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활강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활강하고 싶습니다”
  • 글·김경선 기자|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6.2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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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 전문 스노보더 김은광

히말라야 로체(8516m)의 해발 7000m 지점. 도전에 미친 사나이가 부츠를 신고 보드에 발을 끼웠다. 아무도 밟지 않은 자연설에 보드를 내딛는 순간, 급경사를 따라 활강이 시작됐다.

온 몸을 갈기갈기 찢을 듯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과 희박한 산소는 스노보더를 극도의 긴장감으로 몰아붙였다.

그런데 갑자기 보드가 말을 듣지 않는다. 절벽 위에 얼어붙은 얼음 탓에 50m 가까이 미끄러지던 남자는 200m 깊이의 크레바스를 5m 앞두고 가까스로 보드를 멈춘다.

남자는 한동안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러나 죽음의 직전까지 경험한 남자는 살기 위해 다시 일어났다.

2001년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에서 스노보드를 탄 남자, 고산 전문 스노보더 김은광(41) 씨다.

종종 스키를 타고 히말라야 고산을 내려오는 스키어는 있었지만, 스노보드로 시도한 사람은 많지 않다. 스키에 비해 제어가 힘들고 경사면이 유지되어야 탈 수 있기 때문에 평지에서는 부츠를 벗고 걸어야한다는 핸디캡이 있다.

“도전을 할 때면 ‘살아서만 돌아가자’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짜릿한 쾌감이나 성취감은 나중 일이죠.”

김은광 씨는 2001년부터 고산을 찾아다니며 스노보드를 탔다. 그 해 히말라야 로체를, 2002년에는 북미 최고봉 매킨리(6194m)와 유럽 최고봉 러시아 앨브르즈(5645m)에서 도전했다.

그 외에도 틈틈이 백두산(2744m)과 한라산(1950m), 설악산(1708m)에서도 보드를 탔다. 도대체 왜 이렇게 위험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 걸까?

“글쎄요. 도전을 하지 않으면 게을러지는 느낌이에요.”
굳이 도전을 계속하지 않아도 그는 국내 최고의 스노보더다. 대한스노보드협회 이사로, 세계연맹 기술위원으로 활약하며 명예와 부도 이미 가졌다.

그러나 그는 도전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스노보더가 야구나 축구 선수처럼 어엿한 직업인으로 여겨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김은광 씨가 고산 전문 스노보더가 되기까지는 온 청춘을 바쳐 스노보드를 탄 그의 화려한 이력도 한 몫을 했다. 스노보드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1991년, 유도를 전공하던 대학생 김은광 씨는 영어학원에서 만난 친구의 권유로 스노보드를 배우기 시작했다.

스노보드의 스피드에 빠진 그는 프로 스노보더가 되기로 결정하고 94년 캐나다로 유학을 떠난다. 그리고 캐나다 프로팀 블랙콤(Blakcomb)에 입단한 그는 16명의 팀원 중 유일한 동양인으로 활약한다.

“창피한 일이지만 처음에는 실력 차이가 많이 났어요. 백인 선수들의 스피드를 따라가기조차 힘들었죠.”
프로 선수 초창기에는 팀 내에서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지만, 그는 실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냈다.

그렇게 7년의 프로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 2001년. 그때부터 그는 고산을 찾아다니며 도전을 시작했다.

“고산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사실 우연이었어요. 2000년 가을, 슬로베니아의 다보 카니차가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왔다는 기사를 읽은 후에, ‘스키는 되는데 스노보드는 왜 안 돼?’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의 최종 목표는 에베레스트(8848m)다. 전문 산악인들도 목숨 걸고 오르는 그 산을 그는 스노보드로 내려오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도전은 인간의 의지지만 성공은 자연의 뜻이에요. 아무리 실력이 우수하고 노력을 하더라도 산이 허락하지 않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저의 도전을 산이 허락하기를 기도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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