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가을을 맨발로 느끼며 걷는 옛길
선선한 가을을 맨발로 느끼며 걷는 옛길
  • 글·변정식 | 사진·엄재백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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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따라 삼천리 | ⑧ 문경새재

▲ 문경새재는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였다.

제1관문 주흘관~제2관문 조곡관~제3관문 조령관…약 6.5Km 총 3시간 소요
백두대간인 조령산(1126m)과 주흘산(1075m) 사이를 지나는 문경새재는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상의 가장 큰 고개였다. 이 길은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으로 조령(鳥嶺)이라고도 불리고, 조령산과 주흘산 사이에 있는 고개라는 뜻에서 새재라고 불렸다.


이번 지방 산행이 문경새재로 정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참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경새재는 내게 특별한 곳이기 때문이다. 올해 여든이 되신 아버지의 고향으로,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신 당신이 일곱 살이 된 해에 시집가는 큰누이를 따라서 서울로 올라갔던 길이자 나의 할아버지가 어린 막내아들과 며느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을 막내 손주를 어렵디 어려운 서울 사돈네로 떠나보내신 길이기도 하다.

▲ 예전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향하는 선비들은 좋은 소식을 듣기 위해 문경새재 길을 걸었다고 한다.

좋은 소식 듣게 되는 한양 가는 길
아침 6시30분 일산을 출발한 버스는 안개가 짙게 깔린 고속도로를 달려 아홉 시가 조금 넘어 고속도로 연풍IC로 나갔다. 아침 안개가 걷히기 시작한 시골길을 달리던 버스 안에서 잠에서 깬 산우들이 차창 밖으로 빨갛게 익은 사과를 보고 탄성을 쏟아냈다. 때마침 문경은 사과 축제 준비로 매우 부산한 모습이었다. 탐스런 사과로 산우들을 유혹하던 길은, 오른쪽으로 우뚝 서있는 주흘산과 왼쪽의 조령산 사이를 흐르는 조령계곡을 따라 은행나무 가로수 길로 연결됐다.

도착하고 길에 내려서 보니 걸어야 할 길이 참말로 좋다. 서울에서 버스가 출발하기 전부터 여태 걸었던 산행 중 가장 쉬운 코스로 부드러운 산책길이 될 것임을 누차 강조하신 대장님의 약속을 증명이라도 하듯 길은 맨발로 걸어도 될 정도로 부드러운 흙 길로 연결돼 있다.

▲ 평범한 길만 걷는 코스보다 걷는 도중 세 개의 관문이 등장해 재미를 더한다. 조령관까지는 옛길의 고즈넉함은 없으나 숲이 깊어지면서 숲 냄새가 진동한다.
실제로 초가을을 즐기러 나온 많은 사람들이 맨발로 걷고 있었고 우리 산우 몇몇도 등산화를 벋어서 들고는 조금 쌀쌀하지만 맨발로 초가을을 만끽하며 트래킹을 준비했다. 마사토의 까칠함이 발바닥으로 전해졌다. 마치 까미노(Camino de Santiago, 순례길)를 걷듯이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는 편안하면서 결코 빠르거나 성급하지 않다. 머릿속에 차있던 근심마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문경새재 옛길 초입에는 한쪽으로 옛길 박물관이 보인다. 미처 박물관에 들려보지는 못했지만 문경새재, 토끼비리, 하늘재, 유곡역 등 우리나라 옛길의 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최초의 옛길 박물관에는 과거길, 여행길, 경상감사의 도임행차길 등 조선시대 길 위에서 펼쳐졌던 문화상을 알기 쉽게 설명해 놓았다고 한다.

문경새재 옛길은 조선시대 영남의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가던 길이었다고 한다. 옛날 영남에서 한양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은 세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추풍령을 넘는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죽령을 넘는 길이었으며 마지막으로 문경의 옛 지명인 문희(聞熙)를 넘는 길이 있었다고 한다.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향하는 선비들은 반드시 문경새재 길을 걸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낙방하고 죽령을 넘으면 시험에 죽을 쑤게 되지만 문희길을 걸으면 좋은 소식을 듣게 된다는 속설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실상은 동래에서 한양까지 문경새재를 통과해서 걸으면 14일, 추풍령은 15일, 죽령은 16일이 걸리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주흘관~조곡관~조령관으로 이어지는 옛길
▲ 걷는 도중 땀이 날만할 때 즈음,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지는 폭포를 지났다.
본격적인 트래킹 코스의 시작은 조령 제1문인 주흘관(主屹關)에서 시작했다. 1708년 조선 숙종 34년에 축성된 새재 입구의 성문으로 아직도 원형이 잘 보존되어있었다. 길은 아름다운 전나무 가로수 사이로 이어졌고 길은 예전의 모습을 재현해놓은 방송국 드라마 세트장과 자연생태공원, 그리고 문경새재를 에워싸고 있는 주흘산과 조령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들로 이어져 있었다.

예전 이곳에는 과거 길에 오른 선비와 상인들을 노리는 산적들이 많이 숨어 살던 곳이어서 그들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서 돌로 인위적으로 만든 조산이라는 돌탑을 볼 수 있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조산을 세웠는지, 주위의 돌들을 모두 탑으로 세워서 길이 이토록 부드러운 흙 길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나무 숲길로 변한 부드러운 길은 신임 경상감사의 교인식을 행하던 교귀정을 지나 용이 하늘로 승천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용추로 이어졌다. 면곡 어병갑이라는 분이 아름다운 이 계곡을 칭송하면서 쓴 시를 감상하며 작지만 길옆으로 시원한 물줄기를 떨어내는 조곡폭포를 지났다. 길 바로 옆으로 만들어진 폭포를 보며 이 폭포가 사람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는지 아니면 원래 자연 그대로의 폭포인지 의견이 분분했지만 분명 아름다운 폭포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었다.

일직선으로 부드러운 흙길이 이어지다가 길이 굽이굽이 휘어졌다. 굽이진 길에는 잣나무와 박달나무, 전나무, 소나무가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이제 길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조곡교(鳥谷橋)를 지나 조령의 중간에 위치한 제2관문인 조곡관(鳥谷關)에 다다랐다. 주흘관에서 이곳까지는 약 3km로 고갯길이라고 하기에는 경사가 너무 부드러워 쉬엄쉬엄 걷기에 좋다.

▲ 산우들은 6.3km의 부드러운 비포장 고갯길의 흙 냄새에 취해 조령관을 넘어 트래킹을 마감했다.

제3관문인 조령관(鳥嶺關)으로 이어지는 길은 졸업 여행을 왔다는 학생들의 재잘거림과 이른 가을을 맞이하는 핑크색 등산복 일색의 아주머니 부대의 왁자함으로 다소 소란스러웠다. 조곡관전까지 이어지던 옛길의 고즈넉함은 없어졌으나 숲은 깊어지고 숲 냄새가 가슴속 깊이 밀려들었다. 그 옛날 문경새재의 아리따운 처녀와 선비의 애틋한 사랑을 담고 있는 ‘새재우’의 전설을 뒤로 하고 우리 산우들은 6.3km의 부드러운 비포장 고갯길의 흙 냄새에 취해 조령관을 넘어 트래킹을 마감했다.

손진환 연극배우
“기회가 되면 꼭 히말라야에 올라보고 싶어요.”

돈암동에 살다보니 북한산과 가까워 산책 삼아 다니게 된 것이 꽤 오랫동안 등산을 하게 된 계깁니다. 아무래도 공연이 길어지다 보면 산행을 자주 못하게 돼서 7~8년 전부터 공연이 끝나면 지리산 종주를 하곤 했죠. 좋은 일이든 불쾌한 일이든 지리산에 마음을 비우러 떠나는데, 그렇게 자주 가면서도 그곳이 늘 그립습니다.

기회가 되면 히말라야를 꼭 올라보고 싶어요. 설명하지 않아도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은 꿈이 아닐까요? 시간이 너무 빠듯하지 않게 꼭 한번 다녀오고 싶습니다.


변정식 | 대학인순례자협회 한국대표, 주식회사 니키앤프랜 대표이사. 저서로 <신과 함께 가라 산띠아고 가는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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