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이내의 짧고 자극적인 영상인 숏폼. 중독적인 숏폼을 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몇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다. 작년 8월 기준 국내 이용자 1인당 월평균 숏폼 사용 시간은 46시간이 넘는다. 짧고 강렬한 쾌락에 익숙해지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강렬한 자극만 찾아다니는 ‘팝콘 브레인’이 된다.
직장인 A 씨는 요즘 긴 글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졌다. 집중력이 전과 같지 않다 보니 한 권의 책을 다 읽기까지 전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내용도 뚜렷하게 기억에 남지 않는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리에 앉으면 책 한 권은 금세 읽어버리고 한 번 읽은 문장은 뇌에 새긴 듯 머물렀는데, 이렇게 변하게 된 이유가 뭘까?
이런 증상은 ‘팝콘 브레인Popcorn Brain’이라는 단어로 설명된다. 뇌가 팝콘처럼 튀어 오르는 크고 강렬한 자극만 찾다 보니, 느리거나 작은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2011년 미국 온라인 학술지인 ‘플로스 원Plos One’에 처음 등장한 용어로, 당시 연구에서 좌뇌만 사용해 둔해진 우측 전두엽의 영향으로 좌뇌와 우뇌를 번갈아 사용하는 활 동에 어려움을 겪는 현상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PC 세대에 처음 등장한 용어지만 첨단 디지털 기기가 보급된 이후 더 주목받았다. 특히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등 디지털 기기가 익숙한 젊은 층, Z세대(1996년~2010년생)에게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Z세대는 어렸을 때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해 왔고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이라고도 불린다. SNS를 통해 소통하는 것이 익숙해 거부감도 없다. 바보상자라고 불리던 TV의 문제와는 확연히 다르다. TV 예능은 보통 1시간 내외로 호흡이 긴 영상이었지만, 지금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대중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숏폼Shortform 영상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디지털 마약’이라고도 불리는 숏폼은 보통 15초에서 1분 이내의 짧은 영상을 말한다. 중국 영상 플랫폼 ‘틱톡’에서 첫 등장한 서비스로, 대표적으로 인스타그램의 ‘릴스’와 유튜브 ‘쇼츠’ 등이 있다. 짧은 시간 내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소비자가 오래 체류하도록 해야 하는 만큼, 내용과 영상은 자극적일 수밖에 없다. 숏폼은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쉽게 손에서 놓기 힘들다. 다음 영상, 다음 영상, 다음 영상으로 이어지다 몇 시간은 금방이다. 지난해 8월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의 한국인 스마트폰 사용자 표본 조사에 따르면, 1인당 OTT 플랫폼 사용시간인 9시간 14분에 비해 숏폼 플랫 폼 사용시간은 이에 5배가 넘는 46시간 29분이었다.
팝콘 브레인이 유발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두 가지다. 바로 중독성과 뇌 구조의 변형이다. 사용자는 중독물질이자 숏폼의 매개체인 스마트폰에 언제든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별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높다. 도서 〈트렌드 코리아 2024〉에서 ‘도파밍’이라는 단어를 2024년 10대 소비 키워드 중 하나로 꼽았다. 도파밍 은 도파민Dopamine과 파밍Farming의 합성어로, 게이머가 파밍하며 아이템을 모으듯 인간에게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이자 호르몬인 도파민을 수집한다는 뜻이다. 사람은 쉽게 느낄 수 있는 자극을 찾고, 그럴수록 기존 자극에 내성이 생겨 더 큰 자극을 쫓는다. 이렇게 뇌 구조가 변형되면 현실에는 무감각하게 반응한다. 느리게 오 는 성취감을 이루기 힘들고, 쉽게 지루함을 느낀다.
어떻게 팝콘 브레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먼저 디지털 기기 사용 시간을 정해두는 방법이 있다. 현대 사회에서 아예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않기는 어렵다. 하루에 두 시간, 또는 하루 중 어느 때만 사용하도록 정해두면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게 해준다. 또 디지털 세상 속에서 헤매지 말고, 화면 밖을 보자. 느리거나 과정은 힘들지만 달성한 후에 성취감을 통해 도파민을 얻는 많은 방법이 있다. 운동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는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얻는 성취감을 통해 뇌가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책을 읽을 수도 있지만, 당장 긴 문장에 집중하기 어렵다면 먼저 필사를 시도해 보자. 문장을 곱씹으며 따라 적으면 어느새 읽기도 수월해지고, 집중력도 되찾을 수 있다. 최근에는 ‘디지털 디톡스’ 카페도 인기를 끌고 있다. 자신의 스마트폰 중독 상태를 인지하고 벗어나기 위해 찾는 젊은 층이 다수.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욕망의 북카페’에서는 입장할 때 스마트폰을 금고에 보관하고 나갈 때 찾아갈 수 있다. 물론 카페 내에서 태블릿PC나 노트북 등도 사용할 수 없다.
디지털 기기는 양날의 검이다. 역효과를 낳기도 하지만, 우리 삶에 주는 좋은 점들도 많다. 우리는 중독을 경계하며 현명하게 이를 활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안일하게 흘려보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팝콘 브레인 자가 진단 테스트
□ 긴 문장이나 긴 영상에 집중하기 어렵다.
□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가 없으면 불안하다.
□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사용 시간을 스스로 조절하기 어렵다.
□ 숏폼을 보다가 계획한 일을 못한 적이 많다.
□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숏폼을 소비한다.
□ 짧은 영상을 보다가 제시간에 잠에 들지 못한 적이 많다.
□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을 찾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한다.
* 해당되는 문항이 많을수록 주의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