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네팔. 그동안 고마웠어
안녕, 네팔. 그동안 고마웠어
  • 글 사진 김경희 기자
  • 승인 2014.12.2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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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KKING | 네팔3

얼굴엔 하얗게 핏기가 사라지고 다크서클이 광대뼈 아래까지 내려왔다. 입술은 강한 햇볕 때문인지 수분 부족 때문인지 계속해서 말라져만 간다. 두통이 심해지고 메스꺼움으로 견딜 수가 없다. 고산병이다. 4000m를 넘어가는 구간은 두려운 미지의 세계로 다가온다.

고산병에 대처하는 자세
네팔 트레킹이 절정에 이르는 남은 이틀.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여정이 좋은 추억으로, 혹은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으로 남게 된다. 고산병 때문이다. 보통 고산병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서는 하루에 300~500m 정도의 고도를 오르는 곳이 좋다고 한다. 하지만 이틀 동안의 일정으로는 시누와(2360m)에서 데우랄리(3230m)까지 13.3km, 데우랄리에서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4130m)까지 7.8km를 올라야한다. 고라파니(2860m)에서 이미 컨디션 난조가 있었고 이번에는 4130m까지 올라야하기 때문에 걷기 시작부터 걱정이 앞섰다.

고산병 예방에는 이뇨제인 다이아막스(Diamax)가 좋다고 한다. 그런데 처방전이 있어야 구입이 가능했고 출발 전에는 시간이 없다 보니 고작 챙겨온 것이 타이레놀뿐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컨디션 조절을 잘 하는 것과 경험자에게 예방법이나 대처법을 묻는 것이었다. 트레킹 도중에 만나는 사람에게 고산병에 관한 정보라도 얻게 되면 바로 꼼꼼히 메모를 했다. 그렇게 얻게 된 정보나 물품은 큰 탈 없이 일정을 마치는데 도움이 됐다.

공항에 픽업을 나왔던 가이드 키솔은 혹시나 머리가 아프면 물통에 따뜻한 물을 담아서 목 베개처럼 베고 자라고 일러주었고, 촘롱에서 만난 한 친구는 자신이 먹고 남은 고산병 예방약과 비아그라, 핫팩과 다리 피로를 없애주는 쿨링팩을 주었다. 갈릭 수프와 생강차가 좋다는 말도 덧붙여 트레킹 마지막 날까지 매 식사마다 갈릭 수프를 먹었다.

트레킹 클라이맥스
사실 코스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밤부에서 도반에 이르는 구간은 내리막과 오르막이 반복되긴 하지만 대체로 한국의 산세에 비해 험하지는 않았다. 3000m 지점인 데우랄리에 가까워지자 나무보다 바위가 더 많이 보였고, 어김없이 오후에는 비가 와서 계곡물은 사납게 넘실거렸다.

데우랄리에서 중간지점인 MBC(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3700m)까지는 마치 사막을 걷고 있는 듯했다. 중간에 쉬어갈 수 있는 그늘 한 조각 찾을 수가 없었다. 조금 지나고 나니 설원이 펼쳐지고 심한 안개로 시야가 아득하기만 하다. 천천히 걸었지만 도착 직전에는 머리와 몸이 너무 무거워 한 발짝 옮기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겨우 도착한 숙소는 반대로 뜨거운 햇살이 가득해서, 의자에 앉아 깜빡 졸고 말았다. 하루 만에 경험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기후변화가 크다.

아침 일찍 일어나 숙소 뒤로 가보니 히운출리 봉우리, 남봉, 안나푸르나 제1봉, 마차푸차레 등 6000~ 8000m의 고산들이 베이스캠프를 둘러싸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성벽에 갇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차푸차레 뒤로 떠오르는 태양이 맞은편 봉우리들을 비추자 카메라로는 함부로 담을 수 없는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졌다. 몇 번이고 셔터를 누른 뒤 하산을 시작했다. 날씨는 쾌청하게 개여 쌓였던 눈들이 대부분 녹고 없었다. 전혀 새로운 곳을 걷고 있는 듯 했다.

여전히 시누와 촘롱 구간은 힘이 들었지만 조금 적응이 되었는지 체감 시간은 짧게 느껴졌다. 클라이맥스를 지나고 나니 어느새 트레킹의 끝자락에 도달하고 있었다.

포카라에서의 휴식
9일간의 트레킹으로 지친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포카라에서 4일 휴식을 계획했다. 기간 동안 가능하다면 패러글라이딩, 래프팅에 도전하고 페와 호 주변을 산책할 요량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포카라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이곳의 일상적인 모습을 마주하고 싶었다.

패러글라이딩은 사랑곳이라는 지역에서 진행하는데, 약 1400m의 지점에서 시작해 30분가량 즐길 수 있다. 기류를 타고 1500m를 넘어 계속 오르니 긴장해 땀이 났다. ‘빨리 땅을 밟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맑은 하늘에서 바라본 포카라의 전경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포카라에서의 휴식이 비로소 즐거워지는 순간이었다.

숙소가 레이크 사이드 로드 끝자락에 위치에 있어 길을 따라 피시 타일 롯지까지 걸어볼까 생각했다. 그런데 35도가 넘는 이곳 날씨에 왕복 10km가 넘는 길을 걸었다간 휴식이 아닌 고행이 될 듯했다. 오후 4시 정도에 외출해서 산책을 한다면 더위도 피할 수 있고 멋진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데 그 사실을 포카라를 떠나기 전날에야 알았다.

다음을 기약하다
ABC트레킹과 포카라에서의 휴식을 계획할 때만 해도 평생 두 번은 오지 못할 곳이라 생각했다. 고산을 걷는 일 또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하산을 하면서 보니 다른 지역의 트레킹에도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이 든다. 익숙하지 않은 높은 해발고도에서의 생활과 한국에 비해 열악한 주거 환경. 당시에는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것이야말로 네팔을 떠올리게 하는 가장 정직한 기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국에 돌아와 건강검진을 했다. 폐활량과 다리 근력이 좋아졌다. 농담 삼아 히말라야 정기를 받는다고 하지만 9일간의 트레킹은 알게 모르게 정말 나를 단단하게 해준 듯하다.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또 다시 그 길에 오르고 싶다. 안나푸르나 지도를 펼치고 신발 끈을 야무지게 조이고 있을 모습을 꿈꾸며 나는 배낭을 내려놓았다. 네팔의 밤하늘엔 지금도 무수히 많은 별들이 쏟아지며 빛을 내고 있을 것이다.

네팔 푼힐 &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일정
5/3 카트만두→포카라(국내선)→나야풀(택시)→트레킹 시작→디케둥가
5/4 디케둥가→울레리→고라파니
5/5 고라파니→푼힐 전망대→고라파니→따다파니
5/6 따다파니→촘롱→시누와
5/7 시누와→히말라야→데우랄리
5/8 데우랄리→MBC(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5/9 ABC→MBC→데우랄리→도반
5/10 도반→시누와→촘롱→지누단다
5/11 지누단다→뉴 브리지→큐미→시와이→나야풀→포카라(택시)→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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