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는 산재 처리를 보상으로 여겼다”
“K2는 산재 처리를 보상으로 여겼다”
  • 특별취재팀
  • 승인 2014.07.07 16:19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촐라체 북벽서 추락사한 김형일·장지명 유족 릴레이 인터뷰③

고 김형일 대장의 유족 대리인이었던 사촌형 김형선씨는 형일이네는 자식 셋을 먼저 보낸 늙은 부모만 남았다고 한숨을 쉬었다.(김형일 대장의 동생 형진씨는 1998년 인도 북부의 탈레이사가르(6904m)를 등반하다가 추락사했다.) 그나마 형일이는 케이투코리아 정직원 신분이라 산재 처리라도 했지만 지명이네는 이마저도 없어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산재 처리를 하자마자 케이투코리아가 앞으로 법적인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류를 보내와 마음이 무척 상했다고 했다. 형일이 부모는 늙고 자식이 없어 이런 무시를 당했다며 그동안 자식 없는 설움을 속으로 삭여왔다고 했다.

▲ 서울 화양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형선씨. 유리창 너머로 고 김형일씨가 근무했던 K2클라이밍센터 건물이 보인다. 사진 양계탁 기자

케이투코리아가 약속을 어겼나?

“네팔 현지에 정영훈 사장하고 같이 갔다.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는 의심할 여지없이 괜찮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장례가 끝나자 김종곤(K2 아웃도어 아카데미 교장)씨가 나중에 사장님이 한 번 찾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도 연락이 없었다.”

케이투코리아가 해준 게 산재 처리가 다인가?
“형일이는 회사의 정식 직원이기 때문에 산재가 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의 동의하에 임금 내역 자료를 받아 산재를 처리했다. 김종곤씨한테 사장님이 한 번 찾을 거라더니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다른 건 없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했다. 이걸로 끝이냐고 그랬더니 다른 건 없다고 얘기했다. 지난번 얘기하고 다르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런 거 없기로 했다고 그랬다.”

확인서는 무엇인가?
“산재 처리 해줬으니까 법적인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사인을 했나?
“안 했다. 해줄 수가 없었다. 산재 처리 끝나자마자 한 번도 찾지 않던 사람들이 갑자기 전화해서 만나자고 하면서 하는 얘기가 사인해 해달라고 하면 얼마나 기분이 나쁜가. 무시하는 거다.”

그때 심정이 어땠나?
마음이 상했다. 사람이라면 인정상 유족을 불러 단돈 얼마라도 내놓고 여건상 이렇게 됐다고 하면 형일이네 부모가 늙고 자식이 없어서 무시를 당했다는 생각은 안 했을 것이다. 돈 액수에 연연하고 그랬으면 뭔가를 해도 했었다. 큰소리를 낼 줄 몰라서 안 내고 떠들 줄 몰라서 안 내는 게 아니다.”

▲ 고 김형일 대장의 유족 대리인이자 사촌형인 김형선씨. 그는 형일이네는 자식 셋을 먼저 보낸 늙은 부모만 남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소송은 왜 하지 않았나?

“동변상련인데 그(장지명씨 유족) 심정을 모를 리 없다. 형일이는 회사 직원이고 지명이는 아니라는 차이가 아니다. 우리는 일단 산재라도 신청해서 노인네들이 사는 동안 얼마라도 연금을 받을 수 있게 해놓았다. 그런데 우리가 나서면 니들은 그것도(산재연금) 받고 뭘 더 바라고 난리를 치냐, 이런 얘기를 들을 것만 같았다. 쟤들은 받을 거 받고 또 그러네, 하는 얘기가 사실은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소송을 하면 행여 형일이가 그동안 쌓아놓은 이미지가 흐려지고 또 가족들이 돈이나 바란다는 이미지를 주는 것이 싫었다. 형일이 부모도 물려줄 자식도 없는데 돈 있으면 뭐하느냐 하는 생각도 있었다. 노인들이 산재연금이라도 없었으면 살 길이 막막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명이네는 하나도 못 받은 상황에서 우리가 같이 떠들 일이 아닌 것 같아 가만히 있었다.”

산재 처리는 근로자의 당연한 권리 아닌가?
“형일이와 지명이가 목숨 걸고 산에 올라가서 궁극적으로 하는 건 깃발 두 개 드는 것이다. 하나는 태극기, 다른 하나는 K2 깃발이다. 국가에서 산재는 처리해주었지만 K2에서는 성의라도 보여줬어야 한다. 장례식까지 치러줬는데 무슨 할 말이 있느냐, 그렇게 나오면 할 말은 없지만 형일이 부모에 대해 뭐가 있었으면 좋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우리도 소송을 준비했다가 중단했다. 법률사무소에서 위로금은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형일이 부모가 없으면 없는 대로 살자, 자기가 좋아서 했던 일이라고 인정해주자고 했다.”

산재 연금은 얼마나 나오나?
“월 1백만원 정도 나온다. 나중에 형일이 부모가 큰 병에라도 걸리면 목돈이 없어 걱정된다.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하는 병에 걸리면 얼마나 말년이 비참하겠나.”

산재 처리와 별도로 보상을 요구한 적이 있나?
“한번이라도 만나서 얘기조차 해본 적이 없다. 케이투에서 백원을 주든 십원을 주든 회사 처분만 기다렸다. 유족들은 회사 처분을 쫓아가야 하는 거 아닌가. 먼저 요구하면 얼마나 보기 싫은가. 형일이 부모는 내가 돌봐드리면서 살기로 했다.”

▲ K2블로그에 올라온 당시 김형일 대장(왼쪽)과 장지명 대원의 영정 사진.

김형일 대장의 부모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나?

“형일이가 죽고 나서 보초를 섰다. 형일이 부모님이 내일 아침에 눈 좀 안 떠졌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데 곁에 누구라도 있어야 했다. 자식 한 명을 잃어도 난리인데 셋이 그렇게 먼저 갔으니 의지할 데라곤 한 명도 없다. 혹시라도 마음을 잘못 먹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당시에는 그럴 수도 있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신림동과 의정부를 오가며 보초를 선 것이다. 지금도 나하고 한 달에 한 번 형일이 유골을 안치한 포천 납골당에 간다. 거기에 가서 그렇게라도 자식을 보는 낙으로 살고 있다. 형일이 아버지는 72세, 어머니는 68세다.”

케이투코리아가 자리를 마련하면 나갈 생각은 있나?
“못 나갈 이유는 없다. 서운한 건 서운한 거라고 얘기할 수 있다. 다만 얼마를 내세울지 그런 건 처음부터 생각이 없었다. 형일이는 케이투를 다니면서 안정을 찾았고 이걸 발판으로 자기 앞날을 꿈꿀 정도로 회사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있었다. 정영훈 대표에 대해서도 좋게 이야기를 했다.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둘은 좋은 사이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죽어서 그런 거라도 위안 삼아 편히 쉬어라, 하는 생각에 조용히 있었던 것이다.
케이투 사장이 두 사람을 불러다 산에 가서 죽으라곤 하지 않았다. 성공을 바랐지 죽을 걸 바라고 그런 건 아니잖은가. 그렇지만은 한 기업의 대표는 싫어도 해야 될 일이 있는 거다. 솔직히 정영훈 사장도 유족들을 만나기 싫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조직의 수장이라는 사람이 한번쯤은 지금 내 생각은 이렇다 얘기를 하고 협상을 하든지 말든지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아예 자리조차 안 만들었다는 건 니까짓것들이 뭐 어쩌겠나 하는 심산이 있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한편 본지가 보낸 질의서에 7일 현재 케이투코리아는 아직 공식 답변을 보내지 않고 있다. [특별취재팀 윤태석·박성용·양계탁 기자]

※본지는 케이투코리아의 화려한 이면에 숨은 비정하고 몰인정한 기업문화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향후 케이투코리아의 광고는 게재하지 않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0 / 400
명복을 2021-03-21 00:00:09
영화 알피니스트 보면서 왜 그리 무리한 등반이 진행됬는지 정말 이상하게 느껴졌는데. 업체의 압박과 스트레스가 있었네요. 저도 뒤늦게 K2의 만행을 알게 되어 많이 실망입니다.

독수리 2020-02-09 02:21:42
고인의 명복과 부모님의 건강을 기원하겠습니다. K2는 불매해야겠네요. 인간을 위한 상품을 만드는 곳에서 인간을 이렇게 취급하다니 안타깝습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큰 목소리 내어주세요. 응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