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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오면 머나먼 오제의 하늘이 그리워라
여름이 오면 머나먼 오제의 하늘이 그리워라
  • 김경선 차장
  • 승인 2016.07.18 11: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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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제국립공원…일본 후쿠시마현·군마현·니가타현·토치기현 아우르는 혼슈 최대 고층습원

오제 습지의 아침이 밝았다. 2000m 급 산군이 둘러싼 거대한 습지가 물안개에 뒤덮여 신비로운 풍경을 자아냈다. 하얀 기류가 흘러 넘쳐 히우치가타케 산과 초록 습원을 넘나들며 기묘한 풍경을 연출하자 자연이 만들어낸 몽환적인 풍경에 발걸음이 점차 습지로 빨려 들어갔다.

▲ 오제 습지에는 약 1700개에 치토우(작은 연못이나 늪)이 곳곳에 있다. 맑고 투명한 습지의 연못에는 수련을 비롯해 다양한 식생이 살아 숨쉬고 있다.

여름의 오제는 각시원추리가 만발하고 참나리, 엉겅퀴 등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한낮의 열기는 습지를 더욱 풍요롭게 어루만지고, 그림 같은 석양이 아쉬움을 남긴 채 산너울 너머로 사라지면 반딧불의 반짝임과 쏟아질 듯 한 별빛이 오제의 밤을 가득 수놓았다.

신비의 땅으로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275km, 차로 4시간 반을 꼬박 달려야만 들어설 수 있는 곳. 휴대전화조차 터지지 않는 이 깊고 깊은 오지는 쉽사리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뜨거운 열기가 대지를 달구는 7월에도 아침·저녁이면 싸늘한 냉기로 몸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1400m 고지대. 한 번이라도 다녀온 사람이라면 칭송해 마지않는 이 땅이 점점 궁금해졌다.

▲ 오제국립공원 동쪽에 자리한 오제누마 호수.

오제(尾瀨)는 일본 후쿠시마현과 군마현, 니가타현, 토치기현을 아우르는 규모 372㎢의 국립공원이다. 일본 100대 명산에 속하는 동북부 최고봉 히우치가타케(燧ケ岳, 2,356m) 산과 시부츠(至仏山, 2,228m) 산 등이 둘러싼 고층습원은 도쿄돔 170개를 합쳐 놓은 거대한 분지로 일 년에 약 6개월(4월 말~11월 초)만 제 모습을 공개한다.

1박 2일 여정의 시작점은 국립공원 북쪽에 자리한 오제미이케(尾瀨御池). 이곳에서 히우치가타케 산을 중심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둘레길 트레킹을 하거나, 버스를 타고 시계 방향으로 돌아 동쪽 들머리 누마야마토오게(沼山峠) 고개로 접근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한국 여행사 브라이트스푼이 주관하고 일본 후쿠시마현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이번 팸투어의 일행은 총 12명. 우리는 버스를 타고 15분을 달려 누마야마토오게에 도착했다.

▲ 흐드러지게 핀 각시원추리를 만끽하며 걷는 트레커들의 입에서 연신 탄성이 흘러나왔다.4. 오제국립공원 동쪽에 자리한 오제누마 호수.
▲ 치토우는 광활한 습지에서 만나는 색다른 즐거움이다. 산과 습지, 자작나무 군락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구름 위의 화원, 오에 습원

울창한 숲으로 들어서자 오제를 관통하는 목도가 이어졌다. 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오제 전역에 퍼져있는 목도는 총 65km. 폭 50cm의 목도를 따라 30여 분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서자 드디어 습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제, 이곳은 그동안 보았던 풍경이 아니다. 압도와 숭고의 또 다른 이름. 들판처럼 드넓게 펼쳐지는 오에 습원 너머 오제누마 호수가 습한 호흡을 내쉬었다. 여행자의 걸음을 반기는 것은 7월이 한창인 샛노란 각시원추리다. 습원을 가득 메운 각시원추리 군락은 화사한 꽃망울을 터트린 채 맨얼굴을 수줍게 드러냈다.

▲ 오제국립공원은 모든 길이 목도로 이어진다. 고요한 습지를 걷다 보면 대자연 안에서 오롯이 ‘나’를 느낄 수 있다.
▲ 오제국립공원에서 가장 높은 산인 히우치가타케 산. 어느 들머리에서 접근해도 3~4시간 이면 정상을 밟을 수 있다.

▲ 류구 산장은 뒤로는 히우치가타케 산을, 앞으로는 시부츠 산을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스고이~”
트레커들의 입에서 감탄이 절로 튀어나왔다. 하늘은 한없이 맑았고, 장인이 섬세하게 그린 듯 한 구름은 오에 습원의 풍경을 완성하는 신의 한수였다.

두 줄로 이어지는 목도가 잠시 정체다. 고운 자태를 뽐내는 원추리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가던 길을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감탄사와 카메라 셔터 소리가 뒤엉킨 습원의 초입은 고요를 가장한 동요로 일렁였다.

오제는 당일 트레킹도 가능하지만, 대자연을 온전히 느끼려면 최소 1박 2일이 필요하다. 습원의 낮과 밤, 그리고 이른 아침의 영롱함을 만끽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누마야마토게 고개를 시작으로 오에 습원~오제누마 호수~누마지리다이라~미하라시~류구~산조노타키 폭포~오제미이케로 이어지는 구간을 1박 2일 일정으로 걷기로 했다. 히우치가타케 산 둘레를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도는 코스다.


습지생태계의 비밀, 풍부한 눈

오에 습원에서 오제누마 호수 북쪽 둘레를 따르는 목도로 들어섰다. 야트막한 언덕길을 수시로 오르내리며 습원과는 또 다른 울창한 숲을 만끽하는 구간이다. 전날 내린 비로 질척해진 숲길에 지쳐갈 무렵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잔잔한 규모의 습원이 지루할 틈 없는 풍경을 선물했다. 오제누마 호수가 끝날 때 즈음 누마지리다이라에서 점심을 먹고 오누마 습원을 돌아봤다. 습원 곳곳에는 작은 연못인 치토우가 곳곳에 자리했고, 수면 위에는 각시수련이 하얀 꽃망울을 새초롬하게 뽐냈다.

오제 습지에는 작은 연못과 늪을 가리키는 치토우(池塘)가 약 1800개에 달한다. 강이 남긴 흔적으로 오제 습원의 독특한 생성 과정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약 5만 년 전까지 오제 습지는 분지가 아니었다. 그러다 화산 폭발로 인해 히우치가타케 산이 솟아났고, 산에서 흘러 나온 토사가 쌓여 약 1만 년 전 사방이 막힌 분지가 형성됐다. 이로 인해 오제를 관통하던 골짜기가 막히고 흐르는 물을 봉쇄해 거대한 습원이 만들어졌다. 지금도 오제 습지의 풍부한 물은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것이 아닌 눈과 비의 산물이다. 11월부터 5월까지 긴 겨울을 보내는 동안 약 2m가 넘는 눈이 오제를 뒤덮고, 봄이 돼 눈이 녹으면 풍부한 물을 공급해 습지 생태계를 지탱한다.

▲ 해가 너머가자 시부츠 산과 구름이 황홀한 석양을 선물했다.
▲ 오제의 밤을 알리는 자작나무와 초등달.

이제 길은 누마지리가와 강을 따라 숲길로 들어섰다. 강이라고 하지만 계곡 수준이다. 그렇게 숲길을 따른 지 2시간 여. 길은 드디어 숲을 벗어나 산장촌 미하라시(見晴)에 닿았다. 미하라시는 오제국립공원의 하이라이트인 오제가하라(尾瀬ヶ原) 습원의 입구다. 오제가하라는 남북 3km, 동서 6km, 면적 8㎢에 달하는 거대 습지로 산나물과 야생화의 천국이다.

오제가하라로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우와~”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드넓은 습지와 지평선을 가로막은 시부츠 산의 절묘한 조화. 초록 물결이 넘실대는 습지의 노래가 오제가하라를 가득 채웠다. 경이로운 풍경에 잠시 할 말을 잃는 사이 바람이 습원을 휘돌아 온 몸을 감쌌다. 갑자기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래, 이게 바로 행복이다.

첫날의 목적지 류구(龍宮) 산장에 도착했다. 누마야마토게부터 류구 산장까지는 약 11km로 5시간 정도 소요되는 거리다. 오제 습원 한복판에 덩그러니 자리한 산장은 오래됐지만 일본 특유의 깔끔함이 인상적이었다. 물이 풍부한 오제답게 뜨거운 물로 샤워도 가능하다. 다만 습원의 오염을 막고자 샴푸·린스·비누·치약 등의 사용은 금지. 5시에 이른 저녁을 먹고 나자 오제의 석양을 보려는 트레커들이 산장 앞 습지로 모여들었다. 7월 10일 오제의 일몰 시간은 오후 6시 59분. 6시가 넘어가면서 햇살이 사라진 습원의 공기가 서늘해졌다.

▲ 오제의 아침은 영롱하다. 이슬이 내려앉은 거미줄조차 아름다웠다.
반딧불과 별빛이 내려앉은 오제가하라의 밤
오제의 석양은 귀하다. 한낮의 날씨가 맑아도 쉽사리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1400m 고지답게 습지를 떠도는 구름의 물결이 석양의 아름다움을 앗아가 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운이 좋았는지 능선이 붉은 기운으로 서서히 물들어 갔다. 그렇게 오제는 또 한 번 변신했다.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 사이 일본 NHK 다큐 촬영팀도 섞여 있었다. 3주 간 오제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는 그들도 오늘처럼 붉은 노을은 처음 본다며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 해는 시부츠 산 너머로 사라졌다.

오제가하라에 금세 어둠이 내려앉았다. 산장 소등 시간은 저녁 9시. 모여든 사람들이 하나둘 산장으로 되돌아가자 습지가 고요 속으로 침잠했다. 다음 날 일출 시간은 4시 33분. 새벽 같이 일어나려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하는데 쉽사리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인적 없는 습지 벤치에 눕자 하늘을 가득 메운 별빛의 향연에 마음이 울렁인다.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별무리에 젖어갈 무렵 ‘깜박~ 깜박~’ 반딧불 한 마리가 순식간에 습지로 사라졌다. 달빛이 은은하게 내려앉은 습지에 반딧불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반딧불을 보기 위해 뒤늦게 합류한 일행의 입에서 감탄사가 끊이질 않았다. 발치에 가득한 반딧불과 하늘을 가득 메운 별빛에 취한 그 순간 누군가 말했다. “이건 정말 보너스다.” 피곤에 젖어 이른 잠을 청했으면 보지 못했을 오제의 밤. 맞다. 이건 정말 오제의 숨은 선물이다.

새벽, 꿈결 같은 몽환의 풍경
새벽 3시 반. 알람이 비명을 질러댔다. 쉽사리 떠지지 않는 눈을 겨우 뜨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은 채 서둘러 산장 밖으로 나오자 싸늘한 냉기에 몸이 움츠러들기도 잠시, 풍경이 추위를 압도했다. 히우치가타케 산의 검은 실루엣을 휘감는 뿌연 안개가 습지를 맴돌아 자작나무 군락을 감싸 안는 그 꿈결 같은 풍경에 취해 발걸음은 어느새 습지로 빨려 들어갔다. 여명이 점차 밝아지자 안개의 율동은 더욱 격렬해지고, 습지는 바람에 이리저리 춤을 추었다. 현실 같지 않은 기묘한 풍경에 셔터를 누르는 손길이 더욱 빨라졌다. 두터운 안개에 가렸던 해가 어느새 히우치가타케 산 위로 떠오르면 새벽의 몽환적인 풍경은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오제의 하루가 또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 오제국립공원에 자리한 수많은 산장의 생필품은 짐꾼인 봇카가 책임진다. 커다란 지게를 지고 짐을 운반하는 봇카.
▲ 80m 절벽을 내달리는 산조노타키 폭포의 웅장한 모습.

▲ 오제국립공원에서 가장 높은 산인 히우치가타케 산. 어느 들머리에서 접근해도 3~4시간 이면 정상을 밟을 수 있다.
산장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다시 목도에 올랐다. 습지, 습지, 또 습지. 오제가하라의 속살을 원 없이 만끽하는 구간이다. 마지막 산장촌인 오제가하라 온천 휴게소를 지나면서 잠시 습지와는 이별이다. 이곳부터 산조노타키(三条) 폭포로 향하는 길은 숲길이다. 폭포까지는 표고차 150m. 급경사를 30여 분 내려가야 그 비경을 보여준다. 질척거리는 산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서자 ‘콸콸콸콸’ 산조노타키가 낮은 비명을 질러댔다. 80m 절벽 아래로 내리꽂히는 폭포의 웅장함에 흐르던 땀도 말라버릴 듯했다.

이제 목도는 긴 숲을 지난다. 오제와 작별하는 길이 제법 힘들다.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와 습한 열기가 구슬땀이 되어 뚝뚝 떨어졌다. 거대한 너도밤나무 군락을 따라 잔잔한 오르내리막이 끝없이 이어지는 길은 오제를 잊지 말라는 당부인 듯 발걸음을 붙잡았다. 지루한 숲길에 지쳐갈 무렵 나타나는 가미타시로 습원은 오제에서 만나는 마지막 습지다. 고립과 해방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변주를 멈추지 않는 오제의 길은 마지막까지 찬란했다.

오제는 ‘물’이다. 신비의 시초는 모두 물에서 시작한다. 물이 내어주는 풍요로움과 생동감이 살아 넘치는 곳. 봄이면 물파초가, 여름이면 각시원추리가 군락을 이루고 앉은부채, 동이나물, 처녀치마, 붓꽃이 철마다 만발하는 신비의 땅이 한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을 듯하다.

▲ 7월이면 오에 습원을 가득 메우는 각시원추리.
▲ 바닷속 생물처럼 신비로운 수정난풀.

▲ 벌이 내려앉은 엉겅퀴.
▲ 보랏빛이 아름다운 제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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