 멋진 아이디어임은 틀림없지만, 이걸 어떻게 대량생산할 수 있을까? 페일이 만든 허리벨트가 실제 제품으로 탄생하기 위해선 수개월에 걸쳐 풀어야 할 퍼즐이 있었다. 나일론 웨빙을 정확한 순서대로 배열한 뒤, 그걸 뒤집어서 팬츠에 삽입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던 것. 페일이 그 프로젝트를 들고 찾아갔을 때, 엔지니어링 팀원들은 그가 또다시 엄청난 숙제를 가져왔다는 걸 알았다.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 될 게 분명했다.

아크테릭스는 시간을 투자라는 개념으로 여긴 적이 없다. 시간은 비용이다. 넉넉하게 주어진 적이 없다. 아이디어에 따라 몇 주, 몇 달 혹은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좋은 디자인을 위한 방정식에는 시간 말고도 또 다른 요소가 필요하다. 바로 생각이다. 실제로 판매할 수 있는 제품이 될 수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특히 캐나다에서 디자인되고, 해외 공장에서 제작되고, 유럽에서 판매 되어야 하는 구조라면 더욱 중요하다. 수입과 수출, 관세로 인한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 의류 제품에 들어가는 포켓을 생각해보자. 포켓이 옷 전체의 재봉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어떤 소재가 쓰여야 하고, 어떤 모양으로 제작돼야 할지, 혹은 포켓을 없앴을 때 그 옷의 활용도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지를 꼼꼼히 생각해야 한다. 이처럼 제품에는 고려할 점이 무수히 많다. 그리고 그것이 페일이나 블렌칸 같은 해결사들이 아크테릭스에 있는 이유다.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를 믿는다.
블렌칸의 아이디어에 사람들은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정말 그의 아이디어를 이해한 경우는 많지 않다. 그가 가진 지식을 따라올 사람도 흔치 않다. 대신 머리로는 힘들지만, 몸으로는 느낄 수 있다. 블렌칸이 만든 샘플 재킷을 입어보는 순간, 마치 궁극의 성배를 잡은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궁극의 미니멀리즘 디자인, 실제 산속에서 수일 동안 테스트 되고 증명된 최고의 품질이 그 안에 담겨 있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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