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타고 흘러가는 원시의 땅
걷고 타고 흘러가는 원시의 땅
  • 글 사진·윤인혁 기자
  • 승인 2011.04.0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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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혁의 지구 위를 걷다 | ⑮ 태국 치앙마이 트레킹

트레킹의 궁극적인 목적은 좋은 경치를 보며 마음껏 걷는 것인데 문득 꾀가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생각을 현실화 하라’는 모기업의 광고 카피처럼 꾀가 현실로 가능한 곳이 있으니 태국의 치앙마이(Chiang Mai)다.

한국을 출발해 방콕·푸켓 등으로 향하는 항공기가 매일 10여 편이 있을 정도로 태국은 한국 사람이 선호하는 해외 여행지 중 한 곳이다. 태국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남국의 파란 바다와 휴양지가 주는 느긋함이 대부분. 하지만 태국의 남부와 달리 북쪽에는 속을 알 수 없는 깊은 산악지대가 라오스·미얀마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이쪽 산악지대에는 20여 고산족이 살고 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는 전기도 차도 들어갈 수 없어 아직까지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방콕이 태국의 중심이라면 북부를 대표하는 도시는 치앙마이다. 치앙마이는 태국을 대표하는 트레킹의 성지로 소수 민족의 체취를 만나려는 트레커들이 줄을 잇는 도시다.

▲ 치앙마이 트레킹의 커다란 즐거움 중 하나인 코끼리 트레킹. 보통 2명이 타지만 짝이 안 맞으면 혼자 타기도 한다.
화려한 ‘북부의 장미’ 치앙마이
태국 제2의 도시 치앙마이는 현지인에게는 ‘북부의 장미’로, 여행자에겐 고산족 트레킹을 위한 베이스캠프로 알려져있다. 해발 고도 355m에 위치한 치앙마이는 연중 섭씨 20~25℃ 정도의 평온한 기후와 태국의 젖줄인 차오피라야 강(Chao Phraya River)의 큰 지류인 핑 강(Ping River) 연안에 위치해 있어 2모작과 각종 과일 재배가 가능한 축복의 땅이다.

이런 치앙마이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은 소수 민족을 찾아가는 고산족 트레킹 때문이다. 이 트레킹을 위해 매년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치앙마이를 찾아온다. 365일 넘쳐나는 관광객들로 인해 성수기와 비수기가 극명한 다른 도시보다 넉넉한 생활을 자랑하는 치앙마이는 도시생활의 편리함과 의료서비스가 잘 정비되어 있어 유럽 사람들이 선호하는 은퇴 이민지 중 3위 안에 손꼽힌다.

1296년 란나 왕조(Lanna KIngdom)의 멩라이 왕(King Mengrai)이 치앙마이에 수도를 세운 이후 도시는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란나 왕조 때 세운 성벽을 기준으로 안쪽은 구시가지, 밖은 신시가지로 구분한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는 지금도 남아있는 성벽의 5개 문(파투·Pratu)으로 연결된다. 5개의 문 중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문은 파투타패(Pratu Tha Phae)다. 게스트 하우스, 식당, 카페, 여행사, 환전소 등이 파투타패 근처에 몰려 있어 치앙마이에 처음 도착하는 여행자라면 이곳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하면 된다.

치앙마이 시내의 대표적인 볼거리라면 재래시장인 와로롯시장(Talat Warorot), 나이트 바자르(Night Bazaar), 치앙마이 시민들의 정신적 지주인 왓 프라싱(Wat Phra Sing) 등이다. 골목마다 들어선 300여 개의 사원과 이밖에 시장 등도 있다.

최고의 흥행 상품 ‘치앙마이 트레킹’
치앙마이를 찾는 관광객 중 90%는 트레킹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국 북부 산악지대에는 카렌족·뗀족·루아족·라후족·아카족·리수족 등 약 55만 명에 달하는 20여 소수 고산족이 살고 있다.
고산족 마을을 찾아가는 트레킹은 걷기만 하는 것에서 벗어나 걷고, 타고, 흐르는 3가지 흥행 요소를 적절히 배합했다. 걷다가 힘들만 하면 코끼리 등에 올라타고, TV 다큐멘터리 에서나 봤을 법한 고산족 마을에서 생활하며 함께 잠을 자고, 무릎이 아플만하면 대나무를 얼기설기 엮은 뗏목에 몸을 맡기니 지구상 어떤 트레킹 상품이 이처럼 다채로울까.
 

카렌족 마을 1박2일 트레킹
<DAY-1>
쪾치앙마이 → 로컬마켓 : 1시간 / 차량 이동
쪾로컬마켓 → 메탕 빌리지 : 1시간 / 차량 이동
쪾메탕 빌리지 → 코끼리 정거장(시작 포인트) : 3시간 / 도보 트레킹
쪾코끼리 탑승 : 1시간 / 코끼리 트레킹
쪾코끼리 정거장(하차 포인트) → 카렌족 빌리지 : 1시간 / 도보 트레킹
쪾카렌족 빌리지 숙박

<DAY-2>
쪾카렌족 빌리지 → 메탕 강 상류 : 1시간30분 / 도보 트레킹
쪾메탕 강 뗏목 탑승 : 1시간 / 뗏목 트레킹
쪾메탕 강 하류 → 메탕 빌리지 : 1시간 / 도보 트레킹 / 트레킹 종료
쪾메탕 빌리지 → 롱넥 카렌족 빌리지 : 1시간 / 차량 이동 / 점심
쪾롱넥 카렌족 빌리지 → 치앙마이 : 1시간 /차량 이동


▲ 카렌족 여인. 목에 링을 끼워 긴 목이 특징이다.
치앙마이 시내의 여행사나 숙소에서 프로그램을 예약하면 트레킹 당일 아침 숙소로 픽업을 나온다. 보통 8~10명 정도가 한 팀이 되어 움직인다. 영어를 하는 가이드가 앞에 서고, 영어를 못하는 보조 가이드가 맨 뒤에서 그룹을 인솔한다. 시내의 숙소를 돌아 픽업을 마치고 오전 10시 께 치앙마이 시내를 출발한다.
산행 입구엔 표지판이 없기 때문에 길이 익숙하지 않으면 여행사의 패키지를 이용하는 것이 안전하고 편리하다. 코스는 바나나·야자·커피 등 각종 과실수가 늘어서 있는 밀림과 라후족(Lahu) 마을을 지난다. 라후족은 원래 사냥에 능한 종족이었지만 산악지역에 정착하면서 야채·고추·커피 등을 키우는 농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밀림의 산 능선을 3시간 정도 걷다보니 코끼리 트레킹 정거장이 나타났다. 얌전한 코끼리 등에 얹은 바구니에 앉아 1시간가량을 이동하게 된다. 도중에 ‘코끼리 전용 바나나 매점’에서 한두 송이(한 송이에 약 20바트) 사서 코끼리에게 주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코끼리 타기가 지겨워질 무렵 다시 트레킹이 시작된다. 기분 좋은 산길을 1시간 정도 걷다보면 카렌족 마을에 도착한다. 마을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만큼 소규모 부락으로 적게는 10여 가구, 많게는 20여 가구가 트레킹 코스 곳곳에 모여 산다고 한다. 카렌족은 특유의 긴 목을 자랑하며 트레커들에게 색다른 문화를 안겨주었다.          

▲ 왓 프라싱의 누워있는 부처상. 방콕 왓포에 있는 와불상보다 약간 작다
태국 북부 고산족의 현실
숙소는 대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커다란 방이 전부다. 이곳에서 패키지에 참가한 사람들이 모두 함께 잔다. 기본적인 침구(담요, 매트리스)와 모기장이 있지만 모기장을 쳐도 날벌레가 틈으로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12~2월 이외엔 각종 곤충이 기승을 부린다.

카렌족 마을에는 전기가 없기 때문에 해가 떠있는 시간에 저녁을 먹는다. 가이드가 음식을 직접 조리하는데 도시에서 먹는 것처럼 세련된 메뉴는 기대하면 안 된다. 밥·야채볶음·닭조림·감자스튜 정도가 올라오는데 상당히 맛있다. 건기인 11~3월 사이에 트레킹을 한다면 추위에 잠을 못 이루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해가 지면 입김이 나올 정도로 기온이 내려간다. 따뜻한 옷과 침낭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고산족들은 하루를 일찍 시작한다. 해가 지면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나는 인간의 감각 시계가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삶은 계란과 토스트, 커피 등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다시 트레킹을 시작했다. 산길을 한참 걸었을까. 이번에는 대나무 뗏목이다. 3명이 한 조가 되어 1시간가량 뗏목을 타고 강 하류에 도착한다. 이후 1시간가량 산길을 걸으면 산행을 시작했던 초입에 도착한다. 치앙마이에 도착하면 숙소까지 일일이 바래다준다. 말 그대로 ‘Door to Door’ 서비스다.

태국의 고산족은 원래 중국·티베트·라오스·미얀마·베트남 등지에 살던 사람들이었으나 내전과 생활고, 정부의 탄압 등을 피해 지금의 자리에 정착했다. 그러나 잘 살기 위해 찾아온 태국에서마저 이들은 공식적으로 태국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며, 이동 또한 일정 지역 내에서만 허용되고 있다. 오히려 이들을 이용해 트레킹 상품을 만든 여행사와 태국 정부만 배를 불리는 형국이다. 하지만 고산족들은 여전히 각자의 전통과 문화를 지키며 꿋꿋이 살아가고 있다.

 윤인혁 | 여러 차례의 히말라야 고산등반과 100여 차례의 트레킹을 하며 세계 80여 개국을 돌아다녔다. 여행을 화두로 쉼 없이 움직이고 있는 자유로운 여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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