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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과 봄 사이
겨울과 봄 사이
  • 조혜원 기자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0.03.11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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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섬 트레킹

더 이상 섬이 아닌 섬 거제에 일찌감치 봄이 찾아왔다. 두꺼운 패딩을 벗어두고, 얇은 옷차림과 가벼운 발걸음으로 섬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산과 바다를 누볐다. 섬 트레킹의 묘미는 어디서든 고개를 돌리면 펼쳐지는 드넓은 바다, 산 정상에 서서 마주하는 소금기 어린 바람이다. 그 바람에 섞인 봄 냄새를 한껏 들이키며 봄 마중 트레킹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은 통영 토박이인 조재우 씨와 보아 앰버서더인 박현우 하이커와 함께 했다. 와일드 백이라는 포털사이트 카페에서 주최한 산행에서 만난 현우 씨와 재우 씨. 하이킹, 보드, 비박, 사진 등 다재다능한 재우 씨가 안내하는 거제는 관광지만 훑고 다닐 땐 몰랐던 풍경을 보여줬다. 재우 씨가 비박을 다닐 때만 해도 아는 사람만 아는 숨은 비박지였던 바닷가 동굴은 SNS에 인생 샷 명소로 소문나 줄 서서 사진 찍어야 하는 곳이 돼 버렸다.

숨은 명소이길 바랐던 동굴은 이름도 버젓이 있는 근포 마을 땅굴이다. 근포 마을 뒤편 바닷가에 다섯 개의 땅굴이 있는데, 모두 일제 강점기 때 포진지 용도로 굴착하다 해방이 되자 방치된 곳이다. 현재 일부는 육상 축양장 창고로 활용되고 나머지는 관광객들에게 훌륭한 사진촬영 포인트로 제 몫을 하고 있다. 땅굴 중 두 개는 내부에서 H형으로 서로 관통돼 있다. 두 땅굴의 입구가 미묘하게 다르고 비가 온 뒤 바닥에 물이 고이면 풍경이 반영돼 누구나 쉽게 멋진 사진을 남길 수 있다.

해가 저물기 전에 텐트를 피칭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려던 우리 계획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관광객의 발길에 무산되고, 의자만 먼저 꺼내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해가 저무는 풍경을 감상했다. 여수 출장을 마치고 온 에디터가 사온 여수 막걸리와 거제 저구 막걸리를 우아하게 커피처럼 마시면서.

다행히 일몰까지만 사람이 바글바글하고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자 관광객의 발길도 뜸해졌다. 땅굴 바로 앞이 바다라 아늑한 땅굴에 텐트를 치고 잔잔하게 파도치는 소리를 들으며 멋진 밤을 보낼 수 있지만, 전날 비가 와서인지 땅굴 안쪽에 습기가 가득하다. 땅굴 입구에 각자 텐트를 설치하고 긴 밤을 보내기 위해 저마다 준비해온 먹거리를 꺼내 상을 차렸다.

트레킹, 트레일 러닝, 캠핑으로 전 세계와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다니는 이들이 만나니 흥미로운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다음날 망산에서 일출을 보기로 했으니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일정한 파도 소리와 남도의 포근한 기온 덕분에 깊이 잠들어 다섯시에 개운하게 눈이 떠졌다. 간단하게 커피와 수프로 따뜻하게 속을 채우고 재우 씨가 준비해온 사과를 한 쪽씩 나눠 먹은 다음 텐트를 정리했다. 다녀간 흔적 없이 깔끔하게 뒷정리하는 것은 캠퍼의 기본.

망산 일출 산행은 명사~망산 정상~해미장골등~여차등~여차마을 코스로 두시간 남짓이면 가뿐하다. 차로 명사해수욕장까지 이동한 다음 산행을 시작했다. 거제지맥 1코스의 시작점인 망산은 해발 397m로 45분이면 정상에 닿을 수 있는 쉬운 곳이다. 거제에는 동서남북 방향으로 지맥이 있다. 대금산에서 시작해 가라산, 국사봉, 계룡산, 북병산 등을 거쳐 남쪽 끝 망산에 이르는 53km의 산줄기를 거제 남북지맥이라 부른다.

거제의 11대 명산 모두 해발고도 400~500m의 낮은 산이지만 산세와 섬에서 조망하는 풍경이 웅장해 산행 시간에 반해 높은 만족도를 준다. 해발 지점에서 시작하는 거제 산행은, 시작점이 산 중턱인 1000m가 넘는 육지의 산과 난이도가 비슷하다. 망산 정상에 올라서면 360도로 다도해 절경이 펼쳐지며, 일몰, 일출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지난밤엔 바람 한 점 없어 바다 옆이라는 것도 잊을 만큼 파도가 잔잔했는데, 새벽녘부터 바람이 점점 거세졌다. 일행은 두껍지 않은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헤드랜턴을 머리에 끼고 산행을 시작했다. 숨이 조금 찰 만큼의 경사도, 나무 사이로 부는 거센 바람에 30분가량을 말없이 올랐다. 정상에 다 온듯할 때쯤 바다가 보이는 탁 트인 곳이 나타났다. 지도를 보니 정상 바로 직전. 조금 더 힘을 내 바로 정상으로 향한다.

이른 아침 부지런을 떨며 일출을 보기 위해 망산에 올랐지만 야속하게도 짙은 구름에 가려 일출은 볼 수 없었다. 흐린 하늘 아래 펼쳐진 바다와 첩첩이 이어지는 섬은 군락을 이뤄 유영하는 고래 무리 같기도 하다.

부탄 GR BOA
밀레 X 보아 콜라보 작품

부탄 지알 보아는 1박2일 산행에 적합한 알파인 어프로치화다. 보아M4를 발등과 발목에 적용 해 산행 강도와 발 상태에 따라 다이얼을 조절해 최상의 피팅감을 느낄 수 있다. 오르막에선 발목 다이얼을 느슨하게 해 움직임이 수월하도록 하고, 하산 시엔 발목을 단단히 잡아주는 게 좋다. 부탄 지알 보아는 천연가죽 소재를 갑피 전판에 적용했으며, 튼튼한 내구성과 방·투습력, 비브람 아웃솔은 우수한 그립력을 자랑한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정상에서 내려오는 도중 짙은 구름 위로 맑은 해가 솟았다. 흐린 하늘 아래선 칙칙해 보이던 숲이 포근해 보이기 시작했다. 남부 식생 나무의 넓고 윤기나는 잎이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자세히 보니 발아래엔 이른 봄 피는 노루귀꽃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거제지맥 트레킹을 좋아하는 현우 씨가 한 여름의 풍경이 얼마나 멋진지 들려준다. 산 골과 바다에서 불어오는 습한 바람의 영향으로 나무와 돌 사이 이끼가 자라고, 파도처럼 굽이쳐 자란 낮은 나무에 잎이 가득해지면 수채화 속에 들어와있는 듯하단다. 푸르게 우거진 거제지맥의 풍경을 보기 위해 꼭 다시 오기로 약속했다.

그때 갑자기 재우 씨와 에디터의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해외에 도착해 휴대폰을 켰을 때 외교부, 소방청, 통신사에서 자동으로 오는 안내 문자들이 연이어 들어왔다. ‘잉? 내가 지금 일본이라고?’ 거제가 대마도와 가까워 가끔 이런 일이 있다고 재우 씨가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한다. 거제에서 대마도는 고작 49.5km, 맑은 날엔 망산 정상에서 대마도가 보일 만큼 가까운 거리다.

해가 뜨니 곧 훈훈한 기운이 느껴지고 마침 딱 커피 마시기 좋은 넓은 바위가 나타나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지난밤부터 돌문어, 사과를 챙겨준 재우 씨가 일행 모두 정신 없었던 아침에 언제 챙겼는지 텀블러에 담긴 따뜻한 커피를 건넸다. 발 아래 펼쳐지는 짙은 숲과 푸른 바다는 영락없는 봄 풍경이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세 날머리인 여차에 도착했다. 가벼운 아침 산행을 마치고 재우 씨가 안내하는 거제 명소에 가보기로 했다. 거제엔 동백꽃 군락지, 동백꽃 터널 등 동백 꽃 명소가 여러 곳에 있다. 그중 해금강 선착장의 유람선 타러 가는 짧은 길은 명소로 이름난 곳은 아니지만 사람도 많지 않아 조용하고 동백 꽃이 터널을 이룬다.

거제에는 몽돌 해변도 여러 곳이다. 그중 학동, 명사, 구조라가 유명하고, 학동 흑진주 해변이 1.2km로 가장 길고 관광객도 많다. 산행과 비박을 많이 하는 재우 씨가 북병산에서 내려다 본 망치 해변의 해안선 라인이 가장 유려하다고 귀뜀한다. 파도가 휩쓸고 들어왔다 자갈을 돌돌돌 굴리며 바다로 돌아가는 소리가 경쾌하다. 등산화로 거니는 몽돌해변의 발자국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명하다.

추천 거제 여행지

바람의 언덕과 신선대
거제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이자, 그만큼 꼭 가봐야 하는 곳이다. 거제가 바람이 많은 섬이라는 걸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으며, 유럽의 어느 마을인 듯 예쁜 풍차가 있는 언덕에 서서 거제 명물 핫도그를 먹어야 한다.

매미성
거제 바다 끄트머리에 유럽 고성이 숨어있다. 태풍 매미로 경작지를 잃은 백순삼 씨가 태풍으로부터 농작물을 지키기 위해 15년 동안 맨손으로 벽돌을 한 장씩 날라 지은 성이다. 개인이 쌓은 성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웅장한 규모와 건축미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공곶이
길게 이어진 동백 터널을 따라 내려가면 노란 수선화가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공곶이가 나타난다. 80대 노부부가 한평생 손수 가꾼 4 만5천여 평의 자연농원이다. 이토록 멋진 비밀의 화원이 무료로 개방돼있다. 그러니 쓰레기는 버리지 말고 흔적 없이 다녀가는 멋진 여행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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