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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미크로네시아의 무인도에서
그날, 미크로네시아의 무인도에서
  • 글 사진 윤승철
  • 승인 2018.05.22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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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웅덩이가 있는 섬

뭐야, 진짜 무인도에서?
2016년 4월 10일, 한 신문기사의 제목은 ‘야자잎으로 ‘HELP’새겨… 무인도 고립 사흘 만에 구조‘였다. 피식, 웃었다. ‘진짜 HELP라 쓰면 보이기나 하려나’ 살짝 올라간 입꼬리가 다 내려오기도 전에 구조대가 헬기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세 남자가 해변에 쓰인 ‘HELP’ 앞에서 양팔을 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당키나 할까’라던 생각이 ‘와, 정말 보이는구나’라고 바뀌는 순간이었다. 도서관 지하실에나 있는 고서를 힘겹게 찾았을 때의 쾌감처럼 짜릿했다. 이전에는 내가 정말 이렇게 무인도에 다니다 조난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이 기사를 보고 뭔가 더 자신감이 생겼다. ‘저렇게 구조신호가 잘 보이면 나도 죽진 않겠구나’

구조는 되겠구나!
2016년도라면 우리나라를 비롯해 필리핀 무인도를 많이 다니고 있었을 때다. 아이러니하게도 조난당한 사람들의 기사를 보고 오히려 저런 곳으로 가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던 게 누군가는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1%의 가능성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눈으로 확인했다.

항상 새로운 무인도에 가기 전 현지인과 동행하고, 가게 될 무인도 인근 섬에서 사람들과 머물며 그들의 문화를 배우거나 주의할 것들을 익히고 떠난다. 무전기를 가져가거나 무인도에 혼자 있더라도 일정 시간 배가 지나갈 때 거울로 신호를 주고받는 안전장치들을 마련한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는 ‘혼자 무인도에 조난당한다면?’이라는 걱정덩어리가 있었다. 내가 가는 무인도들이 태평양이나 대서양의 망망대해 가운데 점처럼 있진 않았지만, 구조신호가 공중에서 잘 보인다는 것을 확인했을 땐 걱정의 크기가 달라졌다.

문밖으로 나가다
기사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또 있었다. 미크로네시아 웨노섬의 한 무인도에서 남자 세 명이 조난당했다는 대목이었다. 미크로네시아라는 곳도 생소한데 웨노섬이라니. 여긴 섬 이름도 참 낯설다고 생각하며 구글 검색을 했다. 미크로네시아 연방의 다섯 개 섬과 주변의 작은 띠가 보였다.

토성을 횡으로 두르고 있는 고리처럼 미크로네시아 연방 섬들은 환초대가 띠를 둘러 감싸고 있었다. 정말 아름다웠다. 기사 속의 세 남자가 굳이 왜 이곳까지 왔을까 짐작 가는 사진이었다.

그들은 이 아름다운 섬들에 매료되어 표류하고 떠내려갔던 것은 아닐까. 그러다 기름이 다 떨어졌거나 파도가 생각보다 거셌거나 아니면 길을 잃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폭넓은 의미의 표류, 문밖을 나가기로 했다. 나도 그 이탈자들의 대열에 합류하기로 했다.

미크로네시아 가는 길
미크로네시아로 가는 길은 여정 자체가 만화 같다. 괌을 경유해 미크로네시아 연방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면(유나이티드 항공사만 유일하게 운항한다) 섬으로 이뤄진 미크로네시아의 4개주(축, 폼페이, 야프, 코스라에)의 도시들을 차례로 경유한다.

다시 말해 내가 괌에서 비행기를 타고 두어 시간 뒤 축주(Chuuk State)에 도착했을 때 내리지 못하면 다음 섬인 폼페이에서 내려야 한다는 뜻이다. 폼페이 다음은 마샬, 그리고 종착지가 하와이다.

돌아오는 여정은 마지막 섬까지 간 비행기가 다음 날 그대로 돌아오는 방식이다. 가려던 섬보다 먼저 내려서도, 지나서 내려서도 안 되고 잘못 내리면 최소 하루는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곳이다.

작은 비행기가 그대로 돌아오기 때문에 기장과 부기장, 스튜어디스가 같다. 서로 모두 알아보는 것이 일상이다. 비행기가 섬에 내리면 손님을 태우는 동안 스튜어디스와 기장이 함께 담배를 피우고, 점심시간에 내리는 섬에선 레스토랑에서 식사까지 하고 간다. 참 인간미가 넘치는 비행이다.

폼페이에 갈 일본인 부부가 내가 갈 웨노섬이 있는 축에서 잘못 내려 예상치 못한 여정을 축에서 보내는 것도 보았다. 간혹 날씨가 좋지 않거나 승무원 법정 근로시간이 지나면 비행기가 하루 연착되기도 한다니, 비행부터 얼마나 재밌는지.

탐험가의 마음으로
자니(Jani)와 제이제이(JJ) 두 현지인들의 안내를 받아 배를 빌려 무인도를 찾아 나섰다. 이미 여러 번 탐험대를 꾸려 다녀왔던 한국이나 팔라완 일대 무인도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뉴칼레도니아나 일본의 그것과도 달랐다.

뜨거운 태양과 바다, 눈부시게 끝없이 펼쳐진 푸름은 같은데 무언가가 다르다. 사람들이 달라서일까. 조금 둘러보니 이유를 알겠다. 수평선에 걸쳐 있는 산호대 때문이었다. 수천 년 동안 화산섬의 암초에 산호 잔존물이 쌓여 생긴 장장 34km의 거대한 산호대는 배를 타고 나가면 사방에 포진해 있었다.

새로운 대륙을 발견한 느낌이다. 마음이 편하고 푸근하다. 바다로 나왔다 발견하는 땅은 심적 안정을 준다. 먼바다에 나갔다 육지가 보이면 비로소 마음을 놓는다는 원양어선 어부들의 말이 이해됐다. 환초대는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는데, 때문에 환초대 외해로 거센 파도가 치고 있었다.

무인도 일러스트
무인도를 그리라고 하면 대개 작은 모래 언덕 하나와 야자수 두 그루, 그리고 모자를 쓴 남자 한 명이 앉아 있기 마련이다. 나 역시 무인도로 떠나기 전엔 막연하게 그런 상상을 했었다. 하지만 다녀왔던 무인도는 달랐다. 적당히 그늘이 있고 물이 있고 물고기가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어릴 적 그려온 그림 같은 무인도에 도착했다. 미크로네시아에서 세 번째와 네 번째 갔던 무인도가 그랬다.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아무것도 없는 곳, 땡볕을 피할 그늘도 없고 땅을 파도 물이 나올 리 만무하며 죽은 산호 가루들로 겹겹이 이루어진 앞바다엔 물고기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 적도의 새들 몇 마리가 있었지만 이들은 내가 오자마자 날아갔다.

낯선 곳으로 간다는 것은
낯선 곳으로 간다는 것은 때때로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가는 것이다. 장비든 음식이든 내가 가져간 것들이 무용지물이고 상식을 벗어나는 곳. 여러 무인도들을 다녀본 나로서도 이 황당한 땅에 스스로 발을 내디디고 서 있는 것이 한없이 웃기기만 했다.

현지인들도 특별한 날 소풍을 오거나 고기 때를 쫓아 근처에 왔다 잠시 앉았다 가는 무인도에 나는 왜 왔을까. 무엇을 위해 온 것일까. 왜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고 무념의 공간을 찾아다니는 걸까. 먹을 것이 많은 도시를 떠나 때때로 생명을 죽이면서까지 생존하려고 버티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간절함이 나를 이곳까지 오게 한 것일까. 낯선 땅에서 느끼는 망중한과 고요함만을 느끼고자 온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생각과 반성, 집착을 거쳐 사고의 끝을 찍게 해주는 것이 이곳 무인도인가. 어쩌면 무인도를 찾아다니는 일은 평소 채우기 힘든 새로움을 발견하는 기쁨이나 성취감, 신비로움의 복합 작용이 아닐까.

한 번도 휴대폰이나 가족, 친구나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혼자였던 적 없는 내게 주는 휴식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새벽녘, 2, 3분마다 별똥별을 볼 수 있는 남태평양 미크로네시아의 어느 무인도에서 이 글을 쓰고 있지만, 후에 낯 뜨거운 글은 아니길 바란다. 언젠간 당신만의 아지트를, 당신만의 무인도를 찾아보라 말하고 싶다.

파도도 혼자이게 되는 무인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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