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packing | 강원도 인제 곰배령 ② 걷기
Backpacking | 강원도 인제 곰배령 ② 걷기
  • 글 김재형 기자 | 사진 김태우 기자
  • 승인 2013.11.12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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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피고 지나간 자리
점봉산 생태관리센터~강선마을~곰배령…5km

강원도의 아침은 꽤나 매서웠다. 곰배령을 오른 건 10월 중순이었지만, 강아지풀에 내린 서리가 옷깃을 더욱 여미게 만들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찾은 생태관리센터 앞에는 아침부터 입산을 기다리는 등산객들로 북적였다. 오전에 한해서 200명에게만 입산이 허락된지라 우리처럼 먼 길의 수고도 마다않고 달려온 등산객들이 허가증을 받기 위해 줄지어 서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햇볕을 쬐면서 걱정은 곧 기대로 바뀌었다. 예정된 예비군 훈련까지 연기한 병준이 함께 곰배령을 걷기 위해 이번에도 합류했다.

천연 원시림이 살아 숨쉬는 곰배령
산림 유전자원 보호림으로 지정돼 22년 동안이나 입산이 금지된 곰배령(1164m)이 일반 등산객들에게 개방된 건 2009년부터다. 생태계의 박물관으로 불릴 만큼 다양한 희귀 야생화와 산림자원을 보유한 곰배령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높아짐에 따라 산림청에서는 숲이 훼손되지 않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일반 등산객들에게도 탐방을 허용하고 있다.

▲ 이른 아침에도 많은 등산객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러나 허가라는 말만 듣고 무턱대고 찾아갔다가는 큰 낭패를 보고 발길을 돌려야 한다. ‘제한된’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곰배령은 부지런한 사람에게만 문을 개방한다. 인터넷을 통한 사전예약이 필수인데, 하루 200명으로 인원을 통제하기 때문에 최소 2~3주 전부터 신경 쓰지 않으면 원하는 날짜에 일정을 잡는 일이 쉽지 않다. 수고를 들여 예약 했더라도 14:00부터는 동·식물 보호를 위해 하산 조치를 시작하기 때문에 지정된 시간을 넘겨 너무 늦게 도착하면 입산을 허가하지 않는다.
 
고생하며 온 사람에게 너무 까다롭게 구는 것 같아 섭섭하더라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곰배령이 보존가치가 높고 희귀 및 멸종위기식물이 서식하는 국내 자연 생태계의 보고라는 뜻이다. 이곳을 찾기 위해 이만한 수고와 노력을 기울이는 건 우리가 마음껏 누리고 혜택 받으며 사는 자연에게 보일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

▲ 하루 200명으로 제한된 곰배령에 오르려면 입산 허가증을 항상 지니고 있어야 한다.
▲ 강선마을의 유일한 우체통.

가을의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곳
곰배령의 관문인 진동리 설피 마을로 들어서자 비포장도로가 이어졌다. 수년 전만 하더라도 현리 삼거리에서 70여 리를 걸어 들어가야 하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는 설피 마을은 비교적 길이 잘 닦인 지금은 그래도 접근이 수월한 편이다.

▲ 강선마을 가는 길에 세운 돌탑.

새벽부터 서두른 덕분에 시간에 맞춰 도착해 생태관리센터에서 입산허가증을 부여받았다. 등산로 초입부터 숲을 이룬 나무들 사이로, 파고든 햇살이 계곡을 비치고 있었다. 붉게 물든 단풍잎을 감상하며 맑은 계곡물 소리를 음악 삼아 산행을 시작했다. 총 길이 2.2km의 완만한 평지 수준의 산길이 강선마을을 거쳐 입산통제소까지 이어졌다.

“뭐 일반 산길하고 크게 다를 바 없는데.”
길을 걷던 병준이 한 말이다. 그러나 눈에 띄게 화려하거나 웅장하지도 않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이 매력이라는 곰배령은 걸으면 걸을수록 눈과 귀를 통해 그 의미가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입산통제소에서부터 곰배령까지 이어지는 2.8km 구간이야말로 곰배령을 오르는 본격적인 산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 한두 명 지나갈 정도의 좁은 등산로 옆으로는 사람 손 타지 않은 수목들이 빽빽하게 그늘을 만들어내며 원시림을 이루고 있었다.

▲ 정해진 등산로를 조금만 벗어나면 수목이 우거지고 때묻지 않은 원시림이 드러난다.

▲ 정해진 등산로를 조금만 벗어나면 수목이 우거지고 때묻지 않은 원시림이 드러난다.

정해진 길을 벗어날 수 없어 깊이 들어갈 순 없지만, 때 묻지 않은 자연이 간직한 신비로움을 엿보기에는 충분하다. 쉴 새 없이 콸콸 흐르는 계곡물과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이제 막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등산로 초입과는 달리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잎이 떨어지고 길옆에는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곰배령에는 가을의 시작과 끝이 모두 함께하고 있었다.

이윽고 완만한 구릉에 오르면 야생화가 피고 난 자리에 펼쳐진 수만 평의 초원이 한 눈에 들어온다. 탁 트인 시야와 함께 정상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을 날려 보낸다. 등산객들은 헬기 선착장에 서서 점봉산 정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고, 월차를 내고 서울에서 회사 동료들과 곰배령을 찾은 이지원씨 일행은 잡지에 사진이 실린다는 얘기에 기분이 좋은 듯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설악산 대청봉에 쌓인 눈을 잠시 바라보다가 하산을 시작했다.

▲ 정상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을 금세 식혀준다.
▲ 야 그냥 있으면 우울하니까 소리라도 질러.

9가구만 남아있는 강선마을
빨리 걸으면 1시간이면 끝날 하산 길이었지만, 우리는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왠지 2% 부족한 것 같은 가을 풍경을 조금이나마 더 담아가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9가구만이 남아있다는 강선마을에 들러서 산나물 전을 맛보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닥거린 탓도 컸다.

강선마을에서 ‘곰배령이야’라는 가게를 운영하며 10년째 살고 있다는 염령희씨는 원래 이곳 사람이 아니다. 사진을 찍으러 점봉산을 찾았다가 풍경에 반해 눌러 살게 됐다는 염씨는 2009년부터 등산객을 위한 음식점과 펜션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등산객들이 자주 드나드는 탓에 이곳 강선마을에는 주민들이 직접 민박이나 음식점을 운영하고 경우가 많다. 완전히 산속 깊은 곳에 파묻혀 사는 오지마을의 느낌은 아니었지만, 삼삼오오 모여 산길을 넘나들며 미소를 잃지 않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삶에 대한 여유가 느껴졌다.

▲ 바둑은 둘 줄 모르니까, 간단하게 오목 삼세판.

▲ 10년 전 사진을 찍으러 곰배령을 찾았다가 풍경에 반해 정착하게 된 염령희씨 부부.

▲ 입산통제소를 지나 이어지는 2.8km의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려면 이 징검다리를 건너야 한다.

▲ 야 그냥 있으면 우울하니까 소리라도 질러.
▲ 빨갛게 물든 단풍잎이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난다.

▲ 곰배령 정상에서 바라보는 눈 쌓인 설악산 대청봉.

▲ 직장 동료들과 함께 곰배령을 찾은 이지원씨 일행.

▲ 우리 둘이 팔을 다 뻗어도 한참은 남는 거대한 고목.

TIP 곰배령

하루 200명으로 제한된 입산객 수
▲ 빨간색 표지판을 읽지 못하고 잠시 갈림길에서 고민을 했다.
2009년 7월 15일 일반인에게 개방된 곰배령은 유네스코에 산림유전자원 보호지역으로 등재돼 지난 22년 동안 입산이 통제돼 있었다. 지금도 하루 200명으로 입산객을 제한하고 있어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 한 가지 예외적인 방법으로는 곰배령 길목의 강선마을 주민이 운영하고 있는 민박이나 펜션 예약을 통해 입산허가증을 받는 방법도 있다. 이때는 따로 강선마을의 민박집에 문의해야 한다. 매주 월, 화는 산림휴식. 매년 봄, 가을 일부 기간은 산불 방지 차원으로 입산을 통제하고 있다.

해발 1164미터 높이에 약 5만평의 초원이 형성되어 있으며 계절별로 각종 야생화가 군락을 이루는 국내 최대의 야생화 초원이다. 봄에는 얼레지꽃, 여름에는 동자꽃, 노루오줌, 물봉선, 가을에는 쑥부쟁이 등이 자태를 뽐낸다. 취재 당일에는 단풍이 한창이었다. 곰배령은 경사가 완만하여 가족 단위의 탐방코스로도 적합하다. 점봉산 일대는 울창한 원시림에 계곡이 흐르고 있고 정상의 탁 트인 전망도 일품이다. 가깝게는 작은점봉산(1295m)과 호랑이코빼기(1219m), 멀리 설악산의 대청봉이 보인다. 곰배령은 백두대간의 등뼈에 해당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산림청 예약사이트 www.forest.go.kr

교통
서울~춘천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동홍천IC로 나온다. 44번 국도를 따라 인제로 가다 철정 삼거리에서 우회전하고 451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홍천~상남을 잇는 31번 국도가 나온다. 상남을 지나 418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조침령 터널 입구가 나오고 이곳에서 좌회전해서 4km만 가면 설피 마을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접근하는 길은 따로 없어 자가 이용이 필요하다.

▲ 진동계곡 식당에서 먹은 산채비빔밥과 두부정식.

먹을 것
곰배령 가는 길에 만날 수 있는 강선마을에서는 하산 길의 등산객을 유혹하는 산나물전과 감자전 등을 팔고 있다. 곰배령이야(033-463-7157)에서 직접 채취한 산나물로 만든 산나물전 맛은 일품이다. 인근의 진동계곡을 따라 이어진 식당가는 곰배령 산나물을 사용한 진동산채비빔밥으로 유명하다. 우리는 마을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진동계곡식당(033-463-9383)에서 두부정식과 진동산채비빔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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