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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식재료 이야기7] 고창 수박
[제철 식재료 이야기7] 고창 수박
  • 박신영 기자 | 정영찬 사진기자
  • 승인 2020.07.07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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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수박의 비밀부터 씨없는 수박의 숨은 이야기까지

계절은 땅의 기운과 인간의 감정을 좌우한다. 여름 햇살에 오감이 만개하듯 대지의 생명은 정점을 향해 내달린다. 우리는 예부터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제철 식재료를 탐해왔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7월엔 더위를 달콤하게 식혀 주는 고창 수박이 진리다.

고창 명품 수박의 비밀
놀이터에서부터 집까지 뛰어와 등허리는 땀범벅이고 온몸은 불덩이다. 신발 한 짝은 현관 밖에 나머지는 마루에 벗어 던지고 숨을 고른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수박화채를 내어줬다. “땀 이게 뭐고. 빨리 수박 먹어라” 허겁지겁 숟가락으로 크게 화채를 떠먹자 시원하고 달콤한 향이 입안에 퍼진다. 수박 한쪽을 베어 물 때면 떠오르는 진한 여름의 맛. 그 정겨운 추억 속엔 언제나 수박이 함께다.

할머니는 수박을 살 때 항상 원산지를 물어봤다. 고창 수박이 아니라면 거들떠보지 않았던 우리 할머니. 이 수박이나 저 수박이나 모양새는 매한가지인데 그녀는 고창 수박을 고집했다. 제철과 지역에 맞는 과일을 먹어야 한 해를 잘 보낸다던 할머니는 시장에 갈 때마다 고창 수박에 대해 일장 연설을 펼치셨다.

수박의 원산지는 아프리카, 고대 이집트다. 수 세기에 걸쳐 전 세계로 퍼지다 13세기 고려 시대 몽고로 귀화한 홍다구가 개성에 심은 수박이 최초의 한국 수박이다. 그 뒤로 국내 각지에서 수박을 생산하지만 고창 수박이 유명해진 건 불과 50년 전이다.

1974년 정부는 전라북도 야산 60㎢를 콩 재배 단지로 조성했다. 그러나 콩 수요가 많지 않고 소비자가격이 높지 않아 1970년대 후반 이곳을 수박 재배 단지로 탈바꿈했다. 그중 고창에서 수박 생산이 가장 활발했는데 이는 해양성 기후의 특징인 적절한 일조량, 시원한 바닷바람, 모래 진흙이 적절히 배합된 토지가 어우러진 덕택이다.

고창의 7~9월 평균 최고 기온은 28~32℃. 수박 재배에 적합한 온도와 동일해 매해 적절한 일조량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고창은 미네랄 성분이 가득 담긴 붉은 황토로 이루어져 건강한 농작물 생산에 유리하다. 그뿐만 아니라 황토에 모래 진흙이 섞여 공기와 물의 유통이 좋고 비료 분해가 빠르다.

전북농업기술원에서도 고창 수박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기술 교육, 시설재배 연구, 현장 컨설팅을 수료한 명품 수박 아카데미 교육생을 배출해 각지에 미래 발전형 농법을 전파한다. 일반 수박은 물론 애플 수박, 블랙 망고 수박, 흑피 수박 등 시대에 맞는 수박도 개발했다. 풍족한 재배 조건을 갖추고 끊임없이 수박 연구와 개발을 시도하는 고창군. 사람들이 고창 수박을 찾는 이유를 알 법하다.

성내면의 새내기 수박 농부
100m 길이로 나란히 쭉 뻗은 초록빛 수박밭. 큼지막한 이파리를 헤집으면 동글동글한 수박이 보인다. 수박을 통통 두드리자 맑고 깨끗한 소리가 귀를 울린다.

“아직 덜 자란 수박이에요. 크기도 조금 잘죠? 이 녀석들을 맛보려면 보름은 기다려야 해요.”

옥토재 농장의 고기석 농부가 슬쩍 다가와 한마디 거든다. 고창에서 수박 농장을 한 지 고작 1년도 되지 않았다는 고 농부의 얼굴엔 열정이 가득했다.

“저는 신출내기입니다. 지난 25년간 부모님이 운영하던 수박밭을 물려받은 것뿐이에요. 서울에서 사업을 하다가 50세가 넘어가니 부모님 생각이 나더군요. 부모님 여생 동안 옆에서 보필하려고 작년 8월 고창으로 내려왔어요.”

고 농부는 고창 수박 맛부터 보라며 원두막으로 안내했다. 고 농부가 칼을 갖다 대자 수박이 쩍하고 벌어진다. 과즙이 줄줄 흘러내리는 핑크빛 과육을 한 입 베어 물자 달콤한 맛이 퍼진다. 더위가 가시고 갈증이 해소되는 건 덤이다.

“2013년 국내 최초로 고창군 전역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에 등재됐어요. 고창 갯벌, 운곡 습지 등 자연환경이 생태학적으로 우수할 뿐만 아니라 세계문화유산 고인돌과 야생동식물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동림저수지가 잘 보존됐기 때문입니다. 생태계가 잘 보존된 고창에서 고품질 명품 수박이 나오는 건 당연합니다. 고창 성내면 수박 당도가 타 지역에서 생산하는 수박보다 약 1~2Brix 높은 13Brix니까 말 다 했죠.”

고 농부는 원두막을 지나가는 할머니 농부에게 수박을 건넸다. 수박 상태, 비닐하우스 관리 등 농작물에 관한 이야기가 원두막을 채웠다.

“농사가 쉽지 않아요. 새벽부터 오후까지 땡볕 아래서 허리를 구부려야 합니다. 손으로 직접 풀을 뽑고 때맞춰 농약 뿌리며 행여나 한해 농사를 망칠까 전전긍긍하죠. 하지만 기술이 날로 좋아지고 있어요. 농업기술원에서 알려주는 최신 농사법을 배운 젊은 농부가 할머니, 할아버지 농사꾼에게 현대식 영농기술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들이 편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마을도 개발해야 하고요. 한 5년 뒤에 멋들어진 수박체험관을 만들어 관광객도 늘리고 시골 분들이 쉴 수 있는 공간도 만들고 싶어요.”

골라 먹는 수박
고창군에서는 다양한 수박을 생산한다. 외피가 짙고 씨가 거의 없는 흑피 수박, 껍질이 얇고 속은 노란빛을 띠는 블랙 망고 수박,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높은 당도를 지닌 애플 수박이다. 취향과 상황에 따라 골라 먹는 수박. 다양한 수박을 만들 수 있었던 힘은 어디 있을까.

수박 이야기를 하려면 우장춘 박사를 빼놓을 수 없다. 우 박사는 세계 최초로 씨 없는 수박을 만들어 국내 수박 산업을 한층 업그레이드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씨 없는 수박을 최초 개발한 사람은 일본의 기하라 히토시 박사다.

그렇다고 우 박사가 씨 없는 수박과 아무 관련이 없는 건 아니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우 박사는 기하라 박사 연구소의 핵심 연구원이었다. 그는 씨 없는 수박의 기초 이론인 ‘종의 합성 이론’을 최초로 증명한 장본인이다.

당시엔 같은 종을 교배해 새로운 종을 만드는 이론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우 박사는 연구 끝에 종보다 큰 범위인 속에 속한 서로 다른 종을 교배해 새로운 종을 만들었다. 새로 탄생한 종을 ‘우장춘 트라이앵글’이라 부르며 이 전체 과정이 종의 합성 이론이다. 따라서 종의 합성 이론으로 탄생한 품종은 GMO가 아니다. 씨 없는 수박의 경우 유전자 염색체 수를 늘린 것뿐, 유전자 배열을 바꾼 게 아니기 때문에 인체에 해롭지 않다.

일본에서 육종학의 권위자로 손꼽히던 우 박사는 1950년 한국 정부의 러브콜을 받는다. 우 박사의 씨 없는 수박을 통해 한국 농업인과 일반인에게 종자 산업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서다. 우 박사는 한국에 귀국하자마자 한국농업과학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종자 개량에 전념했다. 제주도에 내려가 감귤 생산을 도모하는 것부터 병충해에 강한 배추, 무, 감자 품종을 만들었다. 6.25 전쟁으로 피폐해진 우리 땅에서 우 박사의 건강한 농작물이 무럭무럭 자라 식량난을 덜어준 셈이다.

우 박사를 시작으로 국내 종자 산업은 인기를 얻고 발전할 수 있었다. 현재 식탁에서 만나는 대부분 채소와 과일이 종의 합성 이론으로 품종 개량된 것이다. 취향과 상황에 맞게 농작물을 즐길 수 있는 지금. 우장춘 박사의 씨 없는 수박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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