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씨의 캠핑이야기
12월이 시작되자마자 가을 같던 날씨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장마가 다시 시작된 것처럼 눈비가 내리고 제주 특유의 강한 겨울바람이 함께 불어왔다. 두꺼운 재킷을 입어야만 되는 계절이 어느새 곁에 성큼 와버린 것이다. 한라산에도 눈이 쌓이면서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었다.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드디어 눈비가 잠시 멈추고, 맑은 하늘에 구름이 흐르는 날이 찾아왔다.
일주도로를 달리면서 방향을 틀어 산록도로에 올랐다. 전망이 좋은 곳에 차를 세웠다. 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빛들이 환하고 눈부시게 바다를 비추고 있다. 뒤를 돌면 한라산의 봉우리들이 보인다. 하얀 설경에 쌓인 봉우리들은 감탄사를 절로 내뱉게 한다. 겨울 산의 설경은 산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이다.
그래서 요즘은 눈 온 뒤 맑은 날만 되면 겨울 산이 주는 황홀함을 만나고자 여러 번 찾아간다. 그중 최고는 저녁 풍경이다. 산을 매우 좋아하는 분의 글 중에서 내가 오래 기억하는 글이 있다. ‘산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해가 뜰 때와 질 때이다.’ 한라산의 겨울 설경을 마주할 때마다 그 문구가 머릿속에 자막처럼 흘러간다.
좋은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좋은 사람들과 이 풍경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꿈과 일 사이에서 번민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상처와 고통에 이미 지쳐있는 지인들의 모습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 사람들이 바다의 물빛이나 석양 그리고 나무숲의 청량한 공기에 좋아하는 모습들이 떠오른다. 풍경이 주는 위로가 무언지 알기에 이 풍경 또한 같이 보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오후 5시가 넘어가고 해 그림자가 길어지면 산은 점점 더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한다. 짧지만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겨울 산의 황홀함. 석양빛이 산을 황홀하게 하는 그 시간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순간, 구름들이 산을 감싸기 시작한다. 산을 물들인 빛들이 사라지기 전에, 한라산이 구름 사이로 드러날 때의 모습을 한 장이라도 더 담기 위해 카메라의 셔터를 계속 누른다.
아쉬워하면서 그 사이로 살짝 드러난 영실이나마 담으려 애를 쓰지만 마음이 원하는 풍경을 담기가 쉽지 않다. 렌즈의 캡을 씌우고 앞에 보이는 그 찰나의 시간을 눈과 마음에 담는다. 산을 물들인 빛들이 사라졌다. 어느새 밤하늘엔 선명해지는 달빛이 밤의 주인공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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