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을 다독이듯 꽃잎이 토닥토닥 내려앉는 계절. 북적이는 인파로 선뜻 꽃놀이에 나서기 두렵다면 여기, 비교적 한적하게 즐길 수 있는 국내 벚꽃길을 찾아가 보자.
서울 선유도공원
서울 도심 속 벚꽃 명소의 수많은 인파가 걱정스럽다면 선유도공원을 추천한다. 의외로 웨딩 촬영 명소로 꼽힐 만큼 아름다운 봄 풍경을 간직한 곳. 봄이면 울창한 자연 속 자리한 산책로에 벚꽃이 소복이 쌓여 마치 신비로운 숲을 걷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물의 공원’이라고도 불리는 선유도공원은 한때 낡은 정수장이었으나 2002년 재활용생태공원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주민들의 자연 쉼터가 됐다. 정수장 건축물을 재활용한 덕에 옛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독특한 매력을 더한다. 곳곳에 조형물이 있는 포토존은 물론, 한강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한강역사관, 수질정화공원, 시간의 정원, 수생식물원 등 다양한 시설이 마련돼 있다.
경주 보문호
비교적 이른 봄을 맞이하는 경주에서는 3월 말이면 흐드러진 벚꽃을 만날 수 있다. 대릉원 돌담길, 흥무로, 엑스포 공원, 불국사까지 벚꽃으로 유명한 명소가 많아 어느 쪽으로 발길을 돌려도 연분홍빛 세상이 펼쳐진다. 그중에서도 드넓은 호수와 쭉 뻗은 산책로가 있는 보문 호반은 평화로운 풍경으로 운치를 더한다. 길을 따라 하염없이 쏟아지는 꽃비를 온몸으로 맞다 보면 걱정과 시름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보문관광단지에서 출발해 경주월드를 지나 경주동궁원으로 돌아오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코스. 도로 양옆에 풍성하게 피어오른 벚꽃이 천연 터널을 만들어 마치 다른 세계로 달리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하동 쌍계사 십리벚꽃길
사방이 꽃으로 뒤덮인 터널 속을 천천히 두 발로 누비는 경험을 누릴 수 있는 곳. 화개 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이어지는 거리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벚꽃길 중 하나다. 화개 장터로 유명한 하동은 사실 주민들에게는 섬진강변을 따라 이어진 1200여 그루의 왕벚꽃 나무로 더욱 사랑받고 있다. 꽃이 크고 길이 좁아 제법 그럴싸한 연분홍빛 터널을 연출하고 있는 것. 터널 안쪽에 있으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벚꽃으로 빽빽하게 뒤덮여 세상과 완벽히 차단된 느낌이다. 벚꽃 터널 옆으로는 너른 차밭이 펼쳐져 있어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풍경이 걷는 내내 펼쳐진다.
제주대 벚꽃길
벚꽃이라고 해서 모두 일본이 원산지는 아니다. 왕벚나무는 1908년 제주도로 선교 활동을 온 프랑스 신부가 한라산에서 왕벚나무를 발견했으며, 1912년 독일 식물학자는 한라산 관음사에서 왕벚나무를 발견해 학계에 보고했다. 국내 벚꽃나무의 대부분인 왕벚나무의 원산지는 제주도인 셈이다. 제주는 왕벚나무의 본고장이자 벚꽃이 가장 먼저 개화하는 섬인 만큼 3~4월엔 봄나들이에 나선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다. 수많은 인파를 피하고 싶다면 벚꽃 드라이브가 답. 제주대 벚꽃길에 봄이 오면 도로 위에 벚꽃잎이 주단처럼 깔려 마치 구름 위를 달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남해 왕지 벚꽃길
해안 도로를 따라 벚꽃 터널이 펼쳐지는 낭만적인 드라이브 명소. 남해대교를 건너 노량마을에서 왕지마을까지 이어지는 약 4km 거리에 1천 그루에 달하는 왕벚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바로 옆에는 싱그러운 봄 바다가 펼쳐져 달리는 내내 봄을 만끽할 수 있다. 도로 한쪽에는 나무 데크로 된 산책로가 있어 뚜벅이 여행자에게도 안성맞춤. 군데군데 포토존이 마련돼 있어 에메랄드빛 바다와 분홍빛 벚꽃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기 좋다. 왕지벚꽃길로 향하는 길목에 유채꽃밭과 튤립 밭 등이 있어 벚꽃 이외에도 다양한 봄꽃을 구경할 수 있다.
진해
세계 최대 규모의 벚꽃 축제인 ‘진해 군항제’가 열리는 명실상부 벚꽃 명소. 화려하고 아름다운 진해의 벚꽃에는 가슴 아픈 역사가 숨어있다. 진해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 해군 기지가 들어서면서 바둑판식의 방사형 도시 구획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일본군이 미관용으로 벚나무를 심었는데, 해방 이후 일제의 잔재로 여겨 대부분 제거했던 것. 이후 진해의 벚나무가 제주도의 왕벚나무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흥 운동을 통해 수많은 왕벚나무가 심어졌다. 진해는 과거 이순신 장군이 항만 기지로 선택한 진해만이 있어 매년 이순신 장군을 기리기 위한 추모제가 열렸는데, 벚꽃이 개화하는 시기와 맞아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벚꽃 축제로 발전하게 됐다. 내천 양옆으로 벚꽃이 터널을 이룬 여좌천, 철길을 따라 800m 가량 벚꽃이 줄지어 있는 경화역, 너른 잔디밭과 벚꽃이 어우러진 내수면 환경 생태공원 등 다양한 볼거리가 모여있다.
군산 월명공원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뽐내는 군산의 대표 명소, 월명공원. 월명산과 장계산, 설림산, 점방산, 석치산 등 수많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타오르는 불꽃과 바람에 나부끼는 돛의 형상을 한 수시탑에 오르면 군산 앞바다와 주변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계절마다 각기 다른 매력을 품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단연 벚꽃이 만개하는 봄이다. 3월 말이면 12km에 달하는 산책로 전체가 분홍빛으로 물들어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로맨틱한 풍경을 선사한다. 3월에 서 4월로 넘어가는 시기에 산책로를 걸으면 온몸으로 비처럼 흩날리는 벚꽃을 만끽할 수 있다.
서울 남산 둘레
함박눈처럼 지천으로 쌓인 벚꽃, 실개천을 따라 흐르는 꽃잎의 향연, 산 위로 펼쳐지는 남산 타워 전경까지, 다양한 봄의 매력을 만날 수 있는 벚꽃길이다. 남산은 서울의 벚꽃 명소인 석촌 호수나 여의도보다 기온이 2~3도가량 낮아 벚꽃이 일주일 정도 늦게 개화한다. 벚꽃 시즌을 놓친 이들이 마지막으로 벚꽃을 볼 수 있는 장소인 셈이다. 동대입구역에서 시작해 남측 숲길 입구, 남산 약수터, 야외식물원, 사색의 공간을 지나 북측순환로 입구까지 이어지는 길로 약 4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여유가 된다면 필동에 위치한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고즈넉한 분위기 속 꽃놀이를 즐겨볼 것을 추천한다.
서울대공원
서울대공원의 호수 둘레길을 따라 벚꽃나무가 줄지어 있어 4월이면 광장처럼 넓은 거리가 온통 연분홍 꽃잎으로 물든다. 벚꽃이 만개하는매년 4월 초에는 축제가 열리는데, 중간중간 재치 있는 포토존과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는 상점이 마련돼 데이트 코스로도 제격이다. 현재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로 축제는 취소됐지만 덕분에 비교적 한적하게 벚꽃 구경을 즐길 수 있다. 단순히 벚꽃만 구경하기엔 아쉬운 이들이나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이라면 서울대공원만한 곳이 없다. 세계 각국의 야생동물이 사는 서울동물원과 다양한 놀이기구를 운영하는 서울랜드가 함께 있어 하루종일 머물러도 지루할 틈이 없다.
울산 무거천
무거천은 과거 심각한 오염을 앓았으나 경관 특화사업 이후 맑은 물이 흐르는 산책로로 탈바꿈 하면서 주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됐다. 울창한 나무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냇물, 고즈넉한 돌담이 울산 남구의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고 있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곳. 특히 옥천 3교 아래에는 깊은 산중의 폭포를 꼭 닮은 미니 폭포가 있어 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가슴이 탁 트인다. 봄이면 무거천 양옆으로 울창한 벚나무가 꽃을 피우며 터널을 만들어 봄나들이 명소가 된다. 인근 회사원이나 아파트 주민들은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포근한 봄 날씨를 만끽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대구 수성못
도심 속 잔잔한 호수와 계절마다 다른 매력을 뽐내는 청정 자연으로 유명한 수성못은 대구 시민이 꼽는 벚꽃 명소다. 봄이면 호수를 둘러싸듯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 벚꽃이 줄지어 만개하기 때문. 비처럼 쏟아지는 꽃잎을 맞으며 호숫가를 산책하다 보면 마치 한편의 영화 속에 들어 와 있는 듯하다. 수성못 일대는 유원지로 조성돼 회전목마, 미니기차, 유람선, 바이킹 등 다양한 놀이기구도 즐길 수 있다. 수성못 벚꽃길의 진가는 밤이면 배가 된다. 물빛이 형형색색으로 바뀌는 음악 분수 공연이 펼쳐져 또 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산책로에는 은은한 주홍빛 조명이 켜져 더욱 낭만적인 거리로 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