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packing | 경기도 의왕시 모락산길 ① 트레킹
Backpacking | 경기도 의왕시 모락산길 ① 트레킹
  • 글 김재형 기자 | 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4.04.15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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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나는 과거, 백운호수~임영대군묘~사근행궁 터~지지대비 12.6km

길에는 저마다의 역사가 담겨있다. 물론 아스팔트로 뒤덮여 있고, 현대식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선 오늘날의 길에서 지난날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시간이 흐르면서 옛길은 사라지고 그 위에 다시 새로운 길이 생겨나면서, 길은 그저 목적지를 향한 수단처럼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담배 한 갑을 사기 위해 슬리퍼를 끌며 무심히 걷는 길에도 우리가 알지 못했던 많은 사연이 숨어 있다.

▲ 백운호수에서 시작되는 경기도 삼남길 3구간 모락산길은 지지대비까지 이어지는 12.6km 코스다.

출세와 낙향의 길
조선시대에도 사람과 마차가 지나다닐 수 있는 지금의 고속도로 같은 6개의 대로가 있었다. 그중 삼남대로는 한양과 충청·전라·경상의 삼남지방을 이었던 장장 1천 리에 달하는 조선시대 최장대로다. 과거를 보러 한양에 올라가는 선비나 유배를 받고 객지로 떠나는 관리 모두 이 길을 걸어야만 했다.

과천에서 평택까지 이어지는 삼남길 경기도 구간은 삼남대로의 옛 노선을 연구·고증을 통해 복원한 역사문화탐방로다. 수도권을 관통하는 길의 특성상 급격한 개발로 길이 막히거나 지형이 바뀐 곳은 대체구간으로 개척해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개통했다.

▲ 이번 백패킹에는 소설가 김재욱 씨가 함께 했다.

특히 경기도 3구간 모락산길은 세종의 넷째아들 임영대군의 묘역과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러 가기 위해 정조가 다니며 묵었던 사근행궁 터, 지극한 효성을 추모하는 지지대비가 남아있는 곳이다. 이번에는 일제 합병 전의 조선 후기 사회를 다룬 역사소설 ‘쇠당나귀’의 작가 김재욱씨가 함께했다. 마침 새 소설을 막 탈고한 지라 핍진한 몸을 추스를 겸 자청해 백패킹에 합류한 김재욱 작가와 사연 많은 조선의 길을 걸었다.

▲ 삼남길은 삼남대로의 옛 노선을 연구 고증을 통해 복원한 역사문화탐방로다.
▲ 모락산길 초입에는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의 사당과 묘가 있다.

사근행궁 터를 지나 지지대비까지
모락산길은 백운호수에서 사근행궁 터를 지나 지지대비까지 이어진다. 완만한 산길과 도심이 어우러진 12.6km 코스는 넉넉잡아 3시간 30분 정도면 걸을 수 있다. 주민센터가 들어서고 터만 남은 사근행궁을 비롯해 트레킹 도중 간간히 아스팔트 도로가 나오지만, 길의 방향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잘 설치돼있어 어렵지 않게 길을 찾을 수 있다.

▲ 모락산길 임영대군 묘역 근처에서는 안내책자와 함께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의 사당과 묘는 모락산길에서 제일 먼저 만나볼 수 있는 역사의 흔적이다. 자그마한 사당 하나와 무덤이 전부라서 관심이 없다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임영대군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첫 번째 아내와 파혼하고, 수많은 기생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니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 대군 자격을 두 번이나 박탈당하기까지 한 우여곡절이 많은 인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무인기질이 강하고 총명해서 화차를 비롯한 무기개발에도 큰 공을 세웠다. 결정적으로 그는 큰형의 아들 단종의 왕위가 찬탈당하는 계유정난 때 세조의 편에 선 덕분에 잔혹한 혈육 간의 칼부림에서 살아남은 운 좋은 인물이었다.

▲ 지지대비는 아버지에 대한 정조의 지극한 효성을 추모하기 위해 순조 7년에 세워졌다.

임영대군 묘에서 오매기마을로 이어지는 산길까지는 아스팔트 도로가 나온다. 한낮의 봄볕을 쬐며 도로 위에 팔자 좋게 늘어진 개들을 지나쳐 도착한 오매기 마을은 명절 날 할머니 집을 찾아가면 볼 수 있을 듯한 작은 시골 마을이다. 오매기 마을은 단풍이 물드는 가을날이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해 화가들이 사생 현장으로도 종종 찾는 곳이다. 산길이 끝나고 다시 이정표를 향해 걷다보면 고천동 주민센터가 나온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지만, 이곳이 바로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러 수원화성에 행차할 때 숙소로 사용했던 사근행궁이 있던 곳이다. 정조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할 때에도 계속해서 영조에게 아버지를 용서해 달라고 간청할 정도로 효심이 지극했다. 이 무슨 당연한 소리인가 의아할 수도 있지만 사도세자의 다섯 아들 중 마지막까지 아비를 살려달라고 빈 인물은 정조뿐이었다.

▲ 잠시 쉬면서 지도를 확인한다.
▲ 오매기마을까지는 앞으로 1.5km.

훗날 왕위에 오른 정조가 신하들에게 내뱉은 첫 마디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였다. 초라하게 세워진 비석과 안내판을 지나쳐 뻐근해진 다리를 재촉해 걸으면 마지막 종착지인 지지대비가 나온다. 의왕에서 수원 쪽으로 넘어오는 입구에 위치한 지지대비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24호로 모락산길에서 만나볼 수 있는 유적 중에서는 가장 보존과 형태가 잘 갖춰져 있는 편이다. 지지대비는 정조의 효성을 추모하기 위해 순조 7년에 세워졌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능을 수원 화산의 현륭원으로 옮기고 화성을 축조하면서 종종 화성행차길에 나섰는데, 이때 지지대비가 세워진 고개는 궁으로 돌아오는 길에 멀리서나마 능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장소였다. 때문에 정조는 아쉬운 마음에 쉽게 고개를 떠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TIP

삼남길
‘길에서 역사를 만나다’라는 슬로건으로 지난 2012년 개통한 경기도 삼남길은 과천에서 평택까지 총 10개 구간으로 이어진 도보길이다.

제 1길인 한양관문길을 시작으로 인덕원길, 모락산길을 거쳐 소사원길까지 총 길이 90.1km의 삼남길은 역사적 사료를 토대로 옛길을 복원한 만큼 다양한 유적과 기념비 등을 만나볼 수 있다. 경기도 구간뿐만 아니라 충청, 전라, 경상지역까지 이어지는 삼남길은 국내에서 가장 긴 전국 단위 도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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