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퀴로 동해안 종주
두 바퀴로 동해안 종주
  • 오대진 기자|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6.06.1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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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Ⅰ. 고성 통일전망대~주문진 100km

지난해 4대강 국토종주를 마무리하며 다짐한 것이 있다. 국내 모든 자전거길 완주. 잘 정돈된 자전거길은 고행이 아닌 여행을 가능케 했고, 실로 다양한 볼거리 역시 만족감을 높였다. 그리곤 동해안 자전거길 강원도 구간 개통 소식을 듣고 자연스레 결정했다. 다음 종주는 동해안. 경북(273km)과 울산~부산(203km) 구간도 하루 빨리 열렸으면.

통일전망대를 뒤로 하고
시작은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 아쉬움이 있었다. 출입신고소가 위치한 통일안보공원에서 통일전망대까지는 차량통행만 가능하단다. 통일전망대 측에 사전 문의하니 “당초 출입 10일 이전에 10인 이상의 단체가 문의하면 군의 승인 후 걷기와 자전거 이용이 가능했다. 그런데 최근 남북관계가 경색돼 일시적으로 출입이 제한됐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무래도 통일전망대와는 인연이 아닌가보다. 고성까지 와서도 촉박한 일정에, 신분증이 없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올라보지 못한 기자는 이번에도 고배를 마셨다. 고성8경(통일전망대, 화진포, 건봉사, 송지호, 마산봉설경, 천학정, 울산바위, 청간정)을 모두 보고 싶었건만.

▲ 출발은 고성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

현지에 도착해 출입신고소 직원에 한 번 더 문의…, 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변함없었다. 여느 때와는 다르게 출발하며 웃지 못한 건 아마도 연일 로켓 날릴 생각만 하는 그 놈에 대한 분노일 터. 교차하는 여러 감정을 접어두고 동해안종주의 시작을 알리는 도장을 ‘꾸욱’ 눌러 찍었다. 북한과 맞닿아 있는 동해안 최북단이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도로는 한적했고, 마을은 차분했다. 철조망에 둘러싸인 해안가는 시원하다 못해 차갑고 서리기까지 했다. 기분 탓이겠지?

▲ 고성 통일전망대 인증센터에서 도장을 ‘꾸욱’.

▲ 마차진해수욕장. 바닷바람이 시원하다 못해 차갑다.

고성8경, 화진포-송지호

페달을 구르기 시작하니 금세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대진항과 초도해수욕장, 초도항을 거치니 눈앞에 금빛 모래사장이 펼쳐졌다. 화진포해수욕장.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물장구치고 해변 여기저기서 뛰논다. 빠질 수 없는 단체사진도 한 컷 ‘찰칵’. “좋을 때야.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사진기자와 담당기자는 아재 인증에 여념이 없다. 물론 아재들도 학생들만큼이나 화진포해변의 매력을 두 눈으로 담는다. ‘역시’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동해의 탁 트인 바다풍경과 금빛모래사장. 미안한 이야기지만 4대강 국토종주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감흥이다. 캠핑 짐을 가득 실은 자전거가 모래사장에 올라오니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한 장면도 떠오른다. 국내 최대 석호 화진포를 따라 남으로 남으로.

▲ 수학여행 온 아이들과 자전거 여행자.

화진포에서 약 7km 내려오니 거진항이, 다시 더 페달을 밟으니 가진항과 공현진항이 연달아 나타난다. 동해안자전거길, 자전거 여행자는 물론 도보 여행자에게도 먹을 걱정 하나는 없겠다. 물회와 회덮밥 등 싱싱한 해산물을 도처에서 맛볼 수 있다. 3km를 더 남하하면 송지호가 나온다. 화진포와 마찬가지로 석호. 쉼터 전망대와 약 5km 코스의 산소(O₂)길 등이 잘 정비되어 있어 트레킹 코스로도 인기다.

송지호 맞은편에는 깔끔한 시설을 자랑하는 송지호 오토캠핑장이 있는데 취재팀과 마찬가지로 자전거 캠핑을 즐긴다면 첫 날 고성으로의 이동, 그리고 약 30km 라이딩 후 송지호 오토캠핑장에서 묵는 코스도 추천한다. 새벽 같이 출발한 취재팀의 목적지는 약 100km를 달리면 도착하는 주문진야영장. 송지호를 빠져나와 송지호 해수욕장에 다다르자 사진기자가 담당기자를 설레게 한다. “지난해 카약 출장 때 왔었는데 죽도까지 3km 투어링, 경치랑 재미 모두 역대 급이었어. 올 여름에도 고고씽?!” , “카약! 카~약!” 정신 빠진 소리만 지르던 담당기자는 해변에 나가 시원한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 페달을 구르기 시작하니 금세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 바이시클 다이어리 인 동해.
동해안자전거길의 두 얼굴

봉수대-삼포-자작도 해수욕장을 거쳐 백도항에 도착. 작은 어선들만 옹기종기 정박해 있는 소박한 항구였지만 이번 코스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바닥이 보일 만큼 맑디맑은 바닷물에 감탄이 절로 인다. 백도 해수욕장을 거쳐 교암리 해수욕장에 다다르면 천학정. 깎아지른듯한 해안절벽 위 정자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유명하다.

운이 좋았다. 마침 천학정을 관리하는 어르신이 있다. 일행의 인사에 “어디서 왔냐”며 “사진 명당을 알려 주겠다”고 친절을 베푼다. 커다란 바위 정면에 세우시곤 “뭐가 보여요?”라고 물었고, 사진 기자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꺼비요!”를 외쳤다. 어르신은 “그렇게 빨리 맞추면 재미없지”라며 사진기자를 구박(?), 이어 사람 손, 고래, 코끼리얼굴을 한 바위들을 소개해 줬다.

정자에 앉아 시원한 바람에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한여름에도 3분을 못 앉아있어. 골바람이 올라와서 못 버텨.” 3분 30초 버티고 정자를 내려왔다.

▲ 화진포. 바다와 호수가 만나는 이채로운 모습.

▲ 송지호는 산소(O₂)길 등이 잘 정비되어 있어 트레킹 코스로도 인기다.

▲ 송지호해수욕장. 죽도까지의 약 3km 코스는 카약 투어링에 최적이다.

아야진항을 지나면 또 다른 해돋이 명소인 청간정이 나온다. 얼굴이 붉어졌다. 자전거도로가 끊겼다. 모래사장이 나왔다. 다시 그 끝에 계단이 줄지어 나왔고, 청간정으로 향하는 등산로 입구에 다다랐다. 소풍 나온 유치원생들은 “아저씨, 큰 자전거는 여기로 오면 안돼요”라며 기자를 다그쳤다. 청간정을 경유했으면 했겠지만 라이더들을 배려한 코스는 아니었다. 수정이 필요한 구간. 이어 천진해수욕장 초입 부분의 긴 모래사장도 역시 마찬가지. 긴 거리를 달려온 것도 아니었는데 곳곳에서 미비한 점들이 눈에 띄어 아쉬웠다.

봉포항을 지나면 영랑호가 나온다. 고성을 지나 속초에 왔다. 속초등대 전망대 앞 영금정 인증센터에서 도장을 또 꾸욱. 아쉬움이 또 있다면 인증센터 찾기가 쉽지 않다. 북천철교와 봉포해변 스탬프는 건너뛰었고, 영금정은 사진기자 덕분에 찾을 수 있었다.

▲ 소박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백도항.

▲ 고즈넉한 분위기의 송지호 숲길.

▲ 백도항을 지나면 기암들이 즐비한 자전거도로가 나온다.
섭국과 맞바람

영금정 바닷바람에 땀을 식히고 다시 출발. 멀리 울산바위의 강직한 자태가 엄청나다. 기암괴석의 웅장함, 경이롭다. 하늘빛 금강대교를 넘어 분홍빛 설악대교를 통과하는 구간 역시 볼거리. 설악대교를 넘을 때는 맞은편 저 멀리서부터 기자를 보신 할아버지가 먼저 지나가라며 난간을 꼭 쥐고 길을 내주셨다. “감사합니다!” , “그려, 재밌게 타~.” 동해안자전거길 개통에 자전거 통행량이 늘었나보다. 할아버지의 귀여운 매너에 입가에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대포항 도착. 약 60km를 달려와 먹는 늦은 점심 메뉴는 섭국(섭은 자연산홍합을 말한다). 강원도 향토음식인 섭국은 홍합과 부추, 미나리 등을 넣어 끓인 뜨끈하고 얼큰한 맛이 일품.

“지금부터 100km도 문제없겠는데요?” 해가 지기 전 주문진까지 가기 위해 속도를 끌어올렸다. 이상하다. 속력이 생각보다 나질 않는다. 원인은 바람. 사실 바닷가 바람이라 역풍인지, 순풍인지, 측풍인지 구분이 쉽진 않다. 바닷가 바람이 워낙 들쭉날쭉하다. 큰 관점에서 느낀 바가 있다면 새벽부터 오전까지는 순풍, 이후 시간은 역풍으로 느껴졌다(고성→부산 방향). 물론 계절에 따라 바뀐다.

▲ 고성8경 중 하나인 천학정.

▲ 속초 영금정에서 바라본 동해 역시 일품!

베스트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

낙산사를 거쳐 동호해변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야트막한 언덕이 여러차례 나왔고 맞바람까지 불어 앞으로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오르막을 넘으니 모든 피로가 싹 가셨다. 동호해변부터 멀리 하조대해수욕장까지의 풍광, 장관이다. “동해판 그레이트 오션 로드인데요?” , “그러게, 기가 막히네 진짜.” 첫 구간 베스트, 바로 이 곳이다.

▲ 동해판 그레이트 오션 로드, 동호해변과 하조대해수욕장.

▲ 저녁 메뉴는 자연산 물회와 회덮밥.
▲ 동해 일출은 언제나 옳다.

지난해 서핑 취재차 왔던 죽도해수욕장을 지나고 남애항을 거쳐 해가 뉘엿뉘엿 지는 주문진해변에 도착. 약 100km 코스로 길지 않았지만 맞바람이 강해 생각보다 체력이 많이 소진됐다.

오늘의 숙소는 주문진 야영장(주문진 야영장은 해변이 개장하는 7~8월에만 문을 연다. 취재팀은 미리 촬영협조를 구하고 촬영에 임했다). 부지런히 텐트를 치니 또 허기가 진다. 저녁 메뉴는 자연산 물회와 회덮밥. 배를 채우니 다시 새벽 라이딩이라도 할 기세다. 동해의 생기 넘치는 파도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자리에 든다.

▲ 주문진야영장에 도착. ‘이제 좀 쉬어가죠.’

▲ 주문진야영장의 밤. 제드 리노2와 그래핀.

새벽 5시 4분. 알람에 깨 눈을 비비고 바닷가로 향한다. 그리고 10분 뒤, 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동해에서 맞는 올해 첫 일출. 이곳저곳을 다니며 일출을 많이 보는 편이지만 이날의 태양은 좀 더 둥글고 강렬했다.

“이런 일출 찍기 힘든데 말야. 날도 맑고 구름도 없네.” , “멋지네요. 뭔가 뭉클뭉클하기도 하고.”

epilogue
동해에 온 게 처음은 아니다. 일출을 처음 본 것도, 회덮밥을 처음 먹은 것도 아니다. 자전거 라이딩은 처음이다. 송지호를 끼고 숲길을, 소박한 백도항을,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떠올리게 하는 동호해변을 달리는 것 말이다.

아쉬움도 있다. 끊긴 자전거도로와 찾을 수 없는 인증센터.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다음 여정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두 바퀴로 동해안 종주, 나이스 초이스!

*장비 지원 자이언트코리아, 아이엘인터내셔널, 제드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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