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의 패러글라이더
히말라야의 패러글라이더
  • 이지혜 기자|사진제공 박정헌
  • 승인 2015.10.26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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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DOOR INSIGHT ④박정헌 인터뷰

삶은 계속된다는 상투적인 말 속에 숨은 치열함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각자의 좌절과 고난을 겪으면서 그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가는 것이 사람이다. 그것이 비록 여덟 손가락을 잃은 등산가라도 말이다. 그의 희망은 패러글라이딩이었다.

히말라야에 바친 여덟 손가락
산악인으로 유명했던 박정헌 대장은 안나푸르나와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한국 최초로 등정한 전문가였다. 8000m 고봉 8좌 정복의 기록을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았던 2005년, 박정헌 대장은 히말라야 촐라체 북벽(6440m)을 세계 최초로 등반한다. 하지만 하산 중 끔찍한 사고에 맞닥뜨려야 했다.

하산길에 후배 최강식이 크레바스(crevasse)에 빠지는 사고를 당한 것. 자일로 서로의 몸을 연결하고 있었기에 추락하는 순간 박정헌 대장의 갈비뼈도 부러졌다. 최강식의 무게는 장비를 합쳐 90kg이 넘었다. 하지만 겨우 70kg이던 박정헌 대장은 최강식의 자일을 9일간 끊지 못했다.

히말라야에서 저승사자를 3번 만났었다는 그는 이 사고당시의 아찔하고 고통스러웠던 순간, 이제 마지막이라고 인정해야 했던 그 처절한 순간에도 오직 히말라야를 다시 오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히말라야 등반 250년의 역사 중 이 크레바스에 빠졌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은 세계에서 단 2명, 짐 심슨과 최강식 두 명이 되었다.

홀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 그 속에서 박정헌 대장은 또 다른 인간애를 찾았다. 9일 만에 구조된 그는 여덟 개의 손가락을 히말라야에 바쳤다. 사고 이후 박정헌 대장은 지독하리만치 히말라야에 매달렸다. 두 발로 히말라야를 갈 수 없다면, 날아서라도 가겠다는 집념이 그를 사로잡은 것. 이후 그는 히말라야에 갔고, 정말로 날았다.

이카로스의 꿈
박정헌 대장은 2007년 유라시아 대륙 횡단 이후 2년을 준비하며 히말라야 횡단 원정대를 꾸리기 시작했다. ‘이카로스의 꿈’이라는 방송으로 많이 알려진 히말라야 횡단 원정대는 2012년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산맥 2400km를 넘었다.

사실 예전 산악인들은 등산과 함께 의례적으로 패러글라이딩을 배웠다고 한다. 배워두면 언젠가는 사용할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박정헌 대장도 본격적으로 등산을 시작할 무렵에 패러글라이딩을 배웠다고 전했다. 산악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필수로 배워야 하는 종목이 바로 패러글라이딩이었다.

그러나 패러글라이딩이 하나의 레저스포츠가 되기 시작하고, 차로 장비를 이동시키는 일이 많아지면서 오늘날에는 배우는 산악인들은 거의 없다.

가능한 최소의 장비와 고스란히 자신의 육체로 자연과 당당히 마주하여 이겨내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반칙 기술’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박정헌 대장에게 패러글라이딩은 ‘반칙’이 아닌 ‘또 다른 희망’이었다.

올 초, 박정헌 대장은 파키스탄부터 티베트, 네팔을 거쳐 동쪽 인도 시킴까지 장장 6600km를 180일간 날았다. 귀국한 그는 또 다시 히말라야로 떠나겠다고 말했다. 히말라야는 그의 여덟 손가락을 가져간 대신 무한한 자유를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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