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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 달걀의 진실
4번 달걀의 진실
  • 김경선
  • 승인 2021.02.03 0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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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가 가성비를 이기는 소비

건강한 단백질을 가장 저렴하게 제공하는 음식은 달걀이다. 삶아서도 먹고, 부쳐서도 먹고, 날 것으로도 먹는 가장 대중적인 식재료. 마트에 가면 갖가지 문구로 소비를 촉진하는 수많은 브랜드의 달걀들. 그런데 이 달걀 한 알 한 알에 숫자가 써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알파벳과 숫자가 뒤섞인 암호 같은 문자들 사이에서 우리는 생각 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2017년, 유럽에서 시작된 살충제 오염 달걀 파동이 한국에 상륙했다. 유럽산 달걀에서 살충제 성분인 피프로닐이 검출됐고, 이어 국내 친환경 산란계 농장 달걀에서도 같은 성분이 발견되면서 논란은 일파만파 커졌다. 믿고 먹는 친환경 달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후 농림축산식품부는 전국 약 3천 곳의 산란계 농장에 대한 전수검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49개 농장에서 살충제 오염 달걀이 검출됐고, 관련 농장에서 생산한 달걀을 전량 폐기하며 사태는 일단락됐다.

살충제 달걀 파동을 계기로 산란계 농가의 환경, 영세 농가의 불법적인 유통 및 일원화 되지 않은 유통 과정의 문제점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그 결과 지역번호와 농장명 두 가지만 난각에 표기하던 것을 2019년부터 모든 달걀 껍질에 산란일과 농가 고유번호, 사육환경을 나타내는 총 10자리의 문자+숫자를 표기하도록 했다. 알고 보면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난각번호. 껍질 속 내용물을 무심코 소비하는 사이 우리의 알 권리가 쓰레기통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지금 당장 냉장고 속 달걀을 꺼내보자. 총 10자리의 난각번호가 새겨져 있다. 앞의 네 개 숫자는 산란일자다. 0101이면 1월 1일에 산란했다는 의미다. 이어 나오는 5개 문자는 생산자 고유번호다. 대게 알파벳과 숫자의 조합으로 표기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오는 숫자가 우리가 꼭 알아야할 정보, 사육환경번호다. 1~4까지 숫자로 표기하며 1은 방사, 2는 평사, 3은 개선된 케이지, 4는 기존 케이지에서 생산한 달걀이라는 의미다. 좀 더 적나라하게 이야기해보자.

방사는 방목장에서 자유롭게 다니도록 사육하며, 1㎡당 1마리가 생활한다. 평사는 케이지 축사를 자유롭게 다니도록 사육하며 1㎡당 9마리를 키운다. 개선된 케이지는 1㎡당 13마리다. 마지막 케이지는 1㎡당 20마리, A4 용지만한 사이즈에 닭을 사육하며 산란을 유도하는 환경이다. 좁은 환경에 다닥다닥 모여 생활하는 닭들은 스트레스로 인해 다른 닭을 쪼아 죽이거나 부상을 당하는 일이 허다하며, 바이러스나 감염에도 취약하다.

에디터의 냉장고에는 두 가지 종류의 계란이 있다. 하나는 대형마트에서 산 무항생제를 내세운 계란, 하나는 매주 배달해 먹고 있는 동물복지 계란이다. 부끄럽게도 난각번호를 지금껏 확인해보지 않았다. 기사를 쓰고 있는 지금 확인한 마지막 자리 번호. 첫 번째는 4번, 두 번째는 3번이다. 비싸게 구입해 믿고 먹었던 달걀이 1번도 2번도 아니고 3번이라니. 에디터가 동물복지 계란을 먹기 시작한 건 살충제 파동 이후 케이지 사육 닭에 대한 연민과 스트레스 없이 자란 산란계의 달걀이 더 건강할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가격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가치가 가성비를 이기는 소비, 이것이 가치소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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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씨세이모 2021-02-03 16:15:43
안녕하세요.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농림부의 산란계농장 동물복지 인증을 받으려면 1㎡당 산란계 9수를 초과해서는 안 될텐데, 구입하신 동물복지 계란이 3번이라니 이상하네요;; 혹시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게 아니라, 동물복지 용어를 자의적으로 사용한 건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