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길에서 만나는 작은 행복
거친 길에서 만나는 작은 행복
  • 김진영 기자
  • 승인 2011.04.04 11: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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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 5일장이 열리는 투르미 시장
에티오피아는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아프리카 나라 중 하나다. 방송매체 등에서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나라. 하지만 아프리카를 여행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 그리고 보통 방송에서 보이는 아프리카의 모습은 원주민들과 초원에 있는 수많은 동물들일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이런 곳을 여행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생각은 아프리카에 도착하면 바로 바뀌게 된다. 이곳도 다 사람 사는 곳이다. 예를 들어 에티오피아의 수도인 아디스아바바만 가 봐도 우리나라 중소 도시만큼 화려한 시내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남부 에티오피아를 가게 될 경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아프리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그곳에서 초가집을 짓고 사는 원주민들. 아프리카라고 여행하기가 더 어려울까? 아니다, 단지 조금 더 불편할 뿐이다.

▲ 케냐 나이로비에서 모얄레로 가는 길에 이용한 버스
화물트럭 타고 투르미로 이동 
케냐에서 에티오피아로 육로 이동을 했다. 이 구간이 아프리카 종단 코스에서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가장 고생스러운 길로 소문난 곳이다. 케냐 수도인 나이로비에서 케냐와 에티오피아 국경 마을인 모얄레(Moyale)까지는 버스로 27시간이 걸렸다. 이중 20시간 이상이 비포장 도로이고, 버스 의자는 90도 직각에 배열도 2×3으로 무척 좁다. 끝없이 먼지와의 사투가 벌어진다. 당장이라도 고장 날 것 같은 이 버스를 타고 국경 마을에 도착하면 시골 냄새가 풍긴다. 나이로비의 정신없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에티오피아는 국경 비자가 안 돼서 나이로비에서 미리 비자를 받아놓았다. 간단한 출입국 심사를 마치고 바로 에티오피아로 넘어올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 쪽 모얄레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잡고 며칠간 지내기로 했다. 이곳에 오니 아프리카 느낌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방안에는 침대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단, 양동이 하나와 촛불이 보인다. 그렇다. 전기는 수시로 끊기고 샤워기 대신 양동이에 물 받아서 바가지로 퍼서 샤워를 해야 한다.

▲ 케냐 나이로비에서 모얄레로 가는 길
모얄레는 작은 도시이다. 길게 뻗은 2차선 아스팔트길을 가운데에 두고 양옆으로 여러 개의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어느 마을에 들어가 보았다. 황토빛으로 물든 곳에 넓은 초원이 보인다. 그리고 그 위엔 지붕을 비닐로 덮어서 만든 초가집들이 지어져 있었다. 이 부근의 마을은 모두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외국인이 작은 마을을 돌아다니자 모든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인사를 100번도 넘게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내 뒤엔 계속 아이들이 따라다닌다. 외국인을 볼 기회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동네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느낌이 무척 호의적이고 신기해하는 듯했다.

모얄레에서 어느 정도 에티오피아에 적응한 뒤 본격적으로 남부 에티오피아를 여행하기 시작했다. 모얄레를 떠나 남부 에티오피아의 거점이 되는 도시인 콘소(Conso)로 향했다. 이곳에 온 이유는 바로 투르미(Turmi)라고 하는 하메르족 원주민이 사는 마을을 가기 위해서다. 콘소까지는 대중교통이 있어서 그리 어려움이 없지만, 문제는 콘소에서 투르미까지 가는 길이다. 이유는 대중교통이 없어서다. 그래서 큰 도시인 콘소에서 투르미까지 물자를 나르는 화물트럭을 타고 가는 방법밖에 없다. 보통 화물차의 화물칸에 타고 가게 된다. 나와 반대로 투르미에서 콘소로 왔다는 일본 여행자의 정보를 듣고 투르미로 가는 화물트럭을 알아보기로 했다.

▲ 캠핑카가 강물에 잠긴 도로를 건너고 있다

강물 넘쳐 길에서 하룻밤 보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배낭을 메고 일단 길거리로 나선다. 역시나 메인 도로는 하나다. 이곳에서 지나가는 화물트럭을 잡고 행선지를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몇 시간을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화물차는 간혹 지나가는데 투르미행 화물차는 한 대도 안 지나간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차를 기다리고 있자니 기운이 빠진다. 그때다. 누군가 내게 손짓을 하며 달려온다. 바로 게스트 하우스 직원이었다. 자기네 식당에 투르미로 가는 운전기사가 있다고 한다. 바로 달려가서 가격을 협상하기 시작한다. 보통 이들이 두 배에서 세 배가 넘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지만, 적정선에서 협상이 가능하다. 조금 비싸게 준다는 느낌이 있더라도 타야 한다. 이 투르미로 가는 트럭이 언제 또 있을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다른 여행자들에게 듣고 나서 알았지만, 화물차가 없어서 며칠 동안 기다리고도 투르미로 못간 여행자들도 만났었다. 그렇다 보니 사실 내게 선택권이 없다. 가격 협상을 잘 하는 수밖에. 잠깐의 실랑이 끝에 적정 가격에 합의하고 트럭에 탈 수 있었다. 나만 타고 가는 줄 알았더니, 현지인들도 6~7명가량 올라탄다. 이들에겐 이 화물트럭이 버스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 케냐와 에티오피아 국경 마을 모얄레
화물칸에 가득 실은 짐 위에 자리를 잡았다. 꼬불꼬불 거리는 산길에, 화물칸 짐 위에 앉아서 가려니 처음엔 꽤나 불안했다. 하지만 이 불안감도 잠시였다. 어느새 화물칸에 탄 사람들끼리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자기네들끼리 숨넘어가게 웃으며 좋아한다. 같이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화물칸이 편해진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 기쁨도 잠시, 산길을 달리고 있는데 비가 내린다. 비가 금방 그칠 줄 알았는데 이 비를 무려 6시간 동안 맞았다. 그리고 4시간을 더 달려서 투르미 근처까지 왔다. 총 10시간을 화물칸의 짐 위에서 비를 맞으며 추위와 싸워야 했다. 이 고생을 하고도 이날 투르미로 갈 수가 없었다. 낮에 내린 비 때문에 강물이 넘쳐서 도로가 막혔다. 불과 투르미를 5km 남겨두고 일어난 상황이었다.

운전사에게 물었다. “우리 어떻게 되는 거야?” “그냥 여기서 하루 자야될 거 같아. 내일 물 빠지면 출발할 거야.” “여기? 어디서 자?” “그냥 이렇게”라고 하면서 돗자리를 편다. 우리가 멈춰선 곳은 불빛 하나 없는 초원지대였다. 그냥 이렇게 길바닥에서 하루 자고 내일 출발 한단다. 다행히 가지고 있던 텐트 덕에 난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온몸이 젖은 상태로 잠을 이루기는 쉽지 않았다. 배낭까지 비로 다 젖어서 갈아입을 옷도 없었다. 속옷까지 다 젖은 상태로 추워서 옷도 못 벗고, 씻지도 못하고 텐트에서 새우잠을 잤다. 내 생애 가장 찝찝한 잠자리였다. 그래도 피곤한지 잠은 잘 왔다.

하지만 그 찝찝함 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배고픔이었다. 근데 어디선가 고기 냄새가 난다. 그리고는 왠 백인 친구가 내게 다가온다. 손에 커다란 염소 다리를 하나 들고. 이게 뭐냐고 물으니, 자기들 저녁식사 때 먹고 남은 것이라고 한다. 우리말고도 이미 많은 트럭들이 이곳에서 멈춰서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이들이 다 같이 돈을 보태서 지나가던 목동에게 염소 한 마리를 산 뒤 직접 모닥불에 구워서 식사를 해결했단다. 이 염소다리 하나로 긴 하루 동안의 배고픔을 달랠 수 있었다.

 

▲ 아래 왼쪽 5일장이 열리는 투르미 시장

5일장이 열리는 투르미
아침에 일어나니 벌써 시끄럽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가보니 맞은편의 지프들이 4륜구동의 힘으로 하나둘씩 넘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 쪽의 차들은 넘어갈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대부분 1톤 이상의 화물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어제의 백인이 또 내게 다가온다. 이들은 스위스 커플로 캠핑카로 여행 중이었다. 이 친구가 캠핑카로 강물을 넘어가 보겠다고 한다. 검은 연기를 뿜으며 아슬아슬하게 통과했다.

이 커플 덕에 캠핑카를 타고 투르미까지 남은 구간인 20분 정도는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아침식사를 같이 하며 서로의 여행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들은 직접 자기들이 캠핑카를 제작했다며 제작 과정의 사진을 보여준다. 캠핑카를 구경해보니 정말 훌륭하다. 침실과 주방이 거의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이렇게 캠핑카나 지프로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것도 혼자 하는 배낭여행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 오른쪽 하메르족의 아이
에티오피아에서 내가 가장 좋았던 곳은 이렇게 고생해서 온 투르미였다. 왜냐하면 투르미에 오니 내가 생각했던 아프리카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 위에 듬성듬성 보이는 초가집들 그리고 원주민들. 이 모든 것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 동네의 이런 분위기만으로도 이곳에 온 보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하나 더 남아있었다. 바로 우리나라 5일장처럼 이곳에도 일주일에 한 번씩 시장이 열린다고 한다. 이 시장을 보기위해서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이 투르미 시장에 들어서자 내 눈을 의심하게 되었다. 시장에는 일반적인 복장의 사람들보다 이곳 원주민 중 하나인 하메르족이 대부분이었다. 남자들은 화려한 액세서리로 치장하고 치마를 입고 있었고, 여자들은 대부분 머리에 진흙을 바르고 한껏 멋을 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것저것 시장에서 볼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사고팔고 있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원주민밖에 안 보인다. 가끔 지프를 끌고 단체로 온 서양인들이 보일 뿐이었다. 이렇게 내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장면이 내 눈앞에 보이니 여행하는 맛이 난다. 그리고 나름대로 고생해서 온 보람도 느낀다.

 

▲ 투르미에서 진카로 가는 길
     
 

무르시족이 사는 진카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투르미 시장에서의 설렘이 가시기도 전에 진카(Jinka)라는 도시로 이동을 하게 된다. 투르미에 올 때 로리(화물트럭)를 타고 왔으니 나갈 때도 로리를 타고 나가야 한다. 다행히 이번엔 화물칸이 비어있는 로리를 탈 수 있었다. 계속 서서 가야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화물이 없다보니 속력도 잘 나고 훨씬 여유로운 마음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여행자들이 진카를 찾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흔히들 접시부족으로 알고 있는 무르시족이 사는 마을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지 않고 개인 배낭여행자가 가기는 쉽지 않은 곳이다. 그만큼 이미 상업적으로 너무 많이 변질되었다고 한다.

진카에서 열리는 시장에서 간혹 무르시족을 볼 수 있어 그걸로 만족하기로 하고 진카의 인근 마을인 케이아파르(Key Afer)라는 곳을 다녀왔다. 그곳에서도 투르미 시장과 비슷한 시장이 열린다. 역시 많은 원주민들을 길거리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 케이아파르 역시 주변 마을의 원주민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다 같이 모여서 물건을 사고파는 장이 열리는 것이다. 막상 여행자가 혼자서 원주민이 사는 마을로 들어가기는 쉽지 않다. 일단 외국인을 경계하고 말도 통하지 않아 어떤 위험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에 가게 되면 주변 마을의 원주민들을 한곳에서 다 만나볼 수 있다. 이렇기에 투르미와 케이아파르가 에티오피아 여행 중 내게 가장 강한 인상을 주었다.

▲ 진카의 인근 마을인 케이아파르
이렇게 남부지방을 여행한 뒤 이제 북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에티오피아의 수도인 아디스아바바. 그동안 남부 에티오피아를 여행하고 온 나는 정말 에티오피아의 극과 극을 체험해본 느낌이었다. 남부지방이 초원의 초가집과 원주민의 모습이었다면, 수도인 아디스아바바는 우리나라 중소도시만큼 발전되어 있었다. 남부지방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서양 브랜드의 패스트푸드점과 고층 빌딩들도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밤에는 화려한 조명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고, 값 비싼 명품들을 진열해 놓은 상점들로 살짝 기가 죽을 정도였다. 에티오피아, 이 나라를 여행하면서 몇 세기 간의 시간이 공존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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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ly 2011-10-29 05:26:53
No complaints on this end, simlpy a good pie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