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퀴로 동해안 종주 PartⅢ.
두 바퀴로 동해안 종주 PartⅢ.
  • 오대진 기자|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6.08.0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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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군청~포항 호미곶 182km

야속하게도 언덕은 계속된다. 도무지 끝을 보일 생각을 않는다. 그럼에도 왜 이리 끌리는지. 가슴을 뻥 뚫어주는 풍광이, 시원한 바닷바람이 기다리고 있겠지. 섣부른 기대가 때로 아픔을 주기도 하지만 동해안은 아니었다. 자전거여행이 주는 감동만 놓고 보면, 이 녀석 물건이다. 동해안 종주 세 번째 이야기다.

관동제일루 망양정
강원도를 내달린 끝에 지난 PartⅡ.에서 경상북도로 진입했다. 시작은 울진군청. 경북 구간부터는 동해안종주길이 아직 개통 전이다. 그래서 그런지 군데군데 자전거길이 끊겨 있다. 울진군청 부근에서 표지판이 없어 길을 잃었다. 멀리 7번 국도까지 올라갔지만 그곳에도 길이 없어 다시 내려왔다. 알고 보니 진행 방향 도로 위 자전거길 페인트가 흐릿하게 지워져 있었다. 힘이 쭉 빠졌지만 ‘완공 전이니, 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남대천변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나오는 울진친환경 농업엑스포공원, 널따란 부지에 아쿠아리움과 식물관, 각종 체험장, 산책로 등이 잘 꾸며져 있어 주말 가족 나들이에 좋아 보였다. 왕피천대교를 건너면 잘 정돈된 데크 자전거길이 망양정해변까지 나 있다. 가로수길 라이딩,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달리니 찌는 듯한 더위가 좀 가신다. 망양정(望洋亭)에 왔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관동팔경 가운데 으뜸이라 하여 조선 숙종이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현판까지 하사했다고 한다. 올라가 봤다. 푸른 하늘과 동해바다가 끝없이 맞닿아 있다. 이름 그대로다. 바다를 전망하기에 이토록 좋은 정자가 또 있을까. 먼저 올라온 어르신은 명당자리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중. 잠시 정자에 앉아 흐르는 땀을 식히니 얼얼할 정도로 시원한 바닷바람이 금세 온몸을 감싼다. 마루에 누워 긴장감 넘치는 추리소설 한 편 읽으면 딱 좋겠다 싶다. 저 어르신처럼.

▲ 관동팔경 중 가장 좋은 풍광을 자랑하는 망양정.

울진 대게, 고래불해변

해안선을 따라 약 10km 내려가면 작은 항구인 오산항이 나온다. 강원도 항구들과 마찬가지로 물이 아주 맑다. 물결에 따라 이리저리 뛰노는 치어들의 모습까지 또렷하게 보인다. 조금 더 달리기 시작하니 배가 고파온다. 점심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범인은 큼지막한 울진 대게 조형물. 각기 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는 대게들이 ‘<백년손님> 봤지? 맛은 보장이야’라며 손짓한다.

▲ 울진의 자랑인 대게 조형물. 갑자기 배가 고프다.

▲ 오산항. 물결에 따라 이리저리 뛰노는 치어들의 모습까지 또렷하게 보인다.

▲ 업힐, 당장이라도 뒤로 보이는 시원한 바다에 뛰어들고 싶다.
어김없이 또 찾아왔다. 이건 뭐 업힐 정도가 아니다. 신나게 달리다 갑자기 마주한 언덕은 절벽 수준이다. 자전거인의 자존심을 지키려 했지만 결국 ‘항복’ , 끌바 돌입. 인상은 절로 구겨지고, 당장이라도 뒤로 보이는 시원한 바다에 뛰어들고 싶다. 이런 기분을 몰라준다. 길가에 예쁘장하게 핀 꽃들은 연신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며 응원하기 바쁘다.

망양해변-구산해변-후포해변을 거치면 첫 날 목적지 고래불해변이다. 울진군청에서는 58km 거리. 대진해수욕장과 이웃한 해수욕장으로 울창한 송림에 에워싸여 있고, 해변 길이는 8km에 이른다. 고래불이라는 이름은 고래가 보인다는 뜻인 ‘경정(鯨汀)’의 순 우리말 명칭이다. 해수욕장 내 야영장 이용은 소형(2인 이하, 1만 원)-중형(3~6인, 2만 원)-대형(7~10인, 3만 원) 텐트 모두 이용할 수 있고, 화장실과 샤워장도 사용 가능하다(샤워장은 여름 성수기에만 운영한다).

새벽녘 일출, 이번 출장 중 최고였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서서히 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찬란한 태양은 동해 푸른 바닷물 위로 오렌지 카펫을 수평선까지 길게 깔았다. 밤새 철썩이던 파도소리 역시 아직 귓가에 맴돌며 한껏 분위기를 더한다. 사진기자도 마찬가지. 뒤에도 나오지만(에필로그 사진의 주인공은 사진기자) 두 눈만 호강하는 게 아쉬웠는지 연신 본 풍광을 프레임 안에 넣으려고 애를 쓴다. 이 정도면? 100% 만족이다.

▲ 꽃들이 라이더의 마음을 몰라준다. 연신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흔들.

▲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한다.

▲ 고래불해변의 일출. 동해 푸른 바닷물 위로 오렌지 카펫이 길게 깔렸다.

일상으로의 초대

시간이 흐를수록 좋아진다. 날씨도, 라이딩 컨디션도. 기분이 업 되니 일도 더 재밌어진다. 그리고 분명히 낯선 풍경이지만 익숙한(?) 표지판에 즐거움은 배가 됐다. “대진아, ‘대진항’이다.” 오대산, 대진대, 대진침대 등 어릴 적 다양한 별명으로 놀림 받았지만 생각해보니 대진항은 없었지 아마? “어! 선배 잠시만요. 멋진 그림 될 것 같아요.” 항구를 감싸 돌며 빠져나왔다가 다시 뒤로 돌아간다. 아버님, 어머님이 이른 아침부터 그물 손질에 여념이 없다. “아버님,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요?” “뭘, 찍어 이런 걸. … 이왕 찍는 거 그럼 잘 쫌 찍어도라.” “물론입니다. 하핫.” 네 사람의 입에서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 둘째 날도 힘차게 시작.

▲ 대진항. 이른 아침부터 그물 손질이 한창인 아버님 어머님.

대진항을 빠져나오니 풍광도 좋다. 지금껏 동해바다를 왼편에 끼고 나란히 달렸다면 이제부터는 저 멀리 발아래 두고 달린다. 파도에 흠씬 두들겨 맞고 있는 형형색색의 해식애가 볼만하다. 반대로 도로 양편으로 길게 늘어선 오징어들의 구경거리가 되기도 한다. 축산항에 들어서자마자 이색 볼거리가 또 발길을 이끈다. “장난 아닌데요?” “엄청 나네 진짜. 많이 잡으셨네.” 다들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 한 사람의 포스가 유별나다. 단번에 “선장님! 이게 뭐에요?” “처엉~어” “정어요?” “청~어! 과메기 맨드는 거~(씨익)” 선장님의 자신감 넘치는 미소는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촌놈아, 이런 건 처음보지?’

▲ 만선이요! 청어가 대형 트럭을 가득 채우다 못해 넘쳐 흘렀다.

▲ 도로 양편으로 길게 늘어선 오징어들. 누가 동물원 원숭이야?

▲ 이번 일정 중 최고였던 영덕 해맞이공원 구간.
영덕에서 포항까지

돼지국밥으로 아침을 든든히 먹고 또 출발. ‘아침밥 많이 먹었냐?’ ‘누구냐?’ ‘나다. 업힐이다.’ 강원도 구간이랑 다를 게 없다. 경북 구간도 언덕의 연속. 경정해변을 지나 오르막 내리막이 지겨울 즘, 역시 또 선물을 준다. 길게 늘어선 내리막 뒤로 동해바다와 기암절벽이, 그리고 더 멀리는 영덕해맞이공원이 보인다.

“메인 컷 나왔는데요?” “야~ 여기는 진짜 영화에서나 보던 풍광이다.” 그림 같은 노믈항까지 지나면 영덕 9경 중 하나인 영덕해맞이공원이다. 영덕 특산물인 대게 집게발이 등대를 휘감아 집어삼킬 듯한 모습의 창포말등대는 특이한 생김새에 어린이 관광객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각종 벽화들이 경쟁하듯 산뜻한 분위기를 뽐내는 대부리 해안가 마을을 지나 강구항에 도착. 울진에 왔으니 대게를 먹어봐야 하는데 그 중에서도 대게라면의 유혹이 매서웠다. 뚝딱 해치우고 전망 좋은 해변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 한 잔을 즐기며 휴식.

▲ 그림 같은 풍광의 노믈항.

강진항을 지나 남호해변으로 향하면 바닷가에 큰 구조물이 눈에 띈다. 바닥이 투명창으로 되어 있는 길이 233m의 해양산책로에 서니 마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듯하다.

화진해변-월포해변-칠포해변을 지나 약 40km를 달리면 포항영일만산업단지다. 해안도로를 따라 여유 있게 달리다 산업단지 내를 관통하니 느낌이 또 새롭다. 공장설비들과 시스템의 어마어마한 스케일에 압도된다. 물론 덤프트럭과 화물차, 공장이 뿜어내는 먼지와 흙가루들이 유쾌하진 않다. 포항대학교 사거리를 지나면 환호공원 해안도로를 시작으로 영일대 해수욕장, 포항구항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포스코를 관통해 포항공항까지 지나면 호미반도 초입, 신세계 시작이다.

▲ 영덕 해맞이공원 위로는 영덕 풍력발전단지가 있다.
▲ 영덕 특산물인 대게 집게발이 등대를 휘감아 집어삼킬 듯한 모습의 창포말등대.

▲ 영덕 해맞이공원.

“네 길이 아니야, 그가 선택한 그의 길이야”

목적지인 호미곶 해맞이광장까지는 불과 20km 남짓이다. 자전거 출장 중 가장 유쾌하고 알찬 일정을 소화함에 히죽히죽 콧노래까지 불러댔지만 여기까지였다. 해안선을 따라가던 자전거 코스가 이상하다. 해병대 군부대 안으로 들어가더니 오르지 않아도 될 오르막과 돌아가는 코스가 연이어 나온다. 그리고 슬슬 발동을 건다. 경사가 조금씩 심해진다. 해안도로가 등고선 서너 줄은 가볍게 왔다 갔다 하며 춤을 춘다. 한 시간이면 도착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예상시간 동안 고작 반 정도 오는 것에 그쳤다. 호미반도를 마주보는 영일만에는 어느덧 해가 지기 시작한다. 100km를 넘게 달려와 체력적으로 슬슬 지치기 시작 했고, 해가 뉘엿뉘엿 지며 찬바람까지 잦아지자 페이스가 금세 떨어졌다.

▲ 얼음장 같은 바닷물에 발도 한 번 담가보고.

▲ 전망 좋은 해변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 한 잔을 즐기며 휴식.

결국 올 것이 왔다. 한동안 자전거 타며 잊지 못할 이름 ‘한달비문재’를 머리에 아로새겼다. 7도로 시작한 1,400m 언덕, 경사도는 오를수록 높아졌고 연이어 나오는 굽은 길에 페이스 유지 같은 점잖 빼는 소리는 당치도 않았다. 이 꽉 물고 페달만 밟았다. 결국 끌바 없이 올랐지만 ‘씩, 씩’ 소리 외엔 아무소리도 못 낼 만큼 고됐다. “너도 독하다 독해, 그걸 올라 오냐.” “중간에 끌고 갈까 했는데 자존심 상하더라고요.” 자전거 즐기는 이들은 다 아는 그 자존심, 그놈 덕에 달콤한 성취감을 맛봤다.

대자연의 압도적인 스케일에 넋 놓고 봤던 영화 <포인트 브레이크> 속 주인공의 대사가 떠올랐다. “자연의 위대한 힘 앞에 서면 인간은 나약한 존재일 뿐이야.” “네 길이 아니야. 그가 선택한 그의 길이야.” 차로 아무생각 없이 1분 내외 오르면 그만인 이 언덕에 수많은 의미 부여를 하게 되고, 서로 맞서는 갖가지 상념들이 교차했다. 자연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그에 따른 만족감을 오롯이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이런 게 무동력 여행의 매력이지.

▲ 바닥이 투명창으로 되어 있는 해양산책로에 서니 마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듯하다.

▲ 영일만에 들어서서 휴식. 뒤에 보이는 반도가 호미반도, 왼쪽 끝부분이 호미곶이다.

▲ “중간에 끌고 갈까 했는데 자존심 상하더라고요.”
호미곶 해맞이광장의 일출

몇 시간처럼 느껴지던 오르막이 끝나고 마주한 내리막은 ‘순간’이었다. 호미숲 해맞이터의 불사조 석양을 뒤로 하고 해안도로를 달리니 저 멀리서 반갑게 손을 내민다. 호미곶 해맞이광장에 도착했다. 둘째 날 숙소는 그린오토캠핑장. 동해바다가 캠핑장 바로 앞에 펼쳐져 있고, 송림과 솔밭이 어우러진 조용한 곳이다. 짐을 풀고 텐트를 설치하니 해는 이미 진지 오래, 하늘은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약 2km 거리의 해맞이광장으로 다시 출발. 호미곶의 명물인 포차골목, 그중에서도 ‘월녀의 해물포차’에서 늦은 저녁을 맞는다. 가장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셨다는 이모님의 큰 손과 넉넉한 인심에 배가 땡땡해진다. 각종 해산물과 해물라면, 해물칼국수가 일품.

다음날 새벽, 다시 광장을 찾았다. 평일임에도 광장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인파는 계속 몰려들었다. 이내 수평선에 붉은 점이 찍혔고 광장은 환호로 가득 찼다. 나도 모르게 설렘이 찾아왔다. 마음속으로 작은 바람과 소망을 읊었다.
‘이 순간을 잊지 말자.’

▲ 호미숲 해맞이터 뒤로 불사조 모양의 석양이 날아들었다.

▲ 그린오토캠핑장. 송림과 솔밭이 어우러진 조용한 캠핑장이다.

▲ 호미곶 해맞이광장의 일출.

epilogue

자전거여행의 즐거움이 페달을 밟을수록 배가된다. 일상을 떠나 다른 이들의 일상에 초대되니 일상은 일상이기도, 그리고 여행이기도 했다.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여행은 생존투쟁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어디가 좋은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왜 가야 하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떠나기 전 상상과 기대의 즐거움, 이국적인 것의 매혹, 그리고 추억의 되새김질까지. 이런 것들을 사소하게 음미할 수 있음에 행복하다.
다음은 동해안종주의 마지막, 부산이다.

장비 지원 자이언트코리아, 아이엘인터내셔널, 블랙다이아몬드코리아, 제드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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