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생강나무 마을은 산수유 꽃길
산은 생강나무 마을은 산수유 꽃길
  • 글 사진·진우석 출판팀장
  • 승인 2011.05.1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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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 길 (16) 양평볼랫길

▲ 주읍리는 미술 애호가들의 단골 스케치 장소다. 산수유 고목 아래 그림 한 점이 놓여 있다

올 겨울은 징그럽게 추웠지만 그래도 봄꽃은 피고야 말았다. 오랫동안 기다렸기에 더욱 눈부신 봄날. 서울 근교에서 봄맞이 좋은 길이 양평볼랫길이다. 추읍산(582m)을 둘러가는 1코스는 주읍리와 내리 산수유 마을을 거치기에 봄철에 제격이다. 양평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추읍산은 지리적으로 용문산의 유명세에 밀려 홀대받던 산이었다. 하지만 중앙선 개통으로 등산객이 조금씩 늘었고, 여기에 볼랫길이 생기며 그 진면목이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다.

▲ 용문역을 나와 흑천을 건너면서 본격적인 볼랫길이 시작된다

희망근로사업으로 탄생한 볼랫길

주말 서울에서 용문으로 가는 중앙선은 등산 열차가 됐다. 예봉산ㆍ운길산ㆍ용문산ㆍ추읍산으로 가려는 산꾼들이 가득하다. 여기에 자전거를 싣고 탑승한 MTB 마니아까지 가세해 열차 안이 북적북적하다. 용문역에 내리는 산꾼 중에서 열에 아홉은 용문산으로 향하지만, 한두 명은 볼랫길을 걷는 사람이다. 어감이 친근한 볼랫길은 ‘보고 또 봐도 가고 싶은 곳’이란 뜻으로 희망근로사업을 통해 만들어져 ‘희망볼랫길’이라고도 부른다.

볼랫길 1코스의 출발점은 용문역 3번 출구(남쪽 광장). 용문 주민과 용문산 탐방객은 순식간에 1번 출구(북쪽 광장)로 빠져나간다. 따라서 3번 출구는 볼랫길 전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3번 출구를 나오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온통 들판과 야산뿐이다. 전철역 앞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모든 상가와 교통 시설이 1번 출구에 몰려 있는 탓이다. 광장 앞에서 볼랫길 이정표를 살펴봤으면 출발이다.

북부지방산림청 용문종묘장 옆으로 난 들길에는 봄빛이 가득하다. 논두렁에 꽃다지가 지천으로 피었고 들판에서는 향기로운 흙냄새가 진동한다. 들판 너머 꼬부랑산의 품에도 겨울빛을 뚫고 봄빛이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겨울과 봄이 힘겨루기를 하는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 주읍리에서 추읍산 정상이 잘 보이는 고갯마루를 넘으면 내리로 이어진다

흑천을 만나는 지점이 갈림길이다. 여기서 왼쪽은 2코스인 용문산 방향이고, 1코스는 오른쪽 강변을 따른다. 흑천은 청운면 성지봉에서 발원해 남한강 합류점까지 37km쯤 양평을 적시는 제법 큰 하천이다. 흑천 징검다리처럼 꾸민 다리를 건너면서 본격적인 볼랫길이 시작된다. 예전에는 투박한 징검다리가 놓여 건너는 맛이 좋았는데, 좀 아쉽다. 여기서 볼랫길은 꼬부랑산(279m) 섬실고개를 넘는다. 이 고개는 용문읍과 삼성1리를 연결하는 최단 거리라 예로부터 많은 사람이 넘어 다녔다. 그래서 그런지 제법 경사는 가파르지만 길은 구불구불 나 있어 걷기 수월하다.

섬실고개 정상 쉼터에서 잠시 한숨 돌리고 내려서면 낙엽송 군락지를 지난다. 낙엽송 사이에서 생강나무 노란 꽃들이 만개했다. 생강나무는 개나리와 진달래처럼 산속의 봄의 전령이다. 꽃과 입에서 내뿜는 알싸한 향기도 일품이다. 생강나무꽃을 보면 김유정의 소설 한 구절이 떠오른다.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이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흐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파묻혀 버렸다.’ 여기서 동백꽃이 바로 생강나무꽃을 말한다.

낙엽송 군락지를 내려오면 드디어 산수유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병아리 같은 산수유꽃 너머로 추읍산이 거대한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다. 추읍산은 흑천 건너 용문산을 바라보고 읍(揖)하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추읍산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다른 이름으로는 정상에서 사위를 둘러보면 양평ㆍ개군ㆍ옥천ㆍ강상ㆍ지제ㆍ용문ㆍ청운 모두 7곳에 달하는 고을이 보인다고 해서 일곱 칠(七)과 고을 읍(邑) 자를 써서 칠읍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풍수적으로는 산세가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ㆍ목마른 말이 물을 먹는 모습)이라고 해서 조망이 빼어나다고. 

▲ 내리 산수유 마을을 지나는 사람들

고향 내음 가득한 주읍리 산수유 마을

삼성1리에서 볼랫길은 잠시 도로를 따르다가 화전2리 버스정류장 앞에서 안쪽으로 들어선다. 볼랫길 이정표가 잘 눈에 띄지 않기에 ‘등골횟집’ 간판을 따르면 된다. 15분쯤 도로를 따르다 등골횟집을 지나자마자 추읍산 등산로 안내판을 만난다. 볼랫길 은행나무잎 이정표도 옆에 서 있다. 여기서 볼랫길은 산길로 들어선다. 1코스는 추읍산의 고갯마루를 3개나 넘는다. 둘레길이라 해서 산 아랫동네만을 거치는 것은 아니다.
완만한 고갯길은 정상까지 수월하게 이어진다. 고갯마루 일대는 산양산삼 농장이다. 볼랫길은 농장 철조망을 따라 능선을 잠시 따르다가 하산하게 된다. 솔숲 길을 좀 내려오면 등골재(화전고개)에 닿는다. 화전리와 주읍리를 연결하는 이 고개 정상부 성황당 터에 돌탑이 남아 있다. 예전 주읍리 주민들이 용문 드나들 때 이용한 유서 깊은 길이다.

등골재를 내려오면 볼랫길의 하이라이트 주읍리다. 이곳은 400 ~ 500년가량 되는 산수유 약 1만5천 주가 자생하고 있는 산수유 마을로 유명하다. 매년 4월 초 노란 산수유꽃이 온 마을을 뒤덮을 때를 맞춰 ‘개군 산수유축제’가 열리고 있다. 축제 때에는 길놀이, 산수유 백일장, 추읍산 등산대회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올해는 구제역 관계로 취소됐다.

▲ 호젓한 삼성고개. 고부랑산의 작은 고개로 용문 시내와 삼성리를 이어준다.

칠보산장에서 길을 따라 내려오면 주읍리의 명물 산수유쉼터를 만난다. 이곳은 황토담과 붉은색 슬레이트가 예쁜 전통가옥으로 산수유꽃이 필 때면 손님들에게 집을 개방한다. 집 앞 초가 정자에서 산수유차를 마시며 산수유꽃 군락을 바라보는 맛이 제법 괜찮다. 특히 다랑이논과 산수유 고목에서 핀 노란 꽃이 어우러진 모습이 일품이다.

산수유쉼터를 내려와 산수유펜션 앞에서 내리 방향으로 등산로가 갈린다. 여기서 볼랫길은 마을길을 버리고 내리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정표가 헷갈리는 지점이다. 내리로 가기 전, 우선 주읍리 마을 구석구석 둘러보는 곳이 좋다. 주읍리 마을은 아담하고 예쁘다. 구불구불한 들판에는 아낙과 아이들이 쑥을 캐고, 산수유 고목 아래에서는 아마추어 화가들이 산수유를 화폭에 담고 있다. 서울 근교에서는 보기 힘든 평화롭고 정겨운 모습이다. 그 풍경 뒤로 추읍산이 봉긋 솟았는데, 삼성리에서 본 모습과 달리 후덕하고 풍요롭다.

다시 갈림길로 돌아와 내리 방향 산길을 따른다. 임도로 바뀐 볼랫길은 추읍산 아래 산비탈을 타고 돈다. 고갯마루쯤에서 봉긋한 추읍산 정상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하다. 옛날 추읍산 정상은 ‘마당재’라 불렀다. 여주에 세종대왕 능을 쓸 때의 일이다. 묏자리를 파고 보니 땅속에서 물이 솟아올랐다. 이에 지관을 잡아 가두려 하자 지관이 말하기를 “나를 잡지 말고 칠읍산 마당재에 우물을 파도록 하시오. 그러면 마당재에서 물이 나오고 그 대신 세종대왕 능 자리의 물기가 싹 가실 것이오”라고 말했다. 지관의 말대로 추읍산 정상에 땅을 파니 물이 고였고, 거짓말처럼 세종대왕묘의 물은 사라졌다고 한다. 실제로 삼성리 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예전 추읍산 정상에는 물이 마르지 않는 샘터가 있었다고 한다. 이 샘은 묘하게도 6·25 후에 자취를 감추었다고.

▲ 산행을 마치고 흑천을 건너는 산꾼들. 다리를 건너면 원덕역으로 간다

추읍산 3개 고개 넘어 원덕역까지

정상이 잘 보이는 고갯마루를 넘으면 남한강을 바라보며 걷는다. 한동안 이어진 임도는 내리 마을 갈림길에서 오른쪽 추읍산 삼림욕장 방향으로 오른다. 이곳에서도 내리 마을로 내려서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삼림욕장은 ‘바람의 숲’ ‘만남의 숲’ ‘책읽는 숲’ 등 테마별로 아기자기한 숲을 꾸며놓았다. 15분쯤 올라 삼림욕장 입구에서 왼쪽 원덕역 방향 임도로 들어선다. 1코스를 통틀어 세 번째인 고갯마루를 넘으면 양평의 상징인 용문산이 드넓은 품을 펼친다.

임도 모퉁이를 돌 때마다 용문산과 추읍산이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것이 재미있다. 1코스는 추읍산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추읍산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도가 끝나는 지점은 두레마을. 전원주택이 많은 마을로 원덕 들판과 용문산 조망이 시원하다. 마을에서 흑천을 건너면 볼랫길은 거의 마무리된다. 원덕역까지 이어진 들판을 걸으며 뒤돌아보니, 두 팔을 벌린 추읍산이 작별 인사를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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