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피마다 박힌 ‘우승’이라는 두 글자. 자전거 하나로 한국을 넘어 전 세계를 제패한 이형모 코치의 아지트엔 그의 열정이 담긴 트로피 수십 개가 있었다. 대한민국 아마추어 자전거 라이더 중 최강이라는 이형모 코치를 만나 자전거의 모든 것을 들었다.
서울 도봉구에 있는 SRS 스튜디오로 들어서자 수줍은 미소를 띤 이형모 코치가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눈인사를 나눈 뒤 SRS 스튜디오를 둘러봤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자전거, 트라이애슬론, 클라이밍 트로피. 휘황찬란한 겉모습처럼 전부 우승 또는 1등이라는 단어가 박혀 있었다. 또 다른 벽면엔 히말라야 등반 사진과 대회 우승 사진이 쭉 걸려 있다.
그의 경력을 따지자면 입만 아프다. 2010년부터 현재까지 수십 개 대회에서 아웃도어계 최강자로 손꼽히니까. 꼭 하나를 꼽자면, 2011년 가장 힘든 라이딩 대회로 악명 높은 미 대륙 횡단 레이스 RAAM에서 50세 이하 그룹 2인 팀으로 출전해 8일간 4810km를 달려 우승을 거머쥐었다. 2014년에는 같은 대회 솔로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완주했다. 작고 마른 체구의 수줍은 표정을 지닌 한 남자의 경력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강원도 원주 산골 마을에서 태어난 이 코치는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매일 동네 뒷산을 오르내리고 자전거로 학교에 다니던 활발한 어린이는 관동대 사회체육학과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산악 활동에 빠져들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故 박영석 산악 대장을 따라 히말라야와 베링해협 등반에 성공했다. 산에서 사람을 만나고 자연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던 이 코치였지만 해외 원정을 거듭할수록 절친한 동료들을 잃어갔다. 산이라는 공감대로 오랫동안 동고동락했던 친구들을 영원히 산에 남겨두고 올 때마다 그의 슬픔은 짙어졌다. 이 코치는 2009년 에베레스트 남서벽 코리안 루트 개척을 마지막으로 산에서 내려왔다.
그의 텅 빈 마음을 채워준 건 자전거였다. 자전거로 이곳저곳 여행하면서 자전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일반인으로의 삶을 선택한 이 코치는 사회체육과 출신 이력을 살려 사회체육지도사 자전거 부문 자격증을 획득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잡고 본격적으로 자전거 공부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의 자전거 대회 메달 행진이 이어졌다.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강한 심폐 지구력과 끈기는 그를 단번에 아마추어 자전거계 최강자로 만들었다.
세계 곳곳을 종횡무진하며 메달을 획득하던 이 코치는 스포츠 기어 유통 회사 RPM 스포츠 영업 사원으로 생업을 이었다. 이후 ‘땡모가 간다’라는 타이틀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전거 교육을 진행했다. 2019년 퇴사 후 RPM스포츠에서 운영하던 SRS 스튜디오를 인수하고 자전거 학교인 ‘느리게 걷는 자전거 교실’을 오픈한다. 그동안 수많은 자전거 매장을 돌아다녔지만 대부분 “안전하게 열심히 타면 실력이 늡니다”라는 말을 할 뿐 무엇이 안전하고 좋은 습관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안전하게 자전거 타는 법을 제대로 알려주는 학원이 전무했다.
느리게 걷는 자전거 교실은 출발하고 내리기, 코너링, 평롤러 등 실용적인 훈련뿐만 아니라 자전거와 자동차, 자전거와 보행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법 등 안전한 라이딩을 위한 모든 것을 알려준다. 남들보다 빨리 달리기보다 남들과 함께 달리는 방법을 가르치는 이형모 코치. 그의 가르침은 초보 자전거 라이더의 바이블이 됐다.
“코로나19 후로 자전거 인구가 2배 정도 늘어난 거 같아요. 그만큼 사고도 비일비재하죠. 예전엔 자전거가 단순히 이동 수단이었지만 지금은 운동과 건강 그리고 행복이라는 목적으로 존재합니다. 로드바이크, MTB, 전기 자전거, 생활용 자전거 등 자전거 종류도 다양하며 그에 따라 안전 지침과 훈련법이 다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인식은 과거의 이동 수단용 자전거에 멈춰 있어요. 자전거를 배워서 타기보다 타다 보면 저절로 실력이 늘어난다고 말이죠. 그 이야기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조금 더 안전하고 즐겁게 자전거를 타기 위해서는 올바른 주행법을 배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