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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언덕에 우뚝 서서백두대간 선자령 백패킹
  • 글 성신여자대학교 산악부 Ι 사진 양계탁
  • 승인 2017.01.08 09:58
  • 호수 140
  • 댓글 0
지금껏 여러 산을 다녔지만, 해 질 녘 선자령의 풍경은 지금까지 본 것 중 세 손가락에 들 정도로 아름다운 것이었다.

어느 토요일 오전 여덟시 경, 성신여자대학교 학생회관 302호 산악부 동아리방. 신입생 셋이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머리를 싸매고 있다. 이번 산행은 16학번 신입 부원들이 주체가 돼서 진행하는 첫 번째 백패킹이다. 미리 정해둔 메뉴에 따라 필요한 식재료를 확인 또 확인한다. 이참에는 장보기 역시 신입생들 몫이다. 내년을 대비해 선배로서 자립심을 키우고, 스스로 산행을 꾸려나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제는 어설픈 새내기가 아니에요
신입 부원들이 고심 끝에 결정한 저녁 메뉴는 육개장과 삼겹살이다. 야식은 소시지 야채 볶음과 어묵탕, 다음날 아침으로는 수프와 빵으로 정했다. 빵으로 해결하는 아침 식사는 처음이지만 일단 호기롭게 도전해보기로 했다. 빈틈없이 짜 둔 식량 계획표에 따라 최대한 저렴한 가격으로 장보기를 마쳤다.

선자령까지 향하는 길은 크게 험하지 않고 고도도 적당한 편이어서 비교적 수월하게 오를 수 있었다.

백패킹을 할 때 꼼꼼한 짐 싸기는 정말 중요하다. 제대로 패킹이 되지 않으면 걸을 때 등에 통증이 느껴지거나 자세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가방 맨 안쪽에 침낭을 넣는 것은 이제 기본이다. 바닥에 빈 곳이 없도록 착실하게 눌러 넣어야 다른 장비가 들어갈 자리를 여유롭게 확보할 수 있다. 길쭉하거나 모양이 평평하지 않은 장비를 먼저 넣고 그 사이사이를 작은 물건으로 메꾸면 편하다. 특히 등과 맞닿는 부분은 비어 있거나 불쑥 튀어나온 곳이 없도록 반드시 판판하게 만들어야 한다.
서울에서 선자령까지는 차로 세시간 반가량 걸린다. 장거리 이동시간에 처음에는 조잘조잘 시끄럽게 떠들다가 이내 조용해져서 차창 밖을 구경하거나 잠깐 눈을 붙였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선자령 입구. 채비를 단단히 했다. 드디어 뚜벅이가 돼 산을 오를 시간이 왔다.

바람이 멈추지 않는 언덕 위에서. 산은 힘들게 올라온 이에게 늘 멋진 풍경을 선물해준다.

때로는 고생도 낭만
선자령은 백패킹의 성지로 알려졌지만 눈이 오지 않아서인지 생각만큼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길이 쉽고 고도도 그리 높지 않아서 가볍게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지점에 서니 바람이 굉장해서 몸이 떨렸다. 곳곳에 우뚝 선 풍력 발전기가 눈에 띄었다. 대관령 선자령은 일 년 내내 바람이 부는 곳이다. 몇 번이나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로 이렇게나 바람이 셀 줄이야. 장갑, 모자에 버프, 패딩까지 중무장했는데도 바람의 기세가 매섭다.
날씨가 춥지만 풍경만큼은 이때까지 봐왔던 것 중 세 손가락에 들 만큼 아름답다. 산길 옆으로 작고 예쁜 들꽃들이 줄지어있었다. 벌써 봄인 줄 알고 피어난 새싹도 있고, 장구채 모양을 닮은 앙상하게 마른 꽃들도 지천이다. 시야가 탁 트이는 능선에 오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지평선 너머 높은 하늘이 무지갯빛으로 층층이 물들었다. 끝없이 보이는 산등성이 전체가 붉어졌다. 장관이 따로 없다.
해가 저물자 주위가 서서히 어두워져 헤드 랜턴을 켰다. 하늘이 거의 어두컴컴해질 무렵, 작은 풀들이 자란 언덕배기가 보였다. 정상에서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도 어렴풋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고지가 눈앞에 보였다. 여러 동의 텐트가 벌써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오늘은 그나마 적은 편이라고 했다. 눈이 내리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는 걸까.

세찬 바람에 야영지를 구축하는 일도 고역이었다. 텐트는 힘들게 설치한 만큼 따뜻한 잠자리가 돼 줬다.

야영지를 구축하는 일이 이렇게까지 어렵고 고된 적은 처음이었다. 텐트가 정신없이 펄럭여 양 끝을 손에 잡는 것조차 버거웠다. 주로 식사 준비를 도맡아 해온 신입 부원들에게 텐트 세우기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찬 바람에 손가락이 얼어 통증마저 느껴졌다. 애꿎은 바람에 한바탕 고역을 치르고 보니 폴대가 바람을 못 이겨 휘청휘청했다. “와, 바람 봐.” “오늘 밤 진짜 춥겠다.” 걱정이 커졌다.

선자령 풍차 앞에서 다 같이 한 컷!

배낭에서 식재료를 꺼내 일용할 양식을 짓기 시작했다. 쌀과 물을 부어 밥을 안치고 냄비에는 즉석 육개장을 끓였다. “이번엔 특별히 국내산 삼겹살이다!” “와아!” 산에서 쌈무와 쌈장을 곁들여 흡입하는 고기의 맛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최고다. 식사를 마치고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슬슬 야식이 당겼다. 불고기 양념에 소시지와 양파를 아낌없이 넣은 소시지 야채볶음. 평소보다 더 맛있게 됐다. 어묵탕은 아쉽지만 배가 불러 다음 산행을 기약하기로 했다.
함께 꼭 붙어 앉은 부원들의 온기 때문인지 텐트 안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세찬 바람에 텐트가 안쪽으로 휘는 모양새는 무서울 정도였지만 말이다. 덕분에 가장자리에 앉은 부원은 지구를 떠받친 아틀라스처럼 텐트를 머리와 어깨로 지고 있어야 했다. 겨울 백패킹의 밤은 쉽게 잠들기 어렵다. 체온이 많이 떨어져 몸이 으슬으슬하기도 하고, 요란한 바람 소리도 잠드는 것을 방해한다. “이럴 땐 술 한 잔씩 하고 뻗어야 해.” 술기운 때문인지 난로를 켜둔 텐트 안이 너무 따뜻해서인지 하나같이 얼굴이 빨개진 채로 금세 잠들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가 요란해졌다.

바람의 나라 선자령으로
빨리 해가 뜨고 바람이 잦아들길 바라며 눈을 감았는데, 아침에도 날씨는 여전했다. 볼일을 본답시고 텐트를 벗어나 방심한 사이 손에 들고 있던 화장지가 날아가 버렸다. 급작스러운 바람의 공격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신입생들은 일찌감치 기상해서 아침을 준비했다. 수프와 빵은 조리가 간편해 좋았지만, 역시 아침 속을 든든하게 해주는 건 밥만 한 것이 없다.
텐트 사이트를 출발해 백두대간 정상까지는 불과 100m가 채 안 됐다. 몸이 서서히 풀릴 때쯤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끝없이 뻗은 벌판 위 수풀 사이로 어우러진 풍차들. 잊을 수 없는 경관이 눈앞에 펼쳐졌다. 산행지는 매번 달라지지만, 힘들게 오른 만큼 멋진 풍경을 선물 받는 것만큼은 언제나 한결같다.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너른 벌판 위 우뚝 솟은 풍차들. 결코 잊을 수 없을 장관이었다.

하산을 서두르는데, 누군가 지팡이로 쓸 만한 기다랗고 튼튼한 나뭇가지를 주워왔다. “이 지팡이를 대마법사 지팡이라고 부르자!” 대마법사 지팡이에 기대 내려오는 선자령 길은 그야말로 동화 속에 들어온 것처럼 예쁘고 환상적이었다. 이 길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하산길은 생각보다 더 짧아서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고 말았다. “다음에 눈이 오면 꼭 다시 한번 오자!” 서로를 토닥이며 아쉬움을 달랬다. 2017년에는 또 새로운 얼굴들과 함께 산에 오를 터다. 그때도 지금처럼 즐겁고 포근했으면 좋겠다.

글 성신여자대학교 산악부 Ι 사진 양계탁  hye@outdo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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