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찾는 길 Ⅰ…여신이 지키는 산
바람이 찾는 길 Ⅰ…여신이 지키는 산
  • 이지혜 기자
  • 승인 2016.10.11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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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히바도고타이샤쿠국정공원(比婆道後帝釋國定公園) 히바야마(比婆山) 트레킹

지난 달, 돗토리현과 시마네현을 소개했다. 다양한 액티비티와 볼 것, 먹을 것, 놀것이 있었다. 놀라운 건 이 모든 걸 이틀 반 만에 해냈단 거다. 이 말은 즉, 아직 삼일 반이 더 남았단 뜻이다. 히로시마현과 에히메현에서다. 푸릇푸릇한 숲을 서서히 벗어나 비릿한 짠내 풍기는 섬으로 이동했다. 길과 풍경, 바람과 음식이 모두 변해갔지만 사람만은, 웃음만은 그대로다.

인류사상 최초로 원폭이 투하된 도시 히로시마현. 시마네현과 맞닿아있는 히로시마 동북부에는 피폭을 피하고 풍파를 견디며 천 년을 살아온 삼나무들이 있다. 히로시마현에서 네 번째로 높다는, 해발 1,264m 히바야마의 품 안이다.

아름다운 삼나무의 세월을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히바야마는 아주마야마(吾妻山), 센쓰산([船通山), 도고산(道後山), 타이샤쿠쿄(帝釋峽)와 함께 히바도고타이샤쿠국정공원(比婆道後帝釋國定公園)을 이루는 산이다. 히바야마 연봉은 1,100m~1,200대 봉우리가 7개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과 울창한 숲을 감싸 안고 있다.

히바야마 정상에는 일본 건국신화 속 여신, 이자나미(伊邪那美)가 묻혀있다는 전설이 있다. 일본의 <고서기(高書記)>등에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론, 이자나미는 남편인 이자나기(伊邪那岐) 사이에 많은 신을 낳아 일본 땅을 이뤘지만, 불의 신 가쿠즈치(軻遇突智)를 낳다 화상을 입어 저승으로 갔다. 슬픔에 빠진 남신 이자나기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 직접 저승으로 내려갔다가 추해진 이자나미의 모습에 놀라 도망쳤다. 이후, 이자나미는 저승 땅을 관장하는 신으로 모셔져 히바야마의 꼭대기에 누워있다.

산릉선의 남쪽은 히로시마현, 북쪽은 시마네현을 걸친 히바야마 산행은 대부분 쇼바라시(庄原市)의 켄민노모리(縣民の森) 공원센터를 기점으로 한다. 시작과 끝이 이곳에서 이뤄지며 매년 13만 명 넘는 한국, 일본인 등산객이 찾는 산행지다. 우리가 방문한 날 역시 한국인 등산객이 와있는지, 센터의 입구엔 한국어로 ‘환영합니다’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INFORMATION
겐민노모리 (?民の森) 공원센터
주소 히로시마현 쇼바라시 사이죠초유키 156-14
문의 www.kenmori.jp
(TEL +81-824-84-2011)

공원센터는 가을이면 단풍이 아름다운 길로 꼽히고, 겨울이면 사람키를 훌쩍 넘는 눈이 내리는 히바야마를 지키는 베이스캠프다. 주릉에 둘러싸여 아늑한 분위기를 뿜어낸다. 원점회귀 산행 기점에 자리해 당일 산행 후 휴식을 취할 모든 것이 준비돼있다.

공원센터를 한가운데 두고 전망대~다테에보시야마~이케노단~히바야마~에보시야마~이즈모토케~케나시야마~이라다니야마~우시비카야마가 반원을 그리며 이어져 있다. 수많은 코스가 있는데, 이 중 대부분 코스가 10km 내외로 갖춰져 있어 5~6시간 안에 산행을 마칠 수 있는 하루일정으로 적합하다.

일본의 등산잡지인 <야마토게이코구(山と溪谷)>가 뽑은 ‘가장 아름다운 100대 능선’에 뽑힌 다테에보시야마(立鳥帽子山) 능선을 비롯해 파도처럼 일렁이는 능선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켄민노모리 공원센터에서 차로 약 20분 떨어져 있는 쿠바노신사는 아름다운 삼나무의 세월을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시간이나 체력의 이유로 히바야마 산행이 힘들다 하더라도, 이곳만큼은 꼭 들러보길 바란다.

쿠마노 신사는 일본 건국신화 속 여신을 모신 곳으로 713년 창건했다. 어른 네 명이 달라붙어야 둘레가 겨우 가늠되는 천 년짜리 삼나무들이 모여 있다. 이곳엔 히로시마에서 꼽는 거목 50그루 중 45그루가 모여있는 숲이다. 히로시마현의 천연기념물로도 지정됐다.

삼나무는 일본 건축재로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다. 보통 나이 많고 덩치 큰 나무는 속이 텅 비는데 그에 비해 삼나무는 세월이 지날수록 속이 단단하게 채워지기 때문이다. 쿠바노 신사의 세 사당이 낡아 고쳐야 할 때 인근에 작은 삼나무를 심은 후 그 나무를 이용한다.

삼나무는 세월이 지날수록 속이 단단하게 채워진다.

오전 내내 추적추적 내렸던 비가 그치고 삼나무 숲으로 들어가니 해가 비친다. 아름드리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조명처럼 반짝인다. 물기 머금은 풀들이 신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무대처럼 아름답다.

삼나무 무성한 이곳을 느리게 오르다 보면 세 개의 신사를 차례로 만날 수 있다. 동행한 일본인들은 신사를 만나는 내내 처음처럼 정성스럽게 절을 했다. 꼿꼿한 허리를 반듯하게 굽히고 맑은 손뼉을 치며 신을 깨웠다. 부지런히도 소원을 빌고 안녕을 기원했다. 이곳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얼굴이 흉해 남편이 도망간 저승의 여신은 이 산 어딘가에 묻혀있다. 천 년을 베어지지 않고 살아남은 삼나무들을 품은 채. 전설과 시간은 사람에 의해 보존돼 가고, 믿음에 의해 더욱 단단해진다. 마치 삼나무 속처럼 말이다.

INFORMATION
자연이 주는 소풍

오기다니 오토캠프장(大鬼谷オ-トキャンプ場)
히로시마현에서 가장 큰 오기다니 캠핑장은 풍부한 낙엽수림에 둘러싸인 캠프장이다. 사계절 내내 쾌적하게 보낼 수 있는 자연의 놀이터다. 여름엔 차가운 개울이 흘러 아이들이 물놀이하기 좋고 겨울엔 쌓인 눈을 바라보며 캠프장 내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서바이벌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트리 어드벤처와 산악자전거 코스 등이 마련돼 있다. 통나무집, 별장, 자작나무 숲속과 잔디 사이트 등 총 115개의 사이트가 있으며 전기와 재래식 부엌, 샤워시설까지 모두 준비돼있다.
주소 히로시마현 쇼바라시 타카노초 미나미 257
문의 www.ogidani.co.jp (TEL +81-824-86-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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