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이야기 | 고어텍스 ①
소재이야기 | 고어텍스 ①
  • 서승범 기자 | 사진 김해진 기자, 고어코리아
  • 승인 2014.07.14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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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태어난 ‘제2의 피부’

MATERIAL GORE-TEX®
아웃도어는 첨단 기술의 경연장이다. 오래 전, 에드먼드 힐러리는 첨단 장비 없이도 사가르마타(Sagarmatha, 에베레스트)에 올랐고 헨리 데이빗 소로는 월든에서 2년을 보냈다. 지금, 사람들은 삼각산과 청계산을 오르면서도 고어텍스 재킷을 입는다. 아웃도어 시장의 거품을 이야기할 때 늘 언급되는 게 값비싼 기능성 재킷이고, 주 타깃은 고어텍스다. 고어텍스는 물은 스며들지 않고 바람은 막아주며 수증기는 통과시키는 합성수지 기반의 소재다. 줄여서 방수방풍투습이라 한다.

고어텍스는 미국에 본사를 둔 섬유회사 고어(Gore)가 만드는 소재의 브랜드 이름이다. 방수방풍투습이 되는 기능성 원단의 종류는 고어텍스 말고도 많지만 이러한 소재 중 최초로 개발된 고어텍스는 기능성 원단의 대명사 혹은 상징처럼 받아들여진다. 캠핑이 아웃도어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거라면, ‘의’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고어텍스 역시 캠핑의 중요한 소재다. 고어텍스는 값이 비싸기 때문에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하지만 재킷을 살 때 누구나 그 앞에서 고민하게 만드는 첨단 소재다. 고어텍스는 어떤 소재이고, 우리의 아웃도어 씬에서 얼마나 필요한 것일까?

GORE-TEX® WHAT

우연히 태어난 ‘제2의 피부’
고어텍스는 방수방풍투습 기능을 가진 소재다. 아웃도어 장비점에서 재킷을 골라본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물은 스며들지 않고 습기만 빠져나가게 하는 원리는 간단하다. 물 입자보다는 작고 수증기 입자보다는 굵은 구멍을 만들면 된다. 체로 굵은 자갈을 걸러내고 고운 모래만 친다고 하면, 굵은 자갈은 물, 고운 모래는 수증기, 체는 고어텍스다.

고어텍스의 핵심기술인 멤브레인은 합성수지다. 합성수지에 열을 가해 늘리면서 생긴 구멍의 크기가 물 입자보다 가늘고 수증기 입자보다 크단 얘기다. 고어텍스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보자. 고어텍스의 ‘고어(Gore)'는 창립자의 이름 윌버트 리 고어(Wilbert Lee Gore)에서 가져왔다.

그는 테프론 코팅으로 유명한 듀폰사의 화학 엔지니어였다. 회사에서 취급하던 합성수지인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이하 PTFE, Polytetra-Fluoroe thylene)을 연구하다가 어떤 가능성을 보았는지 고어는 집 지하실에 자그마한 공장을 만들어 PTFE를 취급하는 회사를 창업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 고어라고 이름지었다. 이후 그는 PTFE로 전선 피복을 만들었고, 이후 약 10년 동안 고어는 전선 피복을 만드는 회사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가 아는 고어텍스 형태의 멤브레인이 만들어진 건 1969년이었다. 윌버트 고어의 장남 밥 고어(Bob Gore)는 PTFE를 압출하고 성형하는 과정에서 원하는 성과를 얻어내지 못하고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다 가열된 합성수지를 늘리면서 강도는 기존의 강도를 유지하면서 길이는 열 배 정도 늘어나는 경험을 했다. 더 중요한 건 미세한 구멍이 무수히 많이 발생한다는 점이었다. 그는 특정 조건에서 늘어난 PTFE를 e-PTFE(expanded PTFE)라고 이름 지었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소재가 그렇게 탄생했다. 그로부터 약 10년 동안 e-PTFE를 생산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했고, 1976년 처음 고어텍스라는 이름으로 상용화할 수 있었다.

고어텍스 기술의 핵심이나 다름없는 미세한 구멍, 도대체 크기가 어느 정도나 될까? 고어코리아의 자료에 따르면 1인치×1인치(2.54cm×2.54cm≒6.45㎠)에 90억 개 이상의 구멍이 있다. 구멍 하나의 크기는 물방울 입자 크기의 2만 분의 1이고 수증기 분자 크기의 700배에 달한다. 때문에 비나 눈은 고어텍스를 통과하지 못하고 몸에서 난 땀은 수증기의 형태로 옷 밖으로 배출되어 몸 상태를 쾌적하게 유지할 수 있다.

오해는 말자. 고어텍스가 땀을 수증기로 배출하는 기능이 있다고 해도 맑은 가을 날씨에 느낄 수 있는 보송보송함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땀이 많은 사람은 고어텍스 프로가 아니라 ‘고어텍스 할애비’를 입어도 땀이 안으로 찬다. 그래서 산행할 때 복장 착용의 진리는 ‘고어텍스를 꼭 입어라’가 아니라 ‘덥기 전에 벗고 춥기 전에 입어라’다. 다만 비바람이 몰아치는 악천후에서 트레킹을 하거나 트레일 러닝처럼 오랜 시간 격한 몸놀림을 계속 해야 한다면 고어텍스 의류를 ‘반드시’ 입으라고 할 수밖에 없다.

우연히 태어나 이제는 ‘제2의 피부’라 불리며 적잖은 오해와 편견에서 수많은 아웃도어 전문가들에게 버팀목이 되고 있는 고어텍스. 없으면 아니 되는 필수품은 아니다. 힐러리는 고어텍스 재킷 없이도 최고봉을 올랐고, 소로우는 이슬을 맞으면서도 월든 호수에서 걸작의 사유를 완성했다. 당연하게도, 고어텍스는 선택의 문제다. 다만 닥치고 사거나, 닥치고 쓸데없다고 욕하기보다 정확한 원리와 적당한 용도를 알고 난 후에 선택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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