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해변
하도해변
  • 글 사진 최상식 기자
  • 승인 2015.08.0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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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씨의 캠핑이야기

송악산 주변에서 캠핑을 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누웠는데 오랜만에 준혁이 형에게 연락이 왔다. 갑작스레 생긴 휴가로 제주에 캠핑하러 왔는데 얼굴이나 보자기에 그러마했다. 늦은 밤이라 짧은 대화를 주고받고 긴 얘기는 내일로 미룬 채 잠에 들었다. 다음날 제주 동쪽으로 캠핑을 가기 위해 장비를 챙기다 보니 오후가 되었고, 형에게 연락하기로 했던 것도 잊고 있다가 부랴부랴 전화를 걸었다. 그날 저녁에 제주에 사는 지인들과 캠핑을 하기로 했기에 불편하지 않으면 같이 놀자고 했다.

육지에서 내려와 제주에 살고 있는 친구들과 함께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광치기 해변에서 늦은 밤까지 캠핑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십대 후반부터 삼십대 중반인 우리들 중 준혁이 형 한 사람만 육지에서 왔을 뿐, 나머지 친구들은 제주에서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째 살고 있다. 저마다 하는 일도 다른 친구들이 그저 제주라는 곳이 좋아서 모였다. 우도에서 카페를 하는 친구도 있고, 부동산업에 종사하는 친구도 있으며, 승선업체에서 근무하는 친구도 있다. 대화를 나눌수록 밤은 깊어갔고, 출근을 위해 집으로 돌아간 몇 명을 제외하니 절반의 인원이 남았다. 딱 적당한 인원의 사람들 속에서 집중되지 않고 오갈 데 없던 언어들이 우리의 대화 사이에 머물러서 더 좋았다.

저녁 내내 밤하늘에 머물던 구름들도 사라지고 고개를 들어보니 성산일출봉 위로 별들이 반짝거렸다. 고기잡이 나간 배들은 무얼 그리 잡아오는지 일출봉 주위를 배회하며 움직였다. 그 밤의 풍경은 제주의 바람을 듬뿍 담아 우리 마음의 먼지들을 탈탈 털어내주었다.

새벽까지 남았던 멤버 중에서 은희 누나와 재영이는 직장동료다. 동갑내기 친구 재영이는 술이 한 잔 두 잔 넘어가면서 헛헛해진 마음을 털어놓았다. 애틋한 사이였던 남동생이 몇 달 전 장가를 가서 자기도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처음엔 말수가 적었던 은희 누나도 술이 연거푸 들어가면서 특유의 쾌활함으로 대화 내내 분위기를 즐겁게 해주었다. 준혁이 형은 오랜만에 온 제주에 그냥 이런 좋은 사람들과 배경을 보며 캠핑하는 것만으로도 좋아 보였다.

밤을 새며 얘기를 나눈 우리는 아침 해를 보며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니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싫을 만큼 바람이 솔솔 텐트 안으로 시원하게 불어왔다. 라면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지인들을 보냈고, 준혁이 형은 제주시에 스쿠터를 가지러 갔다. 저녁엔 다른 곳에서 캠핑을 하기로 하고 장소를 물색했다. 생각해보니 하도해변에선 캠핑을 안 한 지가 오래인지라 괜찮겠다 싶어 갔는데, 오월 말임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캠핑과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출입구의 지퍼를 열면 우도를 바라볼 수 있게 텐트를 설치하고 음식을 준비했다. 시간이 남아 석양에 물드는 저녁하늘을 보면서 형을 기다렸다.

석양에 번진 구름이 절정의 색감을 뽐낼 즈음에 형이 도착했다. 형이 텐트를 치는 동안 나는 고기를 굽고 찌개를 데우고 밥을 식혔다.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술 한 잔 기울이며 어제 다하지 못한 서로의 안부를 나누며 시간을 채워갔다. 오고가는 대화 속에 스물 스물한 살 적, 갓 사회에 발을 들여놓았던 지난 시절의 추억들이 오롯이 영화 속 필름처럼 스쳐갔다. 그동안 서로의 소식은 오고가는 사람들 속에 가끔 듣고 몇 년에 한 번씩 만났다. 얼핏 형의 말과 표정 속에서 삶의 고단함이 묻어나기도 했지만 누구인들 인생에 행복만 있겠는가. 이렇게 여유롭게 캠핑을 하면서 대화를 나눈 건 처음이기에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것보다 더 뜻 깊은 시간을 보냈다.

불어오는 바람과 푸른 하늘, 에메랄드빛 바다. 그리고 저 멀리 우도가 아름답고 눈부시게 빛나는 오월 말의 찬란한 낮이다. 지금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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