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고 조용한, 자연에 감싸인 ‘서울섬’ 여행
소박하고 조용한, 자연에 감싸인 ‘서울섬’ 여행
  • 글 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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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속살 톺아보기 | ⑧ 부암동

▲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자하미술관에서 바라본 부암동 풍경.

부암동 주민센터~자하미술관은 가뿐하게, 섭섭하다면 산모퉁이 카페까지

북악산 북서쪽 창의문(자하문) 일대를 이르는 부암동은 동쪽으로 삼청동, 서쪽으로 홍제동과 홍은동, 남쪽으로 청운동과 옥인동, 북쪽으로는 신영동, 평창동과 접해있다. 동시에 서쪽으로는 인왕산이, 동쪽으로는 북악산이, 그리고 북쪽으로는 북한산이 자리하고 있다. 동네 이름인 부암은 이곳에 부침바위(付岩)가 있었다는 데서 유래하는데, 이 역시 산에 둘러싸인 자연환경과 연관이 있을 것도 같다. 부침바위에 본인 나이만큼 돌을 문지르고 손을 떼는 순간 바위에 돌이 붙으면 아들을 얻는다는 전설을 품은 부암동, 그 골목길을 찾았다.


이번에는 좀 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삼십 년 가까이 서울시민으로 살아왔다지만, 사실 서울에게 애틋하지 못했으니까. 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일까. 오히려 한 번도 밟지 못한 미지의 땅, 그가 품은 길에 대한 동경과 열망만 가득했었지 내가 지금 숨 쉬고 살아가는 여기 이곳에는 별다른 감응이 없었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 여전히 서울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차표 한 장 들고 떠나는 서울 여행, 이번엔 부암동이다.

▲ 건축가의 작품 같은 집부터 평범한 작은 집까지, 그리고 각자의 개성을 살린 집들이 가득하다.

여전히 풋풋한, 사람 사는 동네 부암동
부암동에 가려면 일단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부암동 주민센터를 지나는 1020·0212·7022번 버스를 타면 된다. 경복고와 경기상고를 지나 부암동 주민센터에 내리면 1단계 성공이다. 정류장에 내리면 노란색에 통유리로 감싸인 ‘유쾌한 황당’이라는 카페 겸 비공식 부암동 안내센터가 보이는데, 초행길인데다 감 잡기가 어렵다면 황당 주인장의 도움을 받아도 좋겠다.

오늘의 코스는 부암동을 처음 찾는 이들도 무리 없이 찾을 수 있는 자하미술관 코스다. 부암동 주민센터에서 무계정사터를 지나 자하미술관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깨달았겠지만, 이곳은 삼청동이나 인사동처럼 멀끔한(?) 동네가 아니다. 1971년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묶이면서 말 그대로 개발이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군사지역이기도 해 지금껏 서울 도심과는 어울리지 않는 순박한 얼굴을 유지할 수 있었다.

종로구청 건축과의 부암동 담당 문형도 주임은 “2004년 부분적으로 개발제한구역이 풀리기도 했지만 여전히 공사를 시작하려면 협의·조정 등 거쳐야 할 과정이 많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 소나무가 자라는 길을 열기 위해 담벼락을 뚫었고, 이웃집까지 넘어간 소나무를 위해 이웃에서는 나무 받침을 설치했다.

자, 이제 부암동 주민센터와 부암동의 맛집으로 꼽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오월 사이의 골목으로 발을 디디자. 인왕산 자락을 마주보며 골목길로 빠져든다. 첫 번째 갈림길이 나오면 우측으로 들어서서 계속 직진하다보면 무계정사터가 나온다.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본 무릉도원을 안견에게 그리게 한 ‘몽유도원도’와 닮았다고 ‘무계동’이라 불렀고, 산속에 정자를 지어 무계정사라고 했다.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으려는 계유정난을 일으키면서 역모로 몰려 안평대군은 강화도에서 사약을 받고 죽었다. 후에 정자는 폐허가 되었고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무계정사터, 라고들 부르지만 2003년 서울시는 이곳의 명칭을 ‘안평대군 이용 집터’로 바꿨다.

오르막길이 약간 가팔라지는가 싶은데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향하면 된다. 숨이 조금씩 차오르는데 범상치 않은 외관을 한 주택들이 종종 눈에 띈다. 직진한다는 생각으로 길의 끝까지 가면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미술관이라는 자하미술관과 닿는다. 자하미술관에서 바라보는 부암동 풍경은 가빠진 호흡을 달래고도 남는다.

▲ 산모퉁이로 향하는 길에서 바라본 북악산과 서울성곽.

치킨을 먹을까, 커피를 마실까? 
▲ 부암동의 마크와도 같던 갤러리 ‘호기심에 대한 궁금증’이 있던 자리에는 새로운 가게가 들어섰다. 부암동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한숨 돌리고 다시 부암동 주민센터로 돌아가는 길. 자하미술관에 오르면서 등지고 온 골목들이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건축가의 손길이 닿은 듯한 건물과 투박한 작은 집들이 공존하는 부암동 골목에는 꽃이 눈에 띈다. “부암동에서는 집이 부동산이 아니라 내가 사는 곳”이라는 부암동 골목 개발자 박상준씨의 말이 떠오른다. 소나무 자라는 길을 터주기 위해 담벼락을 허물고 지지대를 만들어 준다. 어쩌면 사람들이 부암동을 찾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닐까.

부암동 주민센터로 내려오자 조금 아쉽다. 내친김에 드라마 <커피프린스>로 유명해진 카페 산모퉁이까지 걸어보기로 한다. 부암동 주민센터에서 길을 건너 아까 내렸던 버스정류장으로 올라간다. 클럽에스프레소 카페 맞은편에서 부암동의 정체성을 대변하듯이 자리 잡고 있던 갤러리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과 카페가 사라졌다. 대신, 어쩌면 부암동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를지도 모르는 새로운 가게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 부암동을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들은 이를 두고 “부암동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 아주 조금씩 삼청동이나 가로수길에서 볼 수 있는 가게들이 자리잡고 있다.
방향을 바꿔 치어스와 클럽에스프레소 사이의 골목으로 들어선다. 서울에서 손에 꼽는 닭집인 치어스에서 치킨을 먹을 것인가, 아니면 클럽에스프레소에서 진짜 커피를 맛볼 것인가 잠시 행복한 고민에 빠져본다. 하지만 이미 두 다리는 이동을 시작, 부암동 닭집의 뉴페이스로 떠오르는 오솔길을 지나자 붉은 벽돌에 써 있는 동양방앗간이라는 반가운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오후 3~4시면 떡이 다 팔릴 정도로 맛있다는 동양방앗간 떡을 언제쯤 맛볼 수 있을까. 차분한 동네지만 부암동에도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 은근히 많다.

동양방앗간을 앞둔 갈림길에서 우회전을 하면 걷기 좋은 길이 나온다. 쭉 올라가면 북악스카이웨이와도 만나는 길이다. 산모퉁이로 향하는 길은 양쪽으로 나무들이 뻗어 있어 걷는 재미가 난다. 계속 직진한다는 느낌으로 길을 따라 올라간다. 오르막이라 은근히 땀이 나는데다, 여름 막바지의 과한 습기도 한몫 거든다. 저 앞에 걸어가던 모양내고 나온 아가씨는 자꾸 걸음이 삐뚤어진다. 주말에는 주차가 어려우므로 저 아래 골목에 주차하는 편이 좋단다.

드디어 산모퉁이와 만났다. 이름 그대로 산모퉁이에 자리한 카페. 드라마는 끝났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이곳을 찾는다. 그리고 이곳에서 북악산과 서울성곽을 내려보며 커피를 한잔 할까, 내려가서 치킨에 맥주를 한잔 할까. 여행의 가장 신나는 고민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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